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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27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2)[빌 2:5-8, 고후 1:20-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590  
{좋은 생각} 97년 5월 호에 실린 글 가운데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라는 좋은 시가 있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삶이 힘들어 지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새 힘이 생기고 삶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슬픔과 아픔이 나를 휩쌀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슬픔이 옅어지고 아픔이 치료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좌절하고 낙심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소망의 언덕에 서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일이 잘 되지 않고 실수하여 야단맞을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나의 부족함이 깨우쳐지고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다짐과 노력을 하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외로움과 쓸쓸함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정다운 모습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미움이 일어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미움이 사라지고 다시 사람을 신뢰하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불평이 가득하고 웃음이 사라질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불평이 떠나고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곁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산다는데 있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지치고 크게 좌절하고 자주 낙심한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한 때 자기를 사랑했던 사람들, 혹은 지금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크게 실망을 했거나 배신감을 느낀 경우들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랑이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 변치 않은 영원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영원히 변치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는 보이지 않게 존재하시는 것, 자주 침묵하시는 것, 인간에게 이성과 자유의지를 주신 것,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찾으시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시는 것, 재림을 미루시며 심판을 보류하시는 것 등이 있다. 여기에서는 앞의 글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것과 우리를 대신해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과 구원과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첫째,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죽어야할 그 자리에 대신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오셨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면서도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취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아니, 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고 하였다.
또 마태복음 20장 28절을 보면,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고 하였다.
또 요한일서 3장 16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안다."고 하였다.
이들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오로지 우리 인간을 대신해 죽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리를 버리시고, 외아들 예수의 몸으로 이 세상에 내려와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최후에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한과 모든 특권을 버렸을 뿐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인간끼리 화목하며, 자연과도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셨던 것이다. 이 얼마나 큰사랑이며, 큰 희생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권한과 특권을 포기할 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매우 존귀한 분이면서도 낮고 천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고,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셨다.
둘째,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죄인인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용서를 받기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어도 부족할 터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외아들을 통해서 친히 우리 부족한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셨다.
로마서 3장 25-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사람에게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피를 받으면 속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를 화목제물로 주셨다'는 말씀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또 인간과의 화친을 위해서 준비하신 선물을 뜻한다. 그러나 화목제물은 본래 허물 많은 인간이 인간들의 배반으로 진노한 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우리가 하나님께 화목제물을 바쳐야 할 터인데,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통해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셨고,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 인간과 화친을 맺으셨으며, 또한 성령까지 선물로 주시고 이 화친을 더욱 견고케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화친은 우리 인간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솔선해서 외아들을 통해서 희생하심으로 맺은 화친이기 때문에 이는 진실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요, 희생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법은 있어도 신이 스스로 인간을 위해서 희생된다는 법은 없다. 또 신에게 바친 제물을 인간들이 나누어 먹는 일은 있어도, 신이 인간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된 제물을 인간들이 나누어 먹는다는 법은 없다.
조선조의 의례절차를 적은 {춘관지}에 따르면, 경칩이 지나면 임금이 제주가 되어 서울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檀)에서 소를 잡아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선농에게 제사를 바쳤다 한다. 이 때 바쳐진 소는 쇠머리며 내장이며 뼈까지도 버리지 않고 솥에 넣고 끓여서 임금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평등이 나누어 먹었는데, 이를 선농탕이라 했다. 설렁탕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출애굽기 24장 5-11절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에, 시내산에서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하나님과 화친의 계약을 체결한 후에,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나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성스런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말씀이 있다. 특히 화목제물인 경우에는 내장과 기름만을 불사르고 고기는 제사 후에 제사를 드린 자와 그의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레 1-7장).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사란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법이지,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바쳐서 희생한 후 그 살코기와 피를 인간들이 먹고 마시게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을 뿐 아니라, 성만찬 제정을 통해서 우리의 음식이 되어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몫인 축복과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 인간의 몫인 저주와 죽음을 취하셨다. 이 얼마나 큰사랑이며 희생인가?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구원과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은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목숨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이나 값없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또한 이를 보증하시기 위해서 성령까지 주셨다.
고린도후서 1장 21-22절을 보면,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1장 13-14절을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시고 보증하셨다'는 말씀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확실하고 안전한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드러내 보여주는 말씀이다.
만일에 우리가 대지 100평에 건평 50평 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우리는 주인을 만나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계약서에는 대지와 건평, 그리고 위치와 양도조건 즉 매매가와 계약금 그리고 중도금 지불 방법 등이 기록될 것이다. 주인과 합의된 매매가는 사는 사람이 지불해야 할 돈이다. 매입자가 매도자에게 계약금을 지불하면 쌍방이 매매계약서에 인감을 찍어 계약성립을 확인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체결되는 계약방법은 매우 다르다.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새로운 집과 땅을 사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매도자이신 하나님이 전혀 매입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매입자인 우리를 대신해서 계약금을 지불해 주시고, 계약서에 인감을 찍어 매매가 성립되었음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확인해 주신다. 이 때 하나님이 지불하시는 계약금과 계약서에 찍힌 인감이 바로 성령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 또한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령을 값없이 은혜로 주신다. 이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신다.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이며, 희생인가? 매매계약도 우리가 원해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셨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주셨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계신다. 삶이 힘들어 지칠 때면 얼른 하나님 있음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러면 새 힘이 생기고 삶의 짐이 가벼워질 것이다. 슬픔과 아픔이 휩쌀 때면 얼른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러면 슬픔이 옅어지고 아픔이 치료될 것이다. 좌절하고 낙심될 때면 얼른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러면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소망의 언덕에 서게 될 것이다. 일이 잘 되지 않고 실수하여 야단맞을 때면 얼른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부족함이 깨우쳐지고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다짐과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면 얼른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러면 외로움과 쓸쓸함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정다운 모습이 밀물처럼 밀려올 것이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미움이 일어날 때면 얼른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미움이 사라지고 다시 사람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불평이 가득하고 웃음이 사라질 때면 얼른 하나님이 있음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러면 불평이 떠나고 미소가 피어오를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