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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4 21:06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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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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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생명의 복음(요 20:30-31)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
누가 나에게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첫째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교회, 둘째 신약성경을 표준삼는 교회, 셋째 오직 그리스도인뿐인 교회, 넷째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오늘은 네 번째인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왜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이어야 하는가? 왜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왜 그리스도의 교회는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인가? 이런 질문들을 바탕에 깔고 말씀의 주제인 ‘빛과 생명의 복음’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서 계획하신 구원의 소식을 말합니다. 이 복음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죄 값을 받고 마땅히 죽어야할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으로써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우리와 같이 낮고 천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흑암에 처한 사람들을 빛에로 인도하셨고,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살려내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성화사역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고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또한 의롭다고 칭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인도하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신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의 목적은 무엇인가?
복음의 목적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 믿고 빛과 생명을 얻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요한은 복음서의 기록목적을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밝힌 이 목적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흑암에 사는 사람에게 빛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고, 죽음에 처한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보다 더 기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호롱불이나 촛불에 의존하던 시절, 집집마다 전기시설을 마치고, 백열등에 빛이 밝혀지던 날, 온 마을이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덩실덩실 춤을 추던 때가 있었습니다. 199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가운데 ꡔ눈먼 사람들의 도시ꡕ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눈이 멀고, 눈먼 사람을 만나는 사람도 눈이 멀고, 그래서 나중에는 모든 시민들이 다 눈이 멀어버리는 비극과 눈먼 상황에서 벌어지는 참혹함을 그렸습니다. 보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육체적인 장애이든, 영적인 장애이든, 사회적인 병폐이든 간에 흑암에 있다는 것은 비참한 것이고, 흑암에서 벗어나 빛에로 나온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에 직면했던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이 닿고 있다는 소식 또한 기쁜 일입니다. 그 상황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혹은 영적인 것이든 간에 죽어간다는 현실은 비참한 것이고, 죽음의 현실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른다는 소식은 그 자체가 큰 기쁨이요 안도입니다.
이 복음의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가 이야기한 세 가지 주제들,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교회,’ ‘신약성경을 표준삼는 교회,’ ‘오직 그리스도인뿐인 교회’는 교회가 세워져가는 또는 존재하는 방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빛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는 말은 교회의 존재목적을 분명하게 알리는 표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나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온 땅에 빛과 생명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 또한 온 땅에 빛과 생명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가진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일컬어 ‘로고스’라 하였는데, 로고스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면서도 스스로는 결코 변치 않는 진리를 말합니다. 요한복음은 이 불변의 진리 ‘로고스’를 빛과 생명이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불변의 진리 로고스가 흑암과 죽음의 세계에 주는 변화 또는 불변의 진리 로고스를 믿는 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일컬어 빛과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빛과 생명에 반대되는 개념은 어둠과 죽음입니다. 어둠과 죽음은 세상의 특징입니다. 세상은 자연의 법칙이 지배합니다. 자연의 법칙은 혼돈의 법칙이요, 죽음의 법칙이요, 엔트로피(entropy)의 법칙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마법의 굴레를 벗고 영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 길은 빛과 생명 되시며, 변화의 주체이면서도 자신은 변치 않는 ‘로고스’요, 독생자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일어나는 것이 변화입니다. 이 변화의 출발은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에서 던진 첫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습니다. 여기서 ‘천국’이란 그리스도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말합니다. 이 천국은 또한 ‘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또 ‘천국이 가까이 왔다’란 말은 ‘새 시대가 열렸다.’ ‘교회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 ‘회개’한 사람들, ‘변화’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 시대에 걸맞은 ‘변화’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를 주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2장에서 예수님을 만난 맹물은 고급 포도주로 바뀝니다. 제3장에서 예수님을 만난 유대인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습니다. 제4장에서 예수님을 만난 혼혈인 사마리아 여성은 거듭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이방인 헤롯 안디바의 신하는 아들의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물이 포도주가 되었듯이, 예수님을 만난 유대인의 율법이 복음으로 바꿨고,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세상에 대한 불신이 믿음으로 바꿨고, 예수님을 만난 이방인의 아들의 죽음이 생명으로 바꿨습니다.
