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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49
예수 부활의 증거[마 27:57-28: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18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썬다 싱'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당신 나라의 오랜 전통인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어떤 분이 물었다. 이 물음에 썬다 싱은 "죽었던 예수가 부활하여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 부활은 기독교가 시작된 출발점이며, 기독교가 가르치는 알맹이이다. 기독교는 부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고, 부활을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부활을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죽음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 부활은 기독교 변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된다. 예수 부활의 진실성 여부에 따라서 기독교의 진실성 여부가 판가름난다.
예수 부활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자료들은 얼마든지 있다. 부활하신 예수를 본 목격자들의 증언이 기록으로 남아 있고, 역사적 정황 증거들도 교회 안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자료 부족을 느끼지는 않다. 다만 이들 자료들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 즉 신빙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예수 부활의 증거 자료들 가운데 몇 가지만 추려서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예수 부활이 과학의 문제인지 또는 신앙의 문제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예수 부활을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하는데는 나름대로 어려움이 없지 않다. 창조와 진화를 반복된 실험을 통해서 과학적 사실로 입증할 수 없듯이, 예수 부활도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할 수 없다. 현대기술과학은 죽은 자를 살려 낼 수 없기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그래서 불가지론자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을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과학적 방법의 제한성을 인정한다. 과학적 방법이란 결국 자연에 어떤 일정한 법칙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 즉 창조나 부활과 같은 것을 실험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히 11:3)고 고백하였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롬 10:9)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부활의 문제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다. 성서가 신앙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뽑힌 자라고 말하는 이유가 아마도 아무나 창조나 부활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이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커다란 복이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은 유물이나 문헌의 연구를 통해서 입증하는 고증학 방식으로 입증하는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신빙성 있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교회 안에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정황 증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부활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어진다 해도 믿음이 없이는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 부활의 진실성 여부는 믿음의 문제이지 결코 입증의 문제는 아니다. 믿음이 있고 없음에 따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하듯이, 믿음이 있고 없음에 따라 예수의 부활을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부활의 일차적 증거는 믿음의 문제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부활이 일상생활에서 다반사로 발생된다면, 그것이 과학적 사실은 되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예수 부활의 독특성은 사라지고 만다. 또한 부활의 기초 위에 세워진 기독교의 독특성도 상실되고 만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게 존재하시면서 범죄자들을 즉시 처벌하신다면, 이 세상에는 종교도 법도 필요 없게 될 것이고, 과학도 학문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있었고, 헬라인들은 실재에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플라톤은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모습이라고 말하면서 이 두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와 '그림자'의 세계로 구분 지었다. 그리고 이 철학의 영향을 받은 헬라인들은 그림자의 세계인 이 세상에서 벗어나 실재의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로 옮겨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유대인들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헬라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가르쳤다.
둘째, 예수 부활의 직접적인 증거를 몇 가지 살펴보겠다.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람의 수가 많았다. 예수는 부활하신 후에도 40일간 세상에 계시면서 열 한번이나 사람들에게 보이셨기 때문에 그분을 목격한 사람의 수가 오백명도 넘는다.
예수가 묻혔던 무덤이 빈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예수가 묻혔던 무덤은 동굴 무덤이었다. 입구를 무거운 돌문으로 막고 진흙을 이겨 틈새를 봉한 후에 진흙에 관인을 찍어 당국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열 수 없도록 하였다. 또 시신을 훔쳐갈 수 없도록 당대 최고였던 로마 군인들이 4교대로 무덤을 지키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인은 떨어져 나갔고, 돌문은 열려 있었으며, 무덤 속에는 시신을 감았던 세마포만 남아 있고, 시신은 무덤 속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예수는 바위를 뚫어 만든 새로운 동굴무덤에 묻히셨다. 유대인의 동굴무덤은 대개가 성인이 허리를 약간 구부려야 들어 갈 수 있는 130-150㎝ 높이의 입구를 갖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본실이 있고, 입구를 제외한 본실 삼면의 벽은 시신을 안치할 수 있도록 깎아 만든 평상들이 있었는데 머리를 두는 쪽은 베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두툼하게 높여 만들곤 했다.
