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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18
변화의 원리속에 변치않는 창조주[약1:2-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263  
자연은 끝없이 변하고, 시간은 바람처럼 스쳐갑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99년 새해를 맞이한 것이 어제 같은 데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존재와 사물은 끝없이 변하고 있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논리를 변증논리 또는 변증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변화를 지배하는 것이 정신이라고 본 사람이 있었고, 물질이라고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물질이 정신을 지배한다고 했고,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관념론자였던 헤겔은 변화하는 만물, 곧 역사의 중심에 정신이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유물론자였던 마르크스는 변화하는 만물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이 모든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70년 공산주의 실험에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헤겔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절대정신' 또는 '세계정신'이라고 불렀습니다. 헤겔은 또 이 '절대정신'을 '신(Gott)'이라고 불렀습니다. 헤겔이 말한 '절대정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헤겔보다 1700년 먼저 쓰여진 성경은 하나님을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으로 믿고 있고, 하나님을 모든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으로 보았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의 삶의 중심이 되시고, 변화를 통한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 한해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대사회는 무척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제 그제 논의되던 '정보화'라는 말이 이제는 '지식경영'이니, '지식혁명'이란 말로 바뀌고 있습니다. 정보통신혁명이 벌써 시대적 사명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혁명은 '지식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식혁명은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것은 농경사회, 산업사회, 글로벌산업사회, 정보화사회에 이어 '제5의 물결'로 밀려 올 것이라고 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토지와 자연자원, 산업사회에서는 원료와 에너지가 혁명의 원동력이었다면,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토지가 아무리 많고 싼값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노동력과 자본을 충분하게 확보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정보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지식이 없으면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의 탄생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됐으며, 조용했던 농업사회를 엔진소리가 요란한 산업사회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역사학자들은 산업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집채보다 더 컸던 컴퓨터가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지면서 세상이 또 한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정보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손톱크기의 반도체 칩에 두꺼운 백과사전을 몽땅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고, 한번 기록했던 문서를 다시 끄집어내어 수정 편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통신기술의 발전은 컴퓨터에게 '빛의 속도로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그 날개는 또 우리를 인터넷이라 부르는 가상공간이란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일본 도야마현에는 야마다무라라는 산간지역이 있습니다. 548세대가 살고 있는 이곳은 '사이버마을'로 유명합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서 텔레비전 화상전화를 사용하고 있고, 피차에 전자우편을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화상회의를 열어 지역의 공동과제를 논의하기도 합니다.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는 이 산골지방에서 컴퓨터 화상회의는 더 없이 편리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지역주민이 대부분 노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가구별로 개설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신이 경작한 농산물 정보를 구매자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통신혁명도 이제는 그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고, 구조조정이란 큰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 마디로 선진국과의 지식격차 때문이었다는 것이 매일경제가 97년 12월에 펴낸 {부즈·앨런 & 해밀턴 한국보고서}의 내용입니다. 뒤이어 발간된 {맥킨지보고서}는 그러한 지식의 격차가 구체적으로 한국산업의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경제전쟁에서 패배했다. 한국경제의 생산성은 미국의 2분의 1이다. . . . 생산성을 기준으로 미국에 견줄 수 있는 한국의 기업은 포항제철 하나 뿐이다"고 합니다. 똑같은 수의 근로자와 똑같은 자본을 투입했을 때, 한국이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가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기업들은 지난 15년간 자본을 투입해서 올린 수익성이 은행금리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기업은 대출금 이자를 상환할 만큼의 이윤도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선진국과의 '지식격차'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재료와 기계를 이용해 레이더장비를 생산하더라도 영국은 10만 달러짜리를 만드는데 비해서 한국은 겨우 1만 달러짜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도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100일 때, 미국은 311에 달한다고 하니, 한국의 지식수준이 미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국가경쟁력 또한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미국을 100으로 보았을 때, 한국은 25.46, 평가대상 46개국 중 35위에 머물렀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한국교육이 얼마나 크게 잘못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대학 졸업자도 많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들 많이 공부하는데도, 한국의 인류대학의 졸업자가 하와이에 있는 전문대 졸업자만 못하다고 하니, 문제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식'하고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식에는 기초과학기술이나 경제경영이론과 같은 이론지식도 있고, 데이터베이스나 기술특허와 같은 실용지식도 있고, 현장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도 있습니다. 영어를 10년 넘게 공부하고서도 회화 한 마디 제대로 못한다면 그건 살아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건축공학을 전공했다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상아탑 속에 묻혀있는 이론지식보다는 현장경험을 통해서 얻는 경험지식과 일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개발하고 혁신해서 자기 몸값을 높이는 지식을 말합니다. 
지식인의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식을 많이 쌓은 대학교수만 지식인이 아니라, 자기 일을 개선하고 개발하고 혁신해서 자기 몸값을 높이는 사람도 지식인입니다. 그래서 자장면 배달원이나 청소부, 운동선수, 회사원 등 누구나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바로 행동하는 지식인들입니다.
