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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5-15 07:52
기도가 이끄는 삶(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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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9,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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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이끄는 삶(행 2:1-4)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처음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은 주후 30년 5월 28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오늘이 15일이니까 성령강림주일이 두주나 앞당겨졌는데요, 그 이유는 태음력에 맞춰 지키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이스라엘의 오순절(Shavuot/샤부옷)과 같은 날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15개 정도의 명절이 있는데, 그 가운데 오순절은 유월절 및 장막절과 함께 삼대 명절에 속합니다. 유대인들의 명절은 금요일 오후에 지키는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음력으로 지켜집니다. 다만 우리가 쓰는 태음력하고 다르고 시차도 있어서 명절이 우리보다 하루나 이틀 늦게 찾아오고, 윤달이 끼는 경우에는 한 달이나 늦게 찾아옵니다. 금년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유대인의 오순절이 어제나 그제쯤 되어야 하는데, 금년의 경우에는 유대인의 오순절이 한 달 늦은 6월 13일과 14일에 지켜집니다.
오순절 날과 성령강림주일은 양대 종교, 곧 유대교와 기독교의 탄생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순절이 주님께서 약속한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이고, 그로 인해서 기독교가 탄생한 날이며, 유대인들에게 이 날은 시내산율법기념일로써 이집트 탈출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성서주일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 기독교의 탄생일인 것처럼, 시내산율법수여일은 유대교의 탄생일인 것입니다.
유대인의 오순절은 유월절 둘째 날부터 계산해서 50일째 되는 날 저녁에 시작되며, 이틀간 지켜지는 절기로써 본래 보리나 밀을 추수하여 성전에 가져오던 맥추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성전이 하고 있었는데, 바벨론 유배이후에는 더 이상 성전예배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율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오순절 날을 시내산율법기념일로 정하고, 이날부터 이틀 동안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서들과 룻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헌신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룻기에는 맥추추수와 이 기간에 가난한 자들을 돌본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룻 또한 율법을 받아드림으로써 유대인 믿음을 소유했던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오순절 날 성령님의 강림으로 시작되어 성령시대와 은혜시대 그리고 교회시대를 연 것처럼, 유대교는 오순절 날 시내산에서 율법서를 받아 율법시대를 열었다는데 의의가 있고, 맥추추수를 통해서 그 열매를 성전에 바쳤던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의 열매를,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를 바라는 기원이 깃들어 있는 뜻 깊은 날입니다.
오순절 날 있었던 성령강림은 두 가지 복합적인 성격을 띤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의 사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영어로 ‘IN’ 곧 ‘안’의 역사와 ‘ON’ 곧 ‘위’의 역사가 있습니다. ON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군들을 능력으로 덧입혀서 큰 권능과 놀람과 표적을 행하게 하는 신유와 예언과 같은 권능의 사역을 말하고, IN의 역사는 신자의 마음속에 계시면서 의사의 역할, 변호사의 역할, 상담가의 역할, 교사의 역할,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인격신이신 성령님의 구원사역 곧 중생과 성화의 사역을 말합니다. 그리고 권능의 역사는 구약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역사지만, 그러니까 유대교에도 있었고, 기독교에도 있는 것이지만, 중생과 성화의 사역은 오순절 날 시작되어 기독교에만 있는 특별한 역사입니다. 바로 이 특별한 성령님의 역사가 오늘의 교회시대를 성령시대와 임마누엘시대 또는 은혜시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권능의 사역인 ON의 사역보다 구원의 사역인 IN의 사역이 더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겉보기에는 ON의 역사 곧 권능의 역사만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이 교회의 출범과 발전이라는 사도들의 역사적 활동에다 초점을 맞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내용은 바울이 그의 서신들에서 소상히 밝힌 대로, 오순절이후의 성령의 역사는 IN의 역사 곧 구원과 성화의 사역에 그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의 사역은 바로 성령의 구원사역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성령님의 IN의 역사인 구원사역에 의해서 주어진 중생과 점진적으로 주어지는 성화의 축복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이 충만한 기쁨과 평강 가운데서 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신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 곧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도가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와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은 뗄 내야 뗄 수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신앙으로 인한 박해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힘이 그들이 전심했던 기도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그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힘이었던 것입니다. 1장 14절에 보면, 사도들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하였고, 2장 42절에서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하였으며, 6장 4절에서는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또는 “전무하리라”는 뜻은 정성을 쏟고, 공을 들여 기도했다는 뜻도 있겠지만, 문맥과 어휘의 뜻으로는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침 9시, 낮 12시, 오후 3시, 하루 세 번씩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기도했고(행 2:15; 3:1; 10:3,9,30),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성전에서나 집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2:1,46; 3:11; 5:12,21,42). 