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 믿음, 보배 약속09: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18)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15-16절 “...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는 베드로서신들이 쓰일 당시에 이미 바울서신들이 널리 읽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실제로 바울의 선교서신들 곧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는 신약성경 27권들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었고,
베드로전서보다도 10여년 먼저 기록되었다. 이들 서신들은 모두 회람서신들이었고, 공동예배 때 정해진 분량의 신약성경 곧 당시에는 아직 정경들이
아니었지만 구약정경에 필적할만한 그리스도교의 문서들을 읽어주는 독서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복사본들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또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는 바울서신들의
일부 내용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기보다는 유대인들에게 알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상당수
유대인들은 바울의 율법이해 또는 율법에 관한 복음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은 유대인들이었고,
“다른 성경”은 구약성경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란 개념의 정경들이 없었던 때였고, 바울서신과 같은 그리스도교 문서들이
집필되던 시기였다. 또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 자들은 유대인 에비온파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가 전한 예수님과 복음을
부정하고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 이단자들 때문에 베드로는 17-18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13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는
재림신앙은, 비단 우리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카비루스(Cabirus)신앙, 불교의 미륵신앙과 같은 타 종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그 희망’(Ha-Tikvah) 신앙이다. 그리고 재림신앙의 양상은 ‘그 희망’이 낙관적일 때 후천년설로 나타나고, ‘그
희망’이 비관적일 때 전천년설로 나타난다.
유대인들은 주전 586년경부터 모세의 재림을 희망하여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 희망’이 비관적일수록 전천년설적이었고, 혁명을 꾀하는
자들 중에서 자칭 ‘재림 모세’ 곧 메시아가 출현하곤 했었다. 페르시아시대의 인물들 가운데에는 스룹바벨과 에스라가 일정부분 이 재림 모세의
범주에 속할 수 있었고, 신구약중간기인 헬라시대에는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us)가 강력한 재림 모세로 간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다 마카비는 헬라로부터 유대인을 해방시켜 하스몬왕가가 세워지는데 공헌하였고, 주전 64년 로마에 멸망하기까지 100년간 주권을 지속시킨
영웅이자 혁명가로서 재림 모세에 준하는 인물이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30여명의 거짓 메시아들이 출현했었다고 말한다. 그들 가운데 세례 요한, 예수님, 발 코크바, 사베타이 제비가
포함된다. 민중이 세례 요한을 보려고 광야에 나간 것은 그가 재림 모세인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헤롯 안티파스도 요한에게 관심을 보였고,
두려운 나머지 살해하였다. 이라크 남부와 이란 남서부에는 수천 명의 만다야교(Mandaeism)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지금도 세례 요한을 재림
모세로 믿고 있다. 복음서들에서는 예수님이 자기가 오실 자로 예언된 재림 모세 곧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신 시점을 세례 요한이 사망한 직후로 적고
있는데, 그 이유가 민중의 일부가 세례 요한을 재림 모세로 믿었기 때문이다.
발 코크바(Bar Kochba, 별의 아들)로 불린 코시바의 아들 시몬(Simon ben Kosiba)은 뛰어난 혁명가였다. 그는 주후
132-135년 사이에 로마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을 선포했고, 그 증거로 그가 찍어낸 주화들도 여러 종류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로마제국에 무너짐으로써 유대인들에게 1,800년이 넘게 시련과 실망(Kozeba)을 안긴 인물이었다.
터키 서머나 출생의 유대인 샤베타이 제비(Shabbetai Zevi)는 1665년 5월 31일에 자신이 진정한 메시아 곧 재림 모세라고
선포한 인물이었다. 그의 주장은 수세기에 걸친 박해와 추방으로 고립무원에서 고군분투하던 온 세계의 유대인들을 일시에 흥분시켰고, 일찍이 그
누구도 얻지 못했던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샤베타이는 1666년 1월 이스탄불에서 반역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이슬람교로
전향하여 황실연금을 받았으며 충성스런 무슬림으로서 살다가 1676년 9월 17일 사망하였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유대인들이 재림 모세의 강림에 대한 기대를 제2 모세를 예언한 신명기 18장
15-18절, 새 율법과 새 언약시대를 예언한 예레미야 31장 31-33절, 새 성전시대를 예언한 에스겔 37장 25-28절,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를 예언한 이사야 65장 17-18절에서 찾는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같은 유대인들의 기대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고 믿는다.
지난 2천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대는 베드로후서에 언급된 노아의 홍수심판과 주의 강림에 의한 최후심판 등에서
보듯이, 주의 강림 직후 “새 하늘과 새 땅”의 천년시대가 열린다는 전천년설이 처음 300여 년간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주후 313년 제국이
기독교의 후원자가 되면서부터는 황제를 적그리스도, 제국을 음녀로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392년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비잔틴시대를 “새 하늘과 새 땅”의 천년시대로 보는 후천년설이 지배하였다. 이 후천년설은 어거스틴이 주장한 이후 500년 이상 유지되었다.
12세기 암흑시기로부터 16세기 종교개혁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천년설이 다시 부각되었고, 폭력을 동반한 천년왕국 운동(혁명)이 잇따라 일어났다.
종교개혁가들 중에는 가톨릭교회를 음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같은 주장이 오늘날에도 일각에서 주장되고 있다. 반면에
18-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낙관적 후천년설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유럽의 계몽주의와 1달러 지폐에 실린 국장(國章)들에서 보듯이 미국에서는
자유와 개척정신이 맞물려 있었다.
20세기에는 제1-2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 이스라엘의 재건 등의 여파로 시대구분설(세대주의 전천년설)이나 역사적 전천년설이 다시
유행하였다. 전후 베이비붐시대에는 무천년설, 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시대구분설이 신학자들 사이에서 각축을 벌렸다.
21세기는 모바일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시대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술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려는 시대이다. 그런데 이런 과학기술의 발달이 낙관적 후천년설적 기대감을 키우기보다는 오히려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 세계는 이성과 양심이 사라져가고 양육강식의 동물적 광기가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다. 첨단 기계문명과 AI시대가 세계를
유토피아(utopia)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인 디스토피아(dystopia)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2019년 초에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정국까지 겹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보편화되고 이동이 제한된 비대면 상태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활동에서
이성과 자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시한부종말론과 같은 비관적 전천년설이 다시금 세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