이런 지식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전 중국집 배달원 조태훈과 SF영화로 달러를 캐는 바보역할을 주로 했던 개그맨 심형래, '날 밀어 넣기' 기술로 세계를 제패한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감독 전명규, 포르투갈어 전공자에서 오성식영어연구원 대표이사가 된 오성식 등입니다. 이들 가운데서 조태훈 한 사람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올해 나이 30세인 조태훈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친구를 따라 무작정 상경했다가 중국집 배달부로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번개반점의 사장이며, 고객서비스와 마케팅의 귀재입니다.
어느 날 남녀 한 쌍이 자장면 하나와 짬뽕 하나를 시켜서 서로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을 본 조태훈은 그 때부터 자장면을 시키면 짬뽕 국물을 서비스로 제공했는데, 빅 히트였다고 합니다.
중국집에서는 판촉용으로 곽성냥을 나눠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곽성냥을 돌려도 주문이 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 즉 중국음식 주문은 주로 총무과 여직원의 몫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직원의 책상에 성냥갑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이점에 주목한 조태훈은 성냥대신에 여자스타킹을 사서 돌렸더니, 매상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조태훈이 근무했던 중국집 설성반점은 고려대 후문에서 불과 5미터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매상은 다른 집보다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궁리한 끝에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첫째, 학생들은 양 많은 자장면을 좋아했습니다. 큰그릇에 담으면 적게 보이고, 작은 그릇에 담으면 양이 많아 보입니다. 설성반점 자장면 그릇은 유난히 컸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장면 그릇크기를 줄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둘째, 교수들은 속도가 문제였습니다. 수업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빨리 배달해 주는 곳을 선호했습니다. 조태훈은 이 점에 착안해 교수들의 주문은 우선적으로 만들라고 주방에 요구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집 주방에서는 주문 받은 것부터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자장면은 2분밖에 안 걸리는데, 탕수육은 10분 이상 걸립니다. 자장면 주문을 받아도 탕수육 주문이 먼저 들어와 있으면 10분이 훨씬 지나야 자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조태훈은 주문표를 바꿔 넣었습니다. 탕수육 주문이 먼저 와도 급한 자장면 주문이 있으면 그걸 먼저 시켰습니다. 이것 역시 주방장 우선이 아니라 고객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조태훈은 이 덕분에 '번개'라는 상표를 얻게 되었습니다.
'번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배달부의 이미지입니다.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고려대 캠퍼스를 누빌 때는 '번개'라고 쓴 노란색 사각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고 합니다. 번개수칙도 있었습니다. "설성반점에 자장면을 시키면 담배를 피우지 말라. 왜? 담배 피우기 전에 자장면이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통의 자장면 배달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관입니다. 자장면 배달부 100이면 100명이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 두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는 최고 배달부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1단계 목표로 중국집 사장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는 고객만족과 고객감동의 차이점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만족은 제품에서 나옵니다. 자장면이 맛있으면 고객은 만족합니다. 그러나 감동은 아닙니다. 감동은 서비스에서 나옵니다. 고객의 마음을 읽고 자장면을 시킨 손님에게 짬뽕 국물을 갖다주는 것이 감동입니다. 푸짐한 요리를 시킨 고객에게 군만두를 덤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소두 두 병 갖다주는 것이 감동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객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탐구하고 알아내는 작업을 '고객과의 경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번개'라는 상표가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일산에서 '번개반점' 체인1호점을 열어 마침내 자장면집 사장의 꿈을 이뤘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번개반점' 체인점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월트 디즈니처럼 만화 캐릭터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알고 행한 이런 모든 노하우가 바로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은 매일경제 지식프로젝트팀이 펴낸 {지식혁명보고서: 당신도 지식인입니다}란 책에 실린 것들입니다.
제가 성경말씀대신에 '지식혁명'를 말씀드린 이유는 금년 2월에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형제들과 올 99년을 설계하는 여러분에게 다소라도 도움이 될까해서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합니다. 시간은 바람처럼 스쳐갑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모든 것이 변증법적으로 저절로 진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질서가 더 극대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는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헤겔은 이 통제능력을 정신이라고 했고, 마르크스는 물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변화의 원리 속에 계시면서도 변치 않는 창조주이시며, 모든 변화를 주관하시는 절대정신이시며, 물질을 만드시고,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올해도 우리 성도들의 삶의 중심이 되시고,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변화를 통한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화는 시련입니다. 야고보서 1장은 이런 변화를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6절)과 같다 했고, "해가 떠서 뜨거운 열을 뿜으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짐"(11절)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라"(4절)고 하셨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5절)고 하셨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하라"(6절)고 하셨습니다.
변화의 시련을 당할 때에 아무도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고 있다"고 생각지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13절)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변화의 시련을 당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14절)이라고 하셨습니다.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의 중심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잘 붙드시고, 지식 주시기를 구하여, 조태훈처럼 올 한해를 멋진 해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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