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일치10: 말씀을 들음과 행함(2)(약 1:21-27)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1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는 더러운 옷을 벗어 던져 버리듯이 성내기를
비롯한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동들을 버리라는 뜻이다. 또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마음 밭에
심겨진 영혼을 살릴 말씀의 씨앗을 남에게 빼앗기거나 싹을 띄운 후 말라죽게 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하라는 권면이다.
이 권면은 마가복음 4장 1-9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곧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때 더러는 길 가에...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더러는 가시떨기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비유와 맥을 같이한다.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에서 마음은 말씀의 씨앗이 떨어지는 밭이고, 온유함은 풍성한 열매를 맺히는 좋은 밭인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네 종류의 마음 밭이 나온다.
첫째, “길 가”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여,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
범주의 사람들은 천국복음의 씨앗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람에 낙엽이 날리듯, 새들이 날아와서 먹어치우듯, 악한 자들에게 빼앗기듯,
천국을 빼앗기는 자들이다.
둘째, “돌밭”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은 말씀을 듣고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 범주의 사람들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들이다.
셋째, “가시떨기”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은 말씀을 듣고서 깊이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 범주의 사람들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넷째, “좋은 땅”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은 영의 눈이 열려 만물을 밝히 보는 자들이요, 귀먹고 어눌한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한 자들이다. 이
범주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뿐 아니라,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를 맺는 자”들이다.
이들은 또 “눈은 봄으로...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는” 자들이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여 백 배,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거두는 자들이다.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22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는 오랜 기간 설교를 듣고 말씀을 배워
예수님의 팬이 되었으나 제자가 되지 못한 자에 해당된다. 또 이 사람은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자에 해당된다(약 4:17).
23-24절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린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써 자신의 얼굴을 희미한 청동거울로 보는 사람에 비유했다. 청동 거울이 희미했던 만큼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 사람의 기억도 희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마치 말씀의 씨앗이 길 가나 돌밭 또는
가시떨기 밭에 떨어져 끝내 결실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25절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에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 놓으신(렘 31:33) 새 언약 곧
복음을 말한다.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다.”는 말씀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듯이, 말씀을 자기
욕심이나 필요를 채울 혹은 이익을 위한 조건이나 수단으로 받거나하여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목적과 반드시 실천되어야할 규범으로 받아 아무리 희생이 크더라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말한다.
마태복음 8장 18-27절에서 예수님은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伴天連)에 합류 곧 교회라는 배에 오르는 제자가 되어 건너편(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처도 머리 둘 곳도 없는 떠돌이의 삶과 폭풍 같은 박해까지도 각오해야한다고 했다. 또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가 심겨지는 밭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과 헌신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복음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믿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배까지 결실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는가하면, 복음의 씨앗을 받는 순간 사탄에게 빼앗겨 버리는 굳어진
심령의 불신자도 있고, 말씀을 들을 때 복음의 단물인 감동만 빨아먹고 믿음의 단련인 시련의 쓴물은 내뱉어버리는 포기자도 있으며,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에 짓눌려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경건에 잇대어져 있다. 이들은 율법과 규례를
철저히 지킬 뿐 아니라, 하루에 세 번 오전 오후 저녁에 기도회에 참석하고, 매일 100여개의 기도문을 낭송하며,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고,
십일조도 철저히 바쳤다. 그들은 모세의 심판석에 앉는 자들로서 가난한 자들과 세리들과 창기들과 이방인들을 죄인으로 정죄하여 무시하고 경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일컬어 외식하는 자, 회칠한 무덤,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는 자, 난체 하는 자, 높은 자리와 섬김 받기를 탐하는 자, 천국 문을 가로막고 선 자, 교인을 오히려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는 자, 화를 당할 자,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린 자, 눈은
있지만 소경인 자,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자,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자,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자, 지옥의 판결을 면치 못할 자라고 마태복음 23장에서 책망하셨다.
그런데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회개한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에 대입하는 일을 잘하는 반면에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에 대입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역할을 좋아할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좋다든지, 믿음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과 자기우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자들
중에도 자기우상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은혜를 받았다는 점에서 보면, 세리와 창기와 죄인의 역할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걸맞고 또
필요할 수 있지만, 오히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을 그리스도인들이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충고하셨고(마 6:8, 23:3), 바울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본받으라(살전 1:6, 롬 15:4, 고전 11:1, 빌
3:10, 엡 5:1, 딤후 1:13)고 권면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야고보는 27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