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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26 17:17
예수님이 불을 지핀 천국운동(마 4: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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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9,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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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불을 지핀 천국운동(마 4:17-25)
인간이 발전시킨 모든 학문과 종교는 인간의 문제와 그 원인을 규명하고 또 해답을 찾는 일에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해답을 찾는 방법과 출발점은 비록 다르지만 그 모든 것들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는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웰빙 곧 인간의 행복한 삶에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일, 참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일과 관련됩니다.
우리가 열거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의 분야, 즉 인문,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모든 분야가 인간의 복된 삶을 약속하는 유토피아 건설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종교가 추구하는 역할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삶 자체를 고통이라고 해서 인생 팔고와 백팔번뇌를 말합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불교가 추구하는 구원일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사람의 온갖 고통과 번뇌의 원인을 욕심과 집착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괴롭고, 삼라현상은 인연으로 모였을 뿐, 헛된 것이며, 만유는 그 실체가 없으므로 무상한 것이고, 온갖 것이 다 헛되어 실재가 없으므로 나와 나의 소유도 있을 수 없다는 이치를 터득하여 욕심을 버릴 때 인간은 비로소 구원된다고 봅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고통의 원인을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에서 찾습니다. 이를 칠정이라고 하는 데, 칠정이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과 수치와 더러움과 욕심을 말합니다. 이 칠정을 억제하고 불쌍하고 가련히 여기는 측은지심, 옳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잘못을 미워하는 수오지심, 사양할 줄 아는 사양지심, 그리고 옳고 그릇된 것을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을 가질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답게 된다고 말합니다.
공자(孔子)는 어느 날 제자인 자로(子路)가 곁에 있는 줄도 모르고 배고프다는 말을 문득 함으로써 평생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도학자(道學子) 김굉필(金宏弼)이 어머니에게 드리고자 정성들여 말린 굴비를 고양이가 물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 곁에 제자인 조광조(趙光祖)가 있는 줄을 깜박 잊고 화를 내며 고양이를 꾸짖었습니다. 그 때 조광조(趙光祖)는 성색을 드러낸 스승의 잘못을 직언했고 김굉필(金宏弼)도 제자에게 그것을 사과하였습니다. 이처럼 유교에서는 배고프다는 기본적인 인간 본능이나 희비애로(喜悲哀怒) 같은 기본적인 인간성색마저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고난의 원인을 죄에서 찾습니다. 죄의 원인을 관계단절과 관계불편에서 찾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단절되고, 인간과 인간이 단절되고, 인간과 자연이 단절될 때, 우상숭배, 마술, 음행, 추행, 방탕,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사치와 낭비, 착취, 파괴, 훼손과 같은 죄악이 발생된다고 성서는 말합니다(갈 5:19-21).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결속하고 연대할 때,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보호, 나눔과 같은 축복이 있다고 말합니다(갈 5:22-23). 그리고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연대하고 이웃과 연대하고 자연과 연대하는 관계개선, 관계회복, 또는 해원상생에서 오는 축복을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축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된 나라에서 누리게 될 미래의 것이기에 기독교의 선교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곧 우리들의 삶속에 앞당겨오는 천국운동의 전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천국운동 곧 천국캠페인을 가장 먼저 전개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짧은 인생을 사셨고, 그분이 이 지상에서 공적으로 활동하신 기간이 길어봐야 3년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분이 전력을 다해 헌신했던 일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곧 민중의 삶속에 앞당겨 오는 천국운동이었던 것입니다. 백성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제자를 삼고, 육신과 영혼의 병을 고쳐주면서 펼쳤던 운동이 천국운동이었습니다.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원수된 인간관계를 해원상생의 관계로 발전시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된 나라를 앞당기려 했던 운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실존이 세워지는 세상, 어둠과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 빛과 생명의 권세가 세워지는 세상을 앞당기려 했습니다. 이 운동이 예수운동이며 천국운동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4장 17-25절은 예수님의 공적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이 예수운동 곧 천국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간단한 몇 구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공적활동이 갖는 매우 중요한 의미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 몇 가지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천국운동의 출발 신호탄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정의와 평화가 공존하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지만, 이상(理想)으로만 여겨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이상으로만 여겨지던 시대가 이제 동이 터오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둘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에서 보듯이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새 부대가 되지 않고서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습니다. 회개함으로 마음을 깨끗이 씻고, 부대를 튼튼하게 정비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상과 정신을 담을 수가 없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셋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다가올 새 시대를 더 이상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 그때가 이미 온 것처럼 살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조금씩이긴 하지만 그것은 지금 여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지금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를 삶 속에서 살기 시작하라는 촉구입니다.