특히 성전에 모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3절을 보면,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 승천 후, 예수님을 따르던 남녀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장 전체를 보면, 오순절 당일에 사도들이 아침 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모여 있었고, 바로 그때 위로부터 내리는 강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면, 오순절 날 이후에도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성도들이 할 수만 있다면 자주 성전에 모여 기도집회를 열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가 예루살렘 성에 역사상 최초의 교회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들은 자살한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가 될 사람을 뽑을 때, 다 함께 마음을 모아서 기도했습니다(1:24).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성만찬을 떼는 예배 때도 힘써 기도하였고(2:42; 10:3,9), 감옥에 갇혔던 제자들이 풀려난 후에 감사기도를 올렸으며(4:23이하), 그리스말을 쓰는 교인들을 위해서 일곱 명의 지도자를 뽑아 임명할 때도 기도하였습니다(6:6).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예수님처럼 살인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7:60). 옥에 갇힌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12:5).
안디옥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기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13:3).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지에서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장로)를 뽑아 안수할 때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14:23).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체포되어 채찍에 맞은 후 쇠사슬에 묶인 채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했습니다(16:25). 또 바울이 로마로 이송 중에 파선하여 멜리데 섬에 상륙했을 때, 그 섬 추장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보고, 기도했을 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나 하루 세 번씩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였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그들이 성령에 이끌리는 충만한 삶을 살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위로부터 내리는 성령세례를 받고, 전혀 배운 바가 없는 외국어를 말하며, 무식한 어부출신 베드로가 막힘없이 설교하며, 안수 받은 사람들이 신령한 은사를 체험한 이 모든 일들이(8:15f, 19:1f) 다 기도할 때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로마군대의 백인대장인 고넬료와 그의 식구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침례를 받으며 기독교에 개종하고, 유대총독부가 있던 가이사랴에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 것도 다 기도할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백인대장 고넬료가 천사로부터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다.”는 말씀과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듣으라는 지시를 받은 것도 오후 3시 유대인들의 기도시간에 기도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옥상에서 환상을 보고, 성령님의 지시를 받아 백인대장 고넬료의 집으로 보냄을 받은 것도 낮 12시 유대인의 기도시간에 기도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백인대장의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위로부터 성령님이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들, 특히 많은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것도 기도할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40대 남성 앉은뱅이를 고친 것도 오후 3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려 갈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3장). 죽은 다비다가 살아난 것도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드린 기도 때문이었고(9:40), 열병과 이질에 걸린 보블리오의 부친이 살아난 것도 바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28:8). 제사장들과 성전수비대장과 사두개인들에게 체포되었던 사도들이 풀려난 것과(4:23-31), 아그립바 1세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있다가 참수를 당할 뻔했던 베드로가 풀려난 것과(12:5-12),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의 감옥에서 풀려난 것도(16:25f) 다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역사 하는 힘이 강합니다(약 5:16). 그래서 성령 안에서 무시로 생활 속에서 기도해야 합니다(엡 6:18). 그리고 기도할 때는 무엇이든지 믿고 구해야 합니다(마 21:22). 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막 11:24),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빌 4:6),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처럼, 기도할 때는 필사적으로, 끈질기게,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전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잘 활용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을 얻을 수도 있고, 기계도 돌릴 수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기와 같아서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권능에 접근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전기가 아무리 흔하다 해도 아무나 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스위치입니다. 전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필요한 전력을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 스위치입니다. 기도는 마치 스위치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접근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법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을 얻는 스위치입니다. 이 기도의 스위치를 자주 활용하셔서 메마른 삶에 활력을 불어넣으시고, 충만한 삶에로 변화되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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