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변화03: 도망노예 오네시모(3)(몬
1:8-25)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간청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흑암에 빛을, 혼돈에 질서를, 죽음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위대한 복음이다. 신약성서 곳곳에 복음의 위대함이 나타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빌레몬서이다.
수감되어 있던 바울이 빌레몬에게 이 편지를 쓸 당시
환갑을 넘기고 있었다. 당대의 기대수명은 50세에 못 미쳤다. 많은 아이들이 열 살 이전에 죽었고, 인구의 절반은 20세 무렵에 죽었다. 따라서
바울은 9-10절에서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고 적고 있다. 8-9절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고 하였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다.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상당한 손해를 입히고 로마로 도망쳤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이 경영하는 가업의 재무를 맡았던 총명한 노예였다는 추정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은 10-19절에서 그를 일컬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했고(10절),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고 했으며(11절), “그는 내 심복이다.”고 했다(12절). 또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 싶다.”(13절)고 했고,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했으며(16절),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부탁하기를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고 했다(17절). 게다가 바울은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겠다.”고 했다(18-19절). 바울이 오네시모를 이토록 아낀 점과 그가 훗날 에베소교회의 감독이 된 것을 보아
그가 충분히 신실하고 총명한 노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네시모의 위대한 변신으로 볼 때, 그가 주인인 빌레몬에게 입힌 손해도 고의가 아니라
실수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고, 빌레몬도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드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는 사제지간에 가까웠다. 바울은
빌레몬을 동역자로 칭했고, 형제로도 칭하였다. 20-22절에서는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고 하였다.
운명의 결정권을 주께 맡긴
그리스도인들
바울과
오네시모는 자신들의 운명의 결정권을 그리스도께 맡긴 일군들이었다. 로마인은 노예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로 정의하였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칭하였다. 당대에 노예는 소 돼지와 같은 주인의 재산목록의 하나였다. 로마제국은 해방노예들에게는
일반시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였지만, 노예들에게는 아무런 인권도 권리도 보장하지 않았다. 주인은 노예를 채찍질하거나 투옥시키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죽일 수가 있었다. 또 노예는 동물처럼 노예시장에서 매매되었고, 몸에는 노예표식을 지녀야했다. 로마 국립 박물관 디오클레치아노
욕장(Museo Nazionale Romano?Terme di Diocleziano)에는 주후 4세기경에 노예의 목에 매달았던 철 목줄과 청동
인식표가 전시되어 있다. 인식표에는 “나는 도망자입니다. 나를 붙잡아 나의 주인 존니누스에게 돌려보내면, 당신은 금화를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FVGITENEME CVMREVOCV VERISMEˇDMˇ ZONINOACCIPIS SOLIDVM ?, Fugi, tene me.
Cum revoc(a)veris me d(omino) m(eo) Zonino, accipis solidum)라는 글이 새겨져있다. 노예로서는
자신의 목에 매인 이 목줄을 풀거나 끊을 수가 없었다. 노예가 도망쳤다가 붙잡히면 도망자(fugitivus)란 단어의 첫 자인 F자를 불에 달군
인두로 이마에 찍힌 후 채찍에 맞거나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는 표현을 썼는데,
노예의 몸에 새겨진 주인의 흔적이나 인식표와 같은 것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바울이 쓴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란 표현이 자기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주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노예처럼 온몸으로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생각했던 바울이었기에
빌레몬의 도망노예(fugitivus)였던 오네시모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고 복음으로 변화시켜 오네시모 또한 자신의 운명의 결정권을
그리스도께 맡기는 신실한 일군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16절에서 오네시모를 더 이상 노예로 여기지 말고 사랑하는 형제와
동역자로 영접할 것을 간청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고, 자신들의 운명의 결정권을 그리스도께 맡긴 “전에는... 무익했으나
이제는... 유익한”(11절) 그리스도의 노예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한
변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짧은 빌레몬서를 통해서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흑암 같은 곳에서 빛을 잃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던 오네시모에게 참된 빛을 찾아 주었다.
둘째,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혼돈한 삶 속에서 방황하던
오네시모에게 안정된 삶의 목표를 주었다. 그는 쓸모없는 사람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오네시모(유익한)라는 자신의 이름값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셋째, 오네시모는 죽음과 같은 노예의 삶에서 생명 있는
형제의 삶에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오네시모는 천한 노예에서 사랑 받는 형제로 다시 태어났다.
넷째, 오네시모는 천한 노예에서 위대한 감독으로 높은
신분의 상승을 맛보기도 했다.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쓸모없던 노예 출신 오네시모는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에베소교회의 위대한 감독이 되었다.
다섯째,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었다. 참된 자유와 해방은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에 걸맞은 새롭고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노예 신분의
변화 없이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주인이라 할지라도 노예처럼 비참한 삶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노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인도 노예가 되며, 노예도 형제가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오네시모의 위대한 변신은 여전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변신들 중의 한 사건에 불과하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에 변화된 위대한
삶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성경 자체가 진리를 발견하고 변화된 사람들의 체험기란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 받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이다. 성경은 66권으로 마감이 된지 이미 2000년이 흘렸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변화된 삶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크든 작든 예수님 믿고 변화된 이야기 또는 예수님 믿고 성공한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자.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고 하늘 가나안땅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 보좌 앞에로 승리의 행진을 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