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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13
감사의 기적(2) [살전5: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52  
앞글에 이어서 감사에 관해서 몇 가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감사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감사로 인한 혜택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우리는 앞글에서 요한복음 6장 1-13절을 통해서 한 소년의 감사로 인해서 배고픈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되는 큰 혜택을 입게된 장면을 살펴보았다. 크레첸이란 어린 소녀의 감사로 인해서 배고픈 가족들이 음식 살 돈을 얻게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착한 농부의 감사로 인해서 가족을 위해 일할 큰 황소를 얻게된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이와 같이 감사는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많은 고생 끝에 백화점 사업으로 10대 재벌에 들고, 재무부장관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존 워나메이커가 10억 원 상당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애들이 줄을 서서 추수감사 예물을 제단에 바치는데, 나는 너무 가난해서 빈손으로 온 것이 너무 괴로워서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벽돌을 굽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레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잠버드 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단독으로 10억 원 상당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을 하게 되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앞글에서 한 소년이 예수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감사함으로 바쳤고, 예수의 축사 후에 일어난 엄청난 기적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린 소년 존이 한 수레의 벽돌을 교회에 바쳤고, 목사의 축복기도 후에 일어난 엄청난 기적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의 감사의 바침과 목사의 감사의 축복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은 조그만 것이라도 정성어린 감사로 하나님께 바쳐야겠고, 목사도 정성어린 감사로 축복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존 워나메이커의 감사를 통해서 일어난 기적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심으로 인해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고, 그로 인해서 일자리를 얻게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에게 딸린 수 천명의 식구들이 빵을 먹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오늘날에도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감사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감사는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박해석의 글 가운데 '기쁜 마음으로'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기쁜 마음으로
너희 살을 떡처럼, 떼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너희 피를 한잔 포도주처럼 찰찰 넘치게 따르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조그만 틈을 벌려 주는 것, 조금씩 움직여 작은 곁을 내어 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한 주부가 사냥이나 골프에 빠져서 가족을 일체 돌보지 않는 남편을 팔겠다는 이색 광고를 신문에 냈다.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사냥 도구와 골프채 및 개 한 마리는 덤으로 드림." 광고를 내니까 관심 있는 여성들로부터 60여 통의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 중에 남편을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남편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행하게 여기라"는 한 과부의 충고가 있었고, "남편이 바람 안 피우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는 한 주부의 조언이 있었고, "남편과 헤어진 뒤 아이들의 양육문제로 어려웠었다"는 이혼녀의 충고가 있었고, 더러는 "남편 말고 개만 줄 수 없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감사는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감사가 없으면 이 부인처럼 불평과 불만만 생기게 한다.
둘째, 감사는 건강을 가져다준다. 한때 이상구 박사의 T 임파구(淋巴球) 학설이 한국인의 건강관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상구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마음을 편하게 먹고, 매사에 감사하며, 즐겁게 살면, 병이나 암에 대한 자체 저항력인 T임파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설이 설득력을 갖게 된 이유는 인체의 생리가 정신에 의해서 많은 부분 지배된다는 의학적 조명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한국의 건강과 장수철학에서도 분에 넘게 놀라거나 성내거나 슬퍼하거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거나 의심하거나 초조하거나 하면 음양의 조화가 낮아져서 병이 생기고, 덕담을 하며, 매사에 대범하고 편하게 살면 조화가 켜져서 있던 병도 고쳐지고 건강해진다 하였다.
이런 감사철학으로 장수를 누렸던 사람이 황희(黃喜)이라고 한다. 황희는 인기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씨조선의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5대 임금을 섬긴 정승이다. 황희는 종(奴婢)의 자녀들이 사랑방에 들어와 옷을 밟고 수염을 뽑고 공문서에 오줌을 싸도 노여움 없이 웃으며 손수 훔치곤 했으며, 그의 집 배나무에다 아이들이 돌팔매질하여 잘 익은 배가 뜰 안에 떨어지면 그 배를 주워서 담 밑에 숨어 있는 아이들에게 갖다주게 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황희는 불교정책을 두고 성균관 학생들이 과격하게 시위하며, "네 따위가 소위 정승이 되어 임금의 그릇됨을 바로잡지 못한다"고 윽박지르자 "너희들의 이만한 기개 없이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오히려 감사했다고 한다. 이런 감사 생활 때문에 황희 정승은 90세까지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수가 있었다.
