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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1 01:28
바울의 구원에 대한 감사 1[살후 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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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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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를 보면, 모든 인간은 죄악성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우주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연계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1:18-32). 도덕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의 계시 즉 양심의 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2:1-16). 유대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계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2:17-3:8). 또 전 인류는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3:9-19).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0-18)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기를,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3:20)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선언대로라면 인간의 장래는 아주 절망적입니다. 구원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인류가 다 죄 아래 있다(롬 3:9)는 절망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롬 3:19)는 준엄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이 선언은 역설적입니다.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극대화시킨 표현입니다.
이 선언은 결코 우리 인간이 어떤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든지 혹은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든 혹은 기독교인이 아니든, 다른 모든 종교를 포함해서 종교인이든 혹은 종교인이 아니든 인간에게는 본능적이든 이성적이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정한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나쁜 일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방영되고 있는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고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은, 바울처럼, 어떤 형태의 선행마저도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의 은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며, 자신이 받은 구원이 결코 자신이 행한 선행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사랑의 행위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체험적 고백에 따르면, 인간의 불완전한 선행이나 법의 지킴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100점 만점의 선행점수에 99점을 얻는다할지라도 그 부족한 나머지 1점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갈 3:10; 약 2:10).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보편적인 신인식에 근거해서 각가지 민속신앙과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등 다양한 형태의 종교를 발전시켜 다양한 이름의 신들을 섬겨온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지은 죄 또는 죄악성 때문에 그들의 노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했고, 공자, 맹자, 장자와 같은 도덕 군자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라도 그들이 지은 죄 또는 죄악성 때문에 그들의 노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했고, 또 하나님의 택한 민족으로써 모세오경과 같은 뛰어난 성경을 갖고 있는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부여된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바울의 철저한 "~로 말미암아"신앙 즉 감사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구조원에게 건짐을 받고서 구조대원에게 말하기를 "내가 산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고 하지, "내가 물 속에서 살아보려고 허우적거린 덕분에 살아났습니다"고 하든지, "수영을 조금할 줄 알았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고 하지 않습니다. 보트를 타고 놀다가 물가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깊은 물 속에서 배가 뒤집혀 물에 빠진 사람이 99미터 수영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나머지 1미터 때문에 제 능력으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 나머지 1미터 때문에 물 속에 빠져 죽게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대전엑스포가 열렸던 갑천에서 강가를 걷고 있던 고등학생 3명이 빠져죽는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가둬놓은 물이라 흐르지 않는 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해보겠다고 나머지 학생들이 물 속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한 명만 살고 나머지 세 명이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다 강가 1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발생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내가 살아난 것은 내가 99미터까지 수영을 했기 때문입니다"고 하든지, "내가 살아난 것은 내가 50미터까지 수영을 했기 때문입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살아난 것은 그분이 물 속에 빠진 나를 구해주셨기 때문입니다"고 말합니다. "내가 병들어 죽어갈 때에 이런 저런 약을 구해먹고도 낳지 못했는데, 그분을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고 말하지, "내가 고침을 받은 것은 이런 저런 약을 구해 먹었던 내 노력 50퍼센트에다 그분의 능력 50퍼센트가 플러스되어 고침을 받았습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했지,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했지, 율법을 잘 지킴으로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죄문제로 옮겨가면 쪼금 복잡해집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능력부족 그 자체를 죄로 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99미터를 제힘으로 왔어도 그 나머지 부족한 1미터 때문에 남의 도움이 없이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부족은 죄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완전하지 못한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은 하나님이 완전한 절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은 죄요, 죄는 곧 죽음이지만, 완전은 거룩이요, 거룩은 곧 영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9-13절을 보면,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사28:16)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욜 2:32)고 했습니다. 또 로마서 4장 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고 했는데,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4장에서만 8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란 말은 '거룩'을 말합니다. 거룩은 완전이요, 영생이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은 아브라함을 거룩하게 여기셨다는 말씀이요, 아브라함을 거룩하게 여기셨다는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영생을 주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지 아니한 피조물을 완전하다 하시고, 거룩하지 아니한 자를 거룩하다 하시고, 소멸의 존재를 불멸의 존재로 복을 주셨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지 인간의 노력의 대가가 아닌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거룩하다 선포하신 것이기 때문에 후회함이 없는 것이요,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큰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분명 엄청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의 모든 은혜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즉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은혜로,' '예수의 은혜로,' 또는 '하나님 때문에,' '성령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강조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았으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 할 것인가? 바울은 감사의 열매를 강조했습니다. 감사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의의 열매를 말합니다. 의의 열매는 성결의 열매를 말합니다. 성결의 열매는 순종의 열매를 말합니다. 순종의 열매는 옳은 행실의 열매를 말합니다. 옳은 행실의 열매는 하나님을 위한 열매(롬 7:4)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7절에서, "주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처음부터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으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든든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주시기를 빕니다."고 했고, 로마서 6장 17-19절에서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분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라고 권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분명하게 하나님께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의의 종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하는데, 그 감사의 방법이 바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5절에서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라고 권하였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는 신약성경에 보존되어 있고, 말로써 가르쳐 지키게 한 전통은 교회의 예배전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살고, 교회전통에 따라 행하면 됩니다. 또 로마서 6장 19절에서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라고 권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렇듯 의롭게 살아야할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그 풍성한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2절에서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하였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서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처음부터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우리가 받은 구원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했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으로 생활의 열매를 맺도록 권하였습니다. 감사의 열매,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 성결의 열매, 순종의 열매, 옳은 행실의 열매,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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