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 믿음, 보배 약속04: 이단자들의 최후(1)(벧후 2:1-4)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1절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다. 첫 소절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다,”는 “전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난 것과 같이”(새번역)란 뜻이다.
여기서 말한 “거짓 예언자들”은 당대 신약시대 그리스도교의 이단자들이 아니고, 과거 구약시대 유대교의 이단자들을 말한다. 베드로는 이어지는
글에서 이들 유대교의 이단자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이미 베드로가 자신의 글의 목적이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했듯이, 베드로는 여기서 독자들에게 구약시대의 이단자들이 받았던 보응들을 생각나게 하려하였다. 그것은 이단자들을 주의하라는 경고의
표시였다. 구약시대에 유대교는 민족종교이고 실천종교였기 때문에 유대교 안에 이단자들은 거의 없었다. 2장 15절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에서 브올의 아들 발람은 모압평지에서 히브리인들을 꾀어 브올(Peor)의 바알을 숭배케 한
이방인이자 바알의 선지자였다.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야훼신앙의 말살을 꾀한 이세벨도 이방인이자 바알의 선지자였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꾀어
거짓을 가르쳐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계 2:14, 20)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신약성경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1절의 둘째 소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는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그리스도교 이단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1장 20-21절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는 말씀에서 볼 때,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고, 2장 3절에서 볼 때,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이득을
삼는” 자들이다.
참 교사와 거짓 교사,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는 받은 것(1:20-21)과 만든 것(1:16, 20, 2;3)의 차이이다. ‘받은
것’이란 성경의 예언들을 말하고, 예언자들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며, 그들이 말한 예언들은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을
뜻한다. 반면에 ‘만든 것’이란 “교묘히 만든 이야기들”(1:16), 성경의 예언들을 “사사로이”(자의적으로) 푼 해석들(1:20),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탐심으로 지어낸 말들”(2:3)을 말한다. 베드로는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2장 4절에서 “... 그들이 가만히(몰래)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다.”고 했고(참고 유 1:4), 고린도후서 11장 4절과 갈라디아서 1장
6-9절에서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2절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에서 “호색하는” 그들은 방탕한 초기 영지주의자들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영지주의자 중에는 금욕을 추구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육체를 악하다고 보고 함부로 한 방탕주의자들도 있었다. 또 그들은 독생자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였다.
3절 전반절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는다.”에서 그들은 사도 바울을 괴롭히고, 이방인 교회들에 침투하여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전한 유대인 에비온파(Ebionites)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문자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뜻하는 에비온파는
예수님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였고,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 혹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일깨워준 참교사로만 인정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섬김과 예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따름과 실천의 대상으로만 삼았다. 또 그들은 노아홍수이전처럼 채식을 고집하였다.
사무엘 진너(Samuel Zinner)는 그의 <도마 복음>(The Gospel of Thomas)이란 책에서, 이 둘을 별개의
그룹들로 보지 않고, 이 둘이 통합된 유대교적 초기 영지주의 그리스도인 에비온파로 보았다. 진너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전 6:12)며
자유를 외친 자들이나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딤전 4:3)며 금욕(채식)을 외친 자들을 모두 에비온파로 보았다(128쪽).
에비온파 이외에도 ‘엘카사이파’(Elcesaites, AD 100-400)라 불린 영지주의 성향의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에비온파와
비슷한 무리였다.
그리스도교에 로마당국의 박해의 폭풍이 일기까지는 그리스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수용하는데 크게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황제숭배를 비롯해서 수많은 신들을 믿고 있었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및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같은 서사시들에 담긴 신화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복음을 수용하고 이해하는데 예표나 모형과 그림자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로마황제들이 그리스도교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변방에 거주하던 야만민족들의 남침이
잦아지면서부터였다. 일부 황제들은 그 까닭을 로마의 수호신들이 자기들에게 불충실한 제국에 분노했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로 판단하였고, 로마의
신들에게 충실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탄압하였다. 따라서 사도시대에 교회들의 적대자들은 로마가 아니라 유대교인들과 영지주의에 경도된 유대인
에비온파들이었다.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3절 후반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한다.”는 탐심 때문에 하나님과 타인을 이익의 수단과 도구로 삼거나 그 탐심을 채우기 위해서 거짓을 꾸미는 자들에게 마땅한 하나님의 심판이
닥칠 것을 경고한 4-22절의 도입 구절이다.
4-22절은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있었고, 구약성경 혹은 극히 드물게 구약 위경에 실린 내용들을 근거로 이단자들을 경고하고 있다.
계시록과 히브리서의 저자들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당대에 너무나 잘 알려진 그리스로마 신화를 전혀 인용하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한 분 야훼만을 믿었던 그들은 신화를 “망령되고 허탄한”(딤전 4:7)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4절에서
“범죄한 천사들”이 갇힌 곳을 신화에 등장하는 “타르탈로스”(Tartaros)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신화를 믿어서가 아니라 당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채용한 것에 불과하다. 참고로 신약성경에서는 ‘타르탈로스’라는 말이 이곳에서만 쓰였고, 다른 곳들에서는
‘무저갱’(abyssos)이란 말이 주로 쓰였다(눅 8:31, 롬 10:7, 계 9:1,2,11, 11:7, 17:8, 20:1,3).
4절에서 “범죄한 천사”는 쌍둥이 서신 유다서 1장 6절로 볼 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로서 심판
때까지 ‘타르탈로스’에 갇혀있는 자들이다. 그리스신화에서도 ‘기간테스’(Gigantes, Giants)나 ‘티탄’(Titan)과 같은 신들이
타르탈로스에 갇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특히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는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전에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신들이 티탄(Titan) 신들과 10년간 하늘에서 펼친 전쟁에서 이긴 후 티탄(Titan) 신들을 타르탈로스에 가두고 봉인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전쟁을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라 일컫는데, 계시록 12장 7-9절에도 하늘에 전쟁이 있었고, 미카엘과 그의 사자들이
마귀 곧 사탄과 더불어 싸워 이겼다는 말씀이 있고, 20장 1-3절에는 천사가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고 인봉했다가 일천년 후에 잠깐 놓일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스신화에서도 ‘기간테스’로 불리는 신들이 타르탈로스에 갇혔다가 풀려나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과 결전을 펼치는 이야기가
있다. 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신들을 모독하고 반역한 인간들이 쉼과 안식이 없고, 고통만 있는 타르탈로스에 갇혀 있는데,
그들이 바로 갈증에 시달리는 탄탈로스, 노동에 시달리는 시쉬포스, 불 바퀴에 매달린 익시온, 살을 파 먹히는 티튀오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다나오스의 딸들 등이다. 베드로가 4절에서 “범죄한 천사들을” 언급한 것은 하늘의 천사들조차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갇혀야 했다면, 죄를 범한 인간들의 형편은 어떻겠는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