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난은 짧고 그 영광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하였다. 바울의 이 위대한 신앙고백이 바로 요한이 계시록을 통해서 하고 있는 신앙고백이요, 계시록의 핵심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그들에게 시련을 허락하셨지만,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그 시련의 기간을 짧게 정하셨고, 그 대신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로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시련은 짧고 영광은 영원하다.
흔히들 계시록 10-13장과 17-19장을 중간계시라고 말한다. 이들 중간계시는 하나님께서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시급히 구출하실 것과
박해세력을 무서운 재앙으로 응징하시겠다는 내용이다.
계시록 10-13장은 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사단과 두 짐승으로 묘사된 악의 세력으로부터 당하는 고난의 기간을 짧은 삼년반으로 설명한
중간계시이며, 17-19장은 성도들에게 박해를 가했던 사단의 나라와 그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응징하실 것과 백마 탄 기사, 슈퍼스타 J장군,
예수를 투입시켜 지고있던 게임을 역전승으로 끝내고, 고통을 겪었던 성도들은 해방의 노래,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되며, 영원한 축복의 세계에 살게될
것을 강조한 중간계시이다.
계시록 10-13장의 특징은 11, 12, 13장에 각각 나오는 삼년반이란 숫자에 있다. 삼년반이란 숫자는 '마흔 두 달' 혹은 '일천
이백 육십일'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단어로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목회자들과 교회와 성도들이 악의 세력으로부터 당하는 고난의
기간과 악의 세력의 탄압기간을 말한다. 여기서 삼년반은 문자적인 삼년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상징적으로 '시련의 기간이 짧다'는 것을 강조한
있다. 계시록에서는 이 삼년반의 시련기가 끝나면 즉시 정의와 사랑의 슈퍼스타 예수가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한 바울의 신앙고백을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 계시록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시련은 짧고 영광은 영원하다'는 것을 자신이 본 환상을 소개하면서 '성도의 인내와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삼년반은 성도들이 악의 세력으로부터 당하는 시련의 기간이지, 재앙의 기간이 아니다. 성경에는 재앙의 기간을 삼년반으로 언급한 곳이
없다. 성경에 나오는 재앙은 악의 세력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다. 재앙과 환난을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계시록에서 말하는 큰
환난(7:14)은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당하는 큰 시련을 말하는 것이고, 나팔재앙이니, 대접재앙이니 하는 것들은 박해세력인 악의 무리를
멸하시고, 그들로부터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구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군사작전과 같은 것이다. 전술에 보면, '공격개시전 사격'이란 것이 있다. 이
사격은 보병의 진격명령이 있기 전에 소나기처럼 퍼붓는 포사격을 말한다. 보병의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보병의 진격 전에 적의 진지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나팔재앙과 대접재앙은 다름 아닌 악의 무리들에 포로로 잡힌 성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소나기처럼
퍼붓는 공격개시전 사격과 같은 것이다. 성도들에게 전혀 피해가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 예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기 전에 먼저 엄청난 재앙을 이집트에 퍼부었다. 그러나 고센 땅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 따라서 삼년반은
성도들이 당하는 시련의 기간으로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그 기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숫자이다.
계시록 11장에 두 증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이다. 이들은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들이 악을 상징하는 두
짐승,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부터 받는 박해기간을 삼년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목회자들의 대표로 등장하는 이유는,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큰 환난을 받았기 때문이며,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엘리야 시대에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숭배
강요로 이스라엘 민족이 큰 환난을 받았기 때문이며,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모세는 적그리스도인 바로와 거짓선지자인
술객들과 싸워 이겼으며, 엘리야는 적그리스도인 아합과 거짓선지자인 이세벨과 싸워 이겼다.
