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사귐03: 사귐(요일 1:5-10)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요한일서의 기록목적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가 마땅히 갖춰야할 몇 가지 중요한 덕목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인데, 모두가 “형제 사랑”과
관련된 것들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 자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이다.
요한일서 1장은 ‘사귐’에 관한 내용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귐, 예수님과 우리와의 사귐,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사귐에 관한
내용이다.
요한일서 1장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사귐을 하나님과의 사귐과 동일하게 보았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들은 것들을
선포하는 이유를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다”고 했고, 또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의 사귐”은 교회 공동체의 사귐을 말한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사귐은 성삼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만의 교제 공동체가 아니고,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 참여하는 특별한 공동체란 뜻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삼위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초대되어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여 그분의 교제 속에 참여시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베푼 천국잔치에 하나님이 초대를 받아 참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푼 천국잔치에 그리스도인들이 초대를 받아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들은 바를 전한 것은 하나님이 베푼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빛 가운데 거하라는 초대였던 것이다.
1장 5절에서 요한은 사도들이 예수님께 듣고 전한 소식이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 빛이시고 참 빛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성삼위 하나님의 교제 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 빛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그 빛 가운데 들어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데에 있지,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인간보다 높은 계급인 빛의
사자들로부터 영지(gnosis)를 받아 깨달아서 어둠의 세계인 육체의 몸과 세계를 벗어나 탈출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또 하나님과의 사귐은 빛 가운데서의 교제 곧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지, 육체의 몸과 세계에서 벗어나
탈출하는데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에서 행할 수가 없고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1장 6절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다”고 하였다.
반면에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 교제를 한다면, 어둠에 행하지 않고, 진리를 행할 것이다. 이뿐 아니라, 1장 7절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에서 보듯이,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빛 가운데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귐이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죄와 허물에서 자유롭지 못한
피조물이긴 해도 자기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회개할 것이기 때문에, 참 빛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그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언제나 희게
씻어주실 것이다.
1절부터 4절까지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세 가지로 소개한다. 야훼 하나님 한분만을 믿는 유대교인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영지주의 성향을 띤 유대인 에비온파들,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수용을 거부하는 것들이다.
첫 번째로 요한은 예수님을 “생명의 말씀”으로 소개한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던 분인데, 우리가 귀로 들어왔던 분이고,
눈으로 보아왔던 분이며, 주목해왔던 분이고, 손으로 만져왔던 분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의 뜻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이 일찍이
선지자들에 의해서 이 땅에 오실 메시아로 예언되었던 바로 그분이고,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았고,
주목했으며, 함께 먹고 마셨고 사귀었던 분이시다는 것이다. 바꿔서 말하면, 생각이나 머릿속에만 있고, 실제로는 없었던 그런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태초부터 지금까지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요한은 예수님을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으로 소개한다. 이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귐 속에 계시다가
인간세계에 나타나셨고, 죄인과 세리와 창녀를 포함하는 많은 사람들과 사귐 속에 계셨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눈으로 확인했던 그런
분이시다.
세 번째로 요한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사귐 속에 계셨고, 이천년 전 수많은 사람들과 사귐 속에 계셨던 예수님을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만나서
“사귐”을 가져야할 대상으로 소개한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또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선포해야할 이유가
바로 인류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사귐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그와 같은 사귐의 축복 속에 있는 먼저 믿는 성도들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또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선포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고, 또 먼저
믿고 구원받은 자들과도 사귐을 갖도록 하려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이 사귐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성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의 시간이고, 성도들과의 사귐의 시간이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5절부터 10절까지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세 가지를 강조하였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다. 어두움이 무엇인가? 어두움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어두움이 상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어두움은 ‘고난’을 상징한다(시 112:4, 사 5:30, 애 4:8). 어두움은
‘죄악’을 상징한다(욥 18:6, 엡 5:11). 어두움은 ‘타락’을 상징한다(롬 13:12). 어두움은 ‘미움’을 상징한다(요일
2:9-10). 어두움은 ‘영적 소경’을 상징한다(행 13:11). 어두움은 ‘죽음’을 상징한다(욥 10:21-22). 어두움은 ‘지옥’을
상징한다(마 22:13). 어두움은 사단의 권세를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
두 번째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을 본받아 빛의 일을 행한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고, 에베소서 5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께서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이 두 구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빛의 일을 본받아 빛의 일을 행하셨고, 이 예수님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어 그분과 사귐 속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빛의 일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빛의 일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도 우리 인간들처럼 태초부터 지금까지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의 권세에 직면하고 계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혼돈과 공허를 빛과 질서와 생명으로 바꿔놓으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빛의 일을 행하신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빛의 자녀라
할지라도 우리는 너무 자주 어두움과 혼돈과 공허의 세력 앞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어두움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공허를 생명에로 바꿔놓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님과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다. 또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흑암을 빛에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꿔가는 경험들을 축적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서 행하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귐은 지속될
것이요, 사람들과의 사귐도 지속되어 선한 열매들이 풍성히 맺힐 것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세 번째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스스로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진정한 의미의 사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