제5장에서는 율법의 희생자였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질병의 고통과 율법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변화를 겪게 되고, 제6장에서는 굶주린 민중이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하지 아니하는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없음’이 ‘있음’이 되는 창조를 체험하게 됩니다. 또 어두운 밤에 폭풍을 만나 죽음에 직면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죽음의 위기에서 건짐을 받는다는 ‘어둠’이 ‘빛’이 되고, ‘죽음’이 ‘삶’이 되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제 요한복음의 총체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건이 남았는데, 제9장에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고 빛을 보게 되고, 제11장에서는 죽은 나사로가 예수님을 통해서 무덤에서 살아나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일컬어 “세상의 빛”(8:12)이라고 하셨고, 생명을 주는 “사람들의 빛”(1:4)이라고 하였습니다. 흑암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예수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9:33) 또는 “주님”(9:38)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제9장의 소경치유이야기를 제5장의 38년 된 병자치유와 비교해보면, 이 두 명의 장애인들이 모두 안식일 날에 각각 베데스다와 실로암 연못에서 고침을 받고 있고, 이 일로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며, 38년 된 병자치유에서는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맹인치유에서는 “빛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어둠에서 벗어나 빛에로 인도되고, 죽음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생명 가운데 살게 됩니다.
복음을 가진 자의 사명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에 앞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교회에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 사명에 따라서 교회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해야 합니다.
첫째,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막 16:15; 행 8:4). 둘째,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마 28:19). 셋째, 침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침례는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세주로 고백한 자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마 28:19). 넷째,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행 5:20; 마 28:20). 이는 에베소서 4장 12-14절의 말씀대로, 성도를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며,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달하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인가?
2002년 8월 7일자로 ꡔ크리스치앤너티 투데이ꡕ(Christianity Today)지가 보낸 이메일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과 반응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에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써 마치려고 합니다.
[질문]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나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라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답]
제임스 : 모든 사람에게 백만 달러처럼 대우하라. 우리가 사랑하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는 그들이 돈보다 무한히 더 큰 가치를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알렌 박사 : 그리스도의 특성을 성실히 실행하라.
게리 : 누군가가 당신에게 못되게 할 때라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친절을 베풀라.
랠리 : 언제 어느 곳에서든 모든 사람에게 미소 짓고, 사랑하며, 복이 되라.
데일 : 극도의 겸손과 환대를 보이라.
비크 :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고 투명하며 참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라.
윌리엄 : 말은 언제나 많은 것을 전달하지 못하지만, 행위는 많은 것을 말한다.
헬런 : 순수하게 영향을 끼칠 기쁨의 일관된 태도를 지니라. 결국 우리는 기뻐할만한 많은 것을 갖지 않았는가!
로우리 :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라. 그리고 결코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 나는 죄를 좋아해서는 안 되지만, 죄인을 사랑하겠다.
데이빗 : 불의를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인다든지, 상처받은 이들을 돌본다든지, 우리 자신의 눈에 낀 들보를 지적한다든지, 우리들의 이웃들과 원수들을 위한 삶을 영위한다든가하여 원수들에게 사랑을 보이는 행위들.
리자 : 나는 직장동료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어리석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 성경 따위가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궁금하게 만든 것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발견한 그녀의 얼굴에 번진 표정, 눈가에 띤 미소, 티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스도인의 표정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때때로 당신이 행하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당신이 그것을 행할 때 보이는 얼굴 표정은 대단한 것이다.
글렌딘 : 가까스로 또는 보통이 아닌 언제나 뛰어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 요구사항 이상을 들어주라. 그러면 그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저 세상과 다르게 처신하라. 특별한 그리스도인이 되라.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어떤 사람은 앞서 소개한 모든 대답들을 간결하게 요약해주는 말로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당신은 마치 어떤 이들이 읽게 될 유일한 성경인 것처럼 매일을 살라(Live each day as if you are the only Bible some people will read).
예수님은 당신의 삶의 모델인가? 당신은 당신의 매일의 삶을 통해서 그분의 속성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삶을 열심히 본받지 않고서는 우리가 위에 언급된 그 어느 것도 진정으로 해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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