계시록에 이세벨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그녀의 행위가 음란행위와 관련하여 정죄 되는 이유는 바알종교가 실제로 사당의 성창(聖娼)들과의
성행위를 통한 예배의식을 인정한 데도 이유가 있지만, 이세벨은 절세의 미인이며, 이방인으로 남편 아합 왕으로 하여금 야훼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케 하였을 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야훼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케 한 신앙의 창기였으며, 참 신앙을 저버리게 한 거짓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영적으로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버리고 이방신과 간음하도록 하는 모든 거짓 선지자들의 대표격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오는 666은 아합과 이세벨에서 유래하여 로마제국의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황제와 사제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들의 가르침은 인간을 결코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이너스 일의 존재인 인간의 숫자 육을 삼 결합시켜 인위적인 가르침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완전한 마이너스 일의 이단사설임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육은 인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이면서 완전수 칠에 하나가 부족한 숫자이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하나님과 같을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이다. 삼은 완전 수이다. 따라서 666은 완전한 부족과 실패를 의미한다. 숫자 666은 '부족하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라는 뜻으로 이해 될 수 있다. 666이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66은 삼위 하나님의 상징적인 숫자인 777에 반대되는
숫자이다. 숫자 777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는 뜻이다. 이를 예배 용어로 상투스(sanctus) 또는 삼성창이라고 한다. 부족은
죄를 의미하고, 거룩은 완전을 의미한다. 헬라어로 죄를 '하말티아'라고 한다. 이 말은 '과녁에서 빗나가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죄란 완전에 미치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나 거룩은 완전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율법의 모든 요구 조건에 부족함이 없을 때에 '거룩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완전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부족한 인간은 유죄하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어떠한 행위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12장에는 사내아이와 해를 입은 여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예수와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교회를, 예수는 교회의 머리를 상징한다. 여기서도
교회가 악을 상징하는 두 짐승,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부터 받는 박해기간을 삼년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13장에는 두 짐승이 등장한다. 첫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으로써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둘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으로써 거짓
선지자를 말한다. 이들 두 짐승이 성도들을 삼년반 동안 박해한다. 계시록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칼의 권세를 가진 아합에서 유래되었고,
거짓선지자는 바알종교의 사제인 이세벨에서 유래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앙의 적은 언제나 칼의 힘과 이단 사설에 있었다. 칼의 힘이
적그리스도요, 이단 사설이 거짓 선지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교가 한 손에 칼을 들고, 다른 손에 코란을 들었다는 점이나, 통일교가 한 손에
돈을 들고, 다른 손에 원리강론을 들었다는 점이나, 오늘날의 세속주의가 성공이란 이름아래 한 손에 돈을 들고, 다른 손에 마약과 누드 잡지를
들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미국주간지 위클리 월드뉴스는 한 CIA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CIA가 대이라크 공격용으로 플레이보이 같은 누드잡지를 이용할 것을 심각히
고려중이라고 폭로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엄격한 회교원리주의 국가인 이라크에서는 남자가 모르는 여성의 발목을 흘낏 쳐다보는 것조차도
음란행위로 처벌을 받게 되어있는데, 만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상공에 수 백만 권의 누드잡지를 마치 폭탄을 투하하듯 뿌릴 수만 있다면 순식간에
바그다드를 폭동과 종교적 혼란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성인잡지가 투하될 경우 이 잡지를 잡아채려는 사람들로 거리는 일대
혼란에 빠져들어 결국 사회적인 동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럴 경우 걸프전 패배이후에 쿠웨이트 재침공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있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주게되고 미국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미국의 국익과 대의명분을 세울 수 있다는
게 CIA의 분석이다.
CIA가 실제로 이런 작전을 실행에 옮길는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누드잡지를 종교적 혼란을 야기하는 비밀병기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세상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박해가 단지 총칼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박해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끝나게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8-9장의 나팔재앙과 16장의 대접재앙에서 언급된바 있으며, 17-19장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기술해 놓고 있다.
17장에서는 황제숭배를 강요하면서 많은 신앙인들을 탄압했던 제국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다. 이 제국을 성서는 큰 음녀 또는 큰 성 바벨론
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성이 붉은 포도주에 취하듯이 성도들이 흘린 순교의 피에 취할 정도로 많은 성도들을 죽었다. 그리고 이 성의 제왕들이
성도들에게 예수신앙을 버리고 황제를 숭배하도록 온갖 악행을 자행해 왔다. 그러나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한 때는 그들이
이기는 듯이 보였지만, 그들은 결코 어린양과 그의 성도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린양과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결국 이기게될 것"이라고 17장 14절에서 말한다.
18장에서는 예수를 대항하여 성도들에게 박해를 가하던 제국과 제왕들이 철저하게 망할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며, 어떻게
망할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들을 심판할 하나님은 강한 자(18:8)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갑절로 갚겠다고 말씀하신다(18:6).
그러므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18장 4절에서 권하고 있다.
19장에서는 드디어 성도들의 슈퍼스타 백마 탄 J장군이 등장한다. 이는 마치 아군들이 빨갱이들에게 밀리고 또 밀려서 낙동강까지 이르러 이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할 그 때에 맥아더 장군과 UN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적군을 무찌른 것처럼, 또 3쿼터까지 지고 있던 게임을
슈퍼스타의 집중력으로 역전승을 거두는 것처럼, 우리의 슈퍼스타 백마 탄 J장군은 마치 말씀 한 마디로 폭풍을 잔잔케 하셨던 것처럼, 말씀 한
마디로 천지만물을 지으셨던 것처럼, 순식간에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무찔러 버린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잡아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 버린다. 또 그들을 숭배하고 따르던 자들도 J장군의 입에서 나오는 검에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싸움은 끝난다.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이긴다. 하나님이 이긴다. 그리스도가 이긴다. 끝까지 참고 견딘 성도들이 이긴다. 그리고 나서 승전가가 울러 퍼진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승리의 노래를 합창한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19:1-2).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19:6). 이 할렐루야 합창이 끝난 후에, 만 왕의 왕, 만주의 주, 개선장군과 함께 깨끗한 흰옷을 입은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한다. 그리고 나서 축하잔치에 참여한다. 계시록 19장 9절은 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고
했다. '시련은 짧고 영광은 영원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