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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09
시련에도 불구하고[행2:3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62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된 첫날에 예루살렘 성전 뜰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가 행한 첫 설교의 내용은 배척에 관한 것이었다. 사도행전 2장 22-23절에 보면,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이한 일과 표적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증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수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죽은 예수를 살려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 사도행전 2장 36절의 말씀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처럼 그들의 공적인 활동을 배척 당함으로 시작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가 성전의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 아저씨를 고쳐준 것이 계기가 되어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성전 뜰에 세워진 솔로몬 행각은 뙤약볕과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예루살렘교회가 모였다. 그런데 부활을 믿지 않았던 제사장들과 성전 수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자들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의 부활을 내세워 죽은 자들의 부활을 전하는데 격분해서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내용이 예수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설교 때에는 자기 자신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는 고향 나사렛사람들로부터 배척 당하는 것으로 공생애를 시작해서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으로 공생애를 마치고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의 생애와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많은 유대인들과 정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것으로 그들의 공생애를 시작하고 있고, 또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순교하는 것으로 공생애를 마치고 있다.
사도행전 5장까지를 보면, 제자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기적을 많이 베풀었는데,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뜰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모두 시기심에 가득 차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의회에 출석시켜 심문을 받게 하였다. 이 때에는 유명한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변호로 풀려날 수 있었는데, 이 때까지의 사건들은 모두 다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사람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예수를 포함해서 제자들은 아람어를 쓰는 본토출생의 유대인들이었고, 바울과 바나바, 빌립과 스데반은 그리스말을 쓰는 해외교포 출신의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을 일컬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6장부터 시작되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된 사건은 이들 그리스말을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스데반은 그리스말을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힘써 증거 하다가 이단자로 단죄되어 그들로부터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한편, 스데반을 이단자로 몰아 그의 죽음에 앞장을 섰던 바울은 후에 자기 자신이 또 다른 그리스말을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자로 단죄되어 돌에 맞아 죽었다가 겨우 살아나는 박해를 받았다.
바울은 한 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지만, 기독교인이 된 후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감옥에 갇히고, 유대인들로부터 서른 아홉 대의 곤장을 다섯 번 이상 맞았고, 살점을 돌려내는 채찍으로 세 번 이상 맞았고,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고, 그 밖에도 수 차례 죽을 뻔하였고, 배고픔과 목마름과 추위에 떨어야 했다(고후 11:23-27).
예수의 공생애가 고향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으로 시작해서 갈릴리 지방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미움과 질투로 발전했으며, 예루살렘에서는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체포되어 채찍에 맞고 조롱을 당하셨으며, 제자들로부터는 배신을 당하셨고, 끝내는 로마군인들의 손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듯이, 제자들의 공생애도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의 배척으로 시작해서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의 박해로 발전하였고, 사도행전은 바울이 5년째 옥살이하는 장면에서 끝나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배척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투지로 성령의 도움으로 활짝 열린 미래를 향해서 또는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갔다. 비록 그곳에 가면 잡혀서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시련이 기다린다할지라도 그들은 믿음으로 나아갔다.
예수가 갈릴리에서 얻은 명성과 보장된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인류를 구원키 위해서 매맞음과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유월절 전에 도착할 목적으로 주후 30년 3월 초봄에 250리 길을 한 거름씩 걸어가신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또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목표를 향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그 한 예로 바울은 주후 58년 봄에 전도여행을 마치고 성령이 강림하시고, 최초의 교회가 창립되었던 기념일인 오순절 명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목적으로 수 천리 길을 걷기도 하고, 배를 타기도 하면서 여행하였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지 예루살렘에는 영광이나 명예 대신에 배척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은 예수에게조차도 쉽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가 걷고자하는 그 길을 말리는가하면, 이해조차 하지 못했고, 어려움이 닥치자 스승을 팔아먹는 제자도 있었고, 모른다고 부인하는 수제자도 있었다. 따라서 예수는 이 여행 중에 울기를 세 번씩이나 하셨고, 십자가에서는 절망에 찬 절규까지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봄이 되면 죽었던 자연이 깨어나는 것처럼, 죽음 후에는 부활이 있고, 눈물 후에는 기쁨이 있고, 배고픔 후에는 배부름이 있고, 절망 후에는 희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이런 모든 사실을 알고 사도행전 20장 22-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성령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뿐인데, 어느 성읍에서든지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에게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또 바울 일행이 빌립이 사는 가이사랴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붙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도록 말렸다. 그러나 바울은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뿐만 아니라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21:13)고 단호하게 평안과 안일의 유혹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결국 잡혀서 예수처럼 다섯 번의 재판을 받고 4년 이상의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배척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가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였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활짝 열린 세계를 향해서 뻗어나갔다. 그 결과 300년 후에는 전 유럽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룩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7-18)라고 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배척과 큰 환난을 당하고도 굴복되지 아니하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기도생활 때문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처럼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였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였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였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였다. 합심해서 기도하였다.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가 될 사람을 뽑을 때도 바른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합심해서 기도하였다. 교회의 지도자 일곱 명을 뽑아 임명할 때에도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뽑게 하여 달라고 합심해서 기도하였다. 감옥에 갇힌 성도들이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합심해서 기도하였다. 선교사를 뽑아 파송하기 전에도 금식하며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택하여 교회를 맡길 때에도 금식하며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마다 놀라운 사건들이 발생되었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을 체험하였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배척과 큰 환난을 당하고도 굴복 당하지 아니하고 목표에 도달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그들의 열심 있는 기도생활 때문이었다.
또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배척과 큰 환난을 당하고도 굴복되지 아니하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충만한 생활 때문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처럼 주요 인물들이 모두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활동하고 있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은 그들 가운데서 함께 일하셨다.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침례를 받으셨는데,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과거의 생활을 모두 끊어버리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기 위해서 새로운 각오로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때에 비둘기 같은 성령의 임재가 있었는데, 모든 하나님의 공직에는 성령으로 인치는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직식 때에 안수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울과 다윗 왕을 임직할 때에 사무엘이 그들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안수를 한 행위가 바로 성령의 임재와 인침을 상징한 행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는 침례를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고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성령의 임재로 인침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성령 충만하심과 40일 금식기도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10일 이상 기도하였고,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그들도 예수처럼 성령 충만함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2장 4절을 보면,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하였고, 4장 8절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에게 설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성도들 또한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이들 가운데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의 대표로 뽑힌 일곱 사람도 포함된다. 바울과 바나바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하나님의 일군들이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배척과 큰 환난을 당하고도 굴복 당하지 아니하고 목표에 도달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성령 충만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하고 열성 있는 기도생활 때문에 폭풍처럼 밀어닥친 그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으로 모든 희망을 잃고 좌절과 절망에 빠졌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새 희망을 얻고, 성령 충만하여 활동하며 열성적인 기도생활로 모든 시련을 극복하는 모습은 IMF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도 시련과 역경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를 믿으면 더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겪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소망 없는 자들처럼 절망과 좌절 속에서 체념적으로 시련과 역경을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성령 충만함 속에서 활짝 열린 미래를 바라보면서 기쁨과 자원함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성도들이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승리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죽음 후에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고난 후에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거두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보상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