이런 감사철학을 실천에 옮기려고 조선의 선비들은 일곱 모가 난 주사위를 만들어 염주 굴리듯이 손아귀에 굴리며 살았다고 한다. 주사위의 일곱 개 면에는 사(謝, 사례할), 인(忍, 참을), 찬(讚, 기릴), 과(過, 지날)와 같은 일곱 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하루에 감사하는 말을 세 번 하라,  홧김에 나오는 말을 세 번 참아라,  칭찬하는 말을 세 번 하라,  잘못했다는 말을 세 번 하라,  세 번만 꾸짖지 마라,  세 번만 탓하지 마라,  세 번만 헐뜯지 마라는 일곱 교훈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감사 생활은 건강을 가져다준다.
셋째, 감사는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준다. 감사하면, 항상 기뻐하게 된다.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된다.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된다. 매력적인 인간성을 지니게 된다. 감정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가지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창조적인 생활을 하게 한다.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게 한다. 영육간에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자의 생활은 불행하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라는 이름의 문학자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들을 그 후 다시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꾸며보았다.
예수께서 처음 만난 사람은 술 주정꾼이었다. 그는 폐인이 다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물었다. "당신은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술 주정꾼이 대답했다. "내가 앉은뱅이였을 때, 당신이 나를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다닌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 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지만, 만족할만한 직업 하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은 창녀였다. 그 여자는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을 당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물었다. "당신은 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소?" 여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내어 새 사람이 되게 하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입니까? 고독을 참을 수 없어서 다시 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불량자였다. 그 불량자는 이웃과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예수께서 물었다. "여보게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소?" 불량자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준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였습니까? 보이는 것들은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게 하는 것들뿐이지 않습니까? 결국 나는 화풀이로 닥치는 대로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단편은 은혜를 감사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우리가 부모와 선생님들로부터 혹은 우리의 이웃들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고, 창녀가 새사람이 되며, 소경이 눈을 뜨는 것 이상으로 큰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감사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감사는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생활로 자기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 새로운 삶을 출발해놓고서도 옛 사람의 행실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컸다. 그러나 그때마다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며 자랐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지만 감사표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배경도 있었다. 나를 도와준 그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가 충분히 감사를 표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감사표현은 잠시도 주저하거나 보류해 둘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 바로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한다.
{좋은 생각} 97년 12월 호에 실린 '야전잠바 이야기'의 저자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어린 시절에 했던 것처럼 감사하지 못한 경험을 회고하고 있다.
이 글의 저자인 정용철(발행인)은 20년 전 적근산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소대장이었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이만섭 하사가 제대할 때에 그가 아껴 입었던, 제법 값이 나가고 제대 후에도 검정 물을 들여 입으면 좋을 두툼한 미제 야전잠바를 주고는 제대를 하였는데, 가정 형편도 어려운 그가 잠바도 없이 살을 에는 추위 속을 걸어 막막한 사회로 떠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것이 내내 부끄럽고 후회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살아가면서 녹지 않는 후회란 물질로 손해본 큰 실패나 인간관계의 극적인 갈등이 아니라, 바로 이런 작은 실수와 갈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선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일, 사랑에 애탈 때 사랑의 눈빛 한 번 주지 않은 일,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의 기회를 놓친 일, 기쁨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한 일 등 우리의 마음이 사랑과 위로와 감사에서 멀리 떠나 있을 때 나타난 일들이 우리 가슴에 오래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하지 못하면 후회하게된다.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다 마찬가지이다.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말고 표현해야 한다. "감사합니다."라고 언제 어디서나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복을 끌어들이지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오는 복도 차단한다. 우리는 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좋은 습관을 가져야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은 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