무덤의 입구는 큰돌을 원판으로 깎아서 막았다. 입구의 문턱은 돌문을 끼어 넣고 좌우로 굴릴 수 있도록 홈을 파놓았다. 이 때의 홈통은 무덤 입구 쪽을 낮은 쪽으로 해서 약간 경사지게 파고, 그 대신 돌문이 정확하게 입구를 막고 설 수 있도록 낮은 쪽의 턱을 높게 만들었다. 입구를 봉할 때는 돌문을 괴고 있던 받침목을 빼내고 밀기만 하면 홈통의 낮은 쪽으로 돌문이 굴러 쉽게 입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돌문을 열고자 할 때는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돌문의 무게는,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 교수들이 측량한 바에 따르면, 무려 1.5톤 내지 2톤이나 된다고 한다. 이 돌문을 홈통에서 경사가 높은 쪽으로 밀어 올리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국 캠프리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베자 성경 마가복음 16장 4절에 따르면,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라는 말씀에 이어서 가로 속에다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그곳에 누인 후 장정 20명이 굴릴 수 없는 돌로 무덤을 막았다."라고 부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돌문이 열려진 채 빈 무덤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무덤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로마 군인 16명이 4명씩 일 개조가 되어 4교대로 지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대의 로마 군인들은 천하를 통일한 제국의 군인답게 가장 잘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주후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폼페이 시가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쏟아 부은 화산재에 묻히고 말았다. 16세기 중엽 이 고대도시의 존재가 발견되어 1748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다. 현재는 도시 대부분이 발굴되어 거대한 유적공원으로서 화산재에 파묻히기 직전의 모습을 들어내 보여주고 있다.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아폴로, 비너스, 주피터의 신전들과 극장 그리고 1만 5천명을 수용하는 대투기장과 같은 건축물은 물론이고, 차도와 보도가 구별되고 횡단보도까지 있는 도로, 식품, 잡화 등의 소매점과 술집 그리고 호화 저택과 같은 귀중한 건물들이 남아있다. 그밖에도 도피하지 못한 사람들과 개, 식사중인 테이블과 여러 가지 음식물, 의료기구, 놀이기구, 포스터와 일상용품까지도 다수 발굴되어서 폼페이는 고대 로마인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 되고 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화산재에 묻힌 사람들은 한결같이 화산의 반대방향에 위치한 성문 쪽을 향해서 죽어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잘 표현해 놓고 있지만, 모두가 피신의 아수라장 속에서 화를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크게 관심을 끄는 것은 성문을 지키던 로마군인이다. 사람들은 피신하다가 성문을 향해서 죽어 있지만, 이 군인만큼은 자신의 위치에서 정자세로 죽어 있다고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화급한 상황에서도 군인의 임무를 다하면서 죽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군인 정신이 투철한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지켰다고 볼 때에 감히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셋째, 예수 부활의 정황 증거를 몇 가지 살펴보겠다.
이들 정황 증거들은 기독교가 지난 이 천년 동안 지켜온 주일예배, 성만찬, 침례, 그리고 변화된 초기 신자들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일 예배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매우 확실한 정황 증거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매우 엄격하게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늘로 두 번 깁거나 두 글자를 쓰지 않았으며 불을 끄거나 켜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지켰다. 그런데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던 초대교회가 이 안식일을 무시해 버리고 일요일을 지킨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일가친척과 국가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고 버림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한데는 예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날을 '주의 날' 또는 줄여서 '주일'이라고 부르면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에 모였다. 예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지 않았다면, 주일 예배는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독교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부활과 같은 사건이 아니고서는 유대인으로써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될 수 없으며, 안식일을 무시하고 주일 예배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침례교 교인이었던 한 미국인 여성이 유대교에 개종하였다. 그녀는 단순히 개종에 머물지 않고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개혁주의 유대교에 속하고 있다. 이 여인이 이스라엘로 이주하자 이스라엘에서는 이 여인의 유대인 자격에 대한 시비로 온통 국가가 시끄러워졌다. 이 일이 있는 직후 1988년에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자격을 정통파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다 실패한 바 있다. 잠시 잠잠하다가 1997년 들어 이스라엘 의회는 다시 '유대인 자격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이 개정안은 "정통파 유대교 소속 라비를 통해 개종 절차를 밟은 사람만을 유대인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만일 이 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내 유대인중 90%가 넘는 개혁주의 및 보수주의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상당수 유대인들이 졸지에 이방인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배타적 속성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정도인데 하물며 이 천년 전인 경우에는 어떠했겠는가?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기독교인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던 사람이며, 바울 자신도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는 유대인들로부터 서른 아홉 대의 곤장을 다섯 번 이상 맞았고, 돌로 몰매를 맞고 죽었다가 살아 난 적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 부활과 같은 특별한 이유 없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수께서 제정하시고 지난 이 천년 동안 교회가 지켜왔던 성례인 침례와 성만찬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매우 확실한 정황 증거들이다. 침례와 성만찬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에 동참하는 예식이다. 이들 예식이 초대 교회 창립 때부터 시작된 것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며, 기독교만의 독특한 예식으로 발전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순교를 불사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변화된 모습 또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매우 확실한 증거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절망과 실의에 빠졌던 제자들에게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온 것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 때 계집종 앞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사두개인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고, 마지막에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도 다메석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써 평생을 복음전도에 힘쓰다가 마지막에는 네로에게 죽임을 당했다. 전설에 의하면, 대부분의 제자들이 제 각기 여러 나라들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이상의 몇 가지 정황 증거들(circumstantial evidences)만 가지고서도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문제는 입증이 아니라, 믿음이다. 예수 부활의 역사성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예수 부활을 믿고 부활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승리할 것이지만, 부활을 미신으로 무시하는 사람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며, 마지막 때에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