이러한 촉구는 기득권자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스런 것이었습니다. 민중에게 회개할 것을 외치고, 천국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은 민중을 선동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좇더라’는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추종했다는 말이기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는 지배층의 사람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200년 전 조선시대 때 조선기독교인들의 믿음과 천국사상이 기득권 세력과 권력자들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었던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신앙으로 사회개혁을 꾀하고, 서로를 교우라고 부르며, 양반과 상놈의 신분을 타파해버린 기독교인들을 1801년 정순왕후와 북인 벽파의 사람들이 국가의 원수 집단이며, 인륜과 충의를 저버린 짐승의 무리라 하여 그 씨까지도 남기지 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유대당국이 예수님을 탄압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이 땅에서 쉼 없이 지속적으로 이 천국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비록 짧은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의 삶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었습니다. 30세가 될 때까지는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3년 6개월의 공적활동기간에는 앞서 말한 천국운동을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보낸 마지막 한주간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이 천국운동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것이었으며, 부활이후 승천 때까지 40일간은 이 천국운동을 제자들에게 위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하셨습니다. 이 분부를 받은 제자들에게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의 도움으로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예수운동 곧 천국운동은 활기차게 전개되어왔고, 또 앞으로도 우리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질 운동인 것입니다.
다섯째, 주후 30년 오순절 날 성령강림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기독교이고, 성령님에 인도되는 기독교는 바로 예수님이 동이 트게 한 새로운 질서요,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질서조차도 여전히 미래에 도래할 새롭고 완전한 세계를 향한 또 다른 세계의 동틈을 위한 예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이 새 질서에 들어온 새 피조물에게 주어진 사명도 예수님처럼 동일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들, 예를 들면, 병 고침과 오병이어, 천국복음 선포 등은 그 자체로써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동터오는 것을 알리는 것이며, 그 나라를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그분이 이끌어온 새로운 질서에 편입되고 영적 육체적 고통에서 어느 정도 헤어났더라도 어디까지나 이것은 완전한 새로운 세계인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희망하는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그분의 재차 강림으로 시작될 완벽한 세계로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천국운동은 회개하여 동터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고, 다가올 새 시대를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 그때가 이미 온 것처럼 살기 시작하라는 것이며, 비록 더디고 조금씩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에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기 시작하라는 캠페인입니다. 그리고 나가서 제자를 삼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고 도와서 이 운동이 이 땅에서 지속되게 하고 확산시키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고, 이 천국운동을 전개시키는 일이 신앙인이 해야 할 일이며,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든 작게 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봉사를 통해서든 헌금을 통해서든 전도를 통해서든 이 캠페인에 운동원으로 동참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활동에 성과가 없는 것은 이 운동이 우리들의 삶의 목적이요 목표란 인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며, 당장에 실천해야할 최우선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목적이 사람들의 삶을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예수운동 곧 천국운동이 삶의 목적이 되게 하고, 그 목적이 우리들의 삶을 이끌게 해야 합니다. 삶 속에서 전도하여 제자들을 만들고, 가르치고 도와서 이 운동에 편입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이끈 것은 바로 이 목적 곧 천국운동이었습니다. 그분은 온몸을 던져 이 캠페인을 펼치는데 헌신하셨습니다. 헌신의 절정장소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언덕이었고, 가장 위기의 순간이 굴무덤 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펼친 캠페인이 캄캄한 굴무덤 속에 영원히 갇혀버리지를 않고, 무덤을 박차고 부활하여 지금까지 2천년의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운동의 가치를 목숨보다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소유할 가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운동의 가치를 짧지만 전 생애를 통해서 나타내 보이셨고, 그 보상으로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는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있을 고난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생애를 이끈 목적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성도님들의 삶을 이끄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시고 잘못 된 부분을 바로 세우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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