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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26 17:14
하나님이 설계하신 나의 영성(벧전 4:7-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635  
하나님이 설계하신 나의 영성(벧전 4:7-11)

스펄젼 목사에게 젊은 제자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목사님 소명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질문에 스펄젼 목사는 세 가지로 대답했습니다.
첫째, 심리적으로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볼 때,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귀한 직업, 가장 귀한 일로 생각된다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 그 일이 가장 수월해야 합니다. 쉬워야 되지 어려우면 소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맡기시려고 할 때에는 이미 거기에 필요한 달란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미리 다 준비를 해 주셨기에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괴롭다면 소명을 잘못 찾은 것입니다. 가장 하고 싶고, 해서 즐겁고, 아무리 많이 해도 싫증나지 않는 일이 천직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소명이 다르고 천직이 다르듯이 신앙생활이나 방법도 타고난 성품이나 기질 따라 다를 수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하고 싶고, 해서 즐겁고, 은혜가 되는 신앙의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기도를 밥 먹듯 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어떤 사람은 몇 시간씩 엎드려 기도하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일이 기도요, 봉사가 기도요, 섬기는 일이 기도요, 생활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방식의 금욕주의나 탈세속적인 방식을 고집하는가하면, 또 다른 사람은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참여의 방식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찬양하는 방식도 다양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무악기 찬양을 고집하는가하면, 또 다른 사람은 찬송가만을 고집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복음성가나 록음악 장르의 CCM을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무용을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찬양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악기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무용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연극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그림이나 조각 또는 건축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교회의 꽃꽂이, 청소, 식탁봉사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섬기는 일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재력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 섬기기를 원합니다.
󰡔개혁주의 영성󰡕이란 책의 저자인 하워드 라이스는 말하기를, “행동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경건주의자들을 속 좁고 편협하며 율법주의적인 사람들로 보아 왔다. 반면에 경건주의자들은 행동주의자들을 귀에 거슬리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 관심이 없고, 구원보다는 세속적인 정치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보아 왔다.”고 했습니다. 라이스의 말대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 나와 다르고, 다른 사람의 취향이나 취미가 나와 다르고, 성품이나 기질이 나와 다르다고 했을 때,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들을 어떻게 받으실까요?
분명한 것은 있잖아요?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최우선시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될 것이고요,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리고, 우리가 하는 일들이 우상이 되어버리면, 하나님은 받기를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게리 토마스라는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가 있습니다. 게리는 이 책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그리고 그 분을 섬기고 사랑하는 길의 다양함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입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려 아홉 가지나 된다는 것입니다.
게리가 하는 말 가운데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기회의 광활한 박물관 안에 살지 않고 방 한쪽 좁은 구석에 스스로를 가두었다”(78쪽)는 지적, 그리고 “제발 남들의 기대에 주눅 들지 말라. 하나님은 누군가 남이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당신’의 이미지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을 특정한 성품과 특정한 영적 기질의 소유자로 지으셨다. 그리고 그 지으신 방식에 따라 예배받기를 원하신다.”는 지적들이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게리 토마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질의 차이에 따라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오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의식과 상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고독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참여와 대결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신비와 축제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획일적이고 틀에 박힌 동일한 방법만을 고집하며 그것을 잣대로 신앙인들을 재단함으로써 획일적인 방법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신앙인들을 영적으로 허기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성서의 인물들이 하나님께 다가선 방법들은 다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고요, 모세와 엘리야는 악한 세력들과 대결을 펼쳤으며 다윗은 열정적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솔로몬은 무수히 많은 제사를 드렸고요, 모르드개는 남을 돌봄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나타냈고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았던 베다니의 마리아는 연인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게리 토마스는 현대인의 영적 기질을 아홉 가지로 분류하면서 책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쪽보다 개미를 관찰하거나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자연주의 영성’이 있는가하면, 장엄한 예배 의식과 정교한 건축, 고전음악에 이끌리는 ‘감각주의 영성’도 있고, 신앙의 역사적 차원에 속하는 것들인 의식, 상징, 성례, 제사, 등에서 영적양식을 얻는 ‘전통주의 영성’도 있으며, 이밖에도 금욕주의, 행동주의, 박애주의, 열정주의, 묵상주의, 지성주의 영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게리는 “하나님이 지어 주신 모습에 맞게 그분께 예배드릴 때 우리는 그분의 창조사역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나와 다른 영적 기질을 가진 사람을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가복음 12장 30절의 말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에 담긴 네 가지 본질적인 요소,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흠모)을 다하고 목숨(의지)을 다하고 뜻(신념)을 다하고 힘(몸)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영적 기질에 맞게 하나님을 사랑할 자유를 주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람들에 따라서는 숲 속이나 산이나 너른 들판을 걷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삼라만상에 둘러싸여 있으면, 그것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느껴지고 그들의 영혼이 저절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에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아름다움과 광휘에 푹 잠기기를 원하며, 엄숙하고 장엄한 의식에 끌립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드릴 때 시각적 장치와 소리와 냄새에 젖어들기를 원합니다. 향이나 정교한 건축, 고전 음악, 격식 있는 언어가 그들의 마음을 상승시켜 하나님께 다가서게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의식과 상징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은 규칙적인 예배참석, 십일조, 주일성수 등을 중요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의식, 상징, 성례, 제사 등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반듯한 그리스도인으로 남에 눈에 비치기도 하면서 동시에 율법주의자로도 비춰질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독한 침묵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들에게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미한 음성을 듣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접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회참여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면서 정의의 하나님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서 가운데서도 마가복음을 가장 좋아하고, 혁명적인 예수님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낍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교회를 다시 세상에 나가 불의와 일전을 벌이기 위한 재충전의 장소로 봅니다. 그들은 혼자 있거나 소그룹 속에 있는 것보다는 설사 갈등이 있더라도 남들과 부대낄 때 힘을 얻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사랑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초라한 이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섬깁니다. 그들의 눈에는 묵상이나 열정 또는 경건에 치우치는 이들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을 돌보는 일이 피곤한 일이 될 수 있지만 박애주의자들에게는 오히려 재충전이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비와 흥분으로 고조된 분위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감각주의자들이 아름다움에 에워싸이기 원하고, 지성주의자들이 개념을 붙들고 씨름하기 원하듯, 열정주의자들은 즐거운 축제에 감격합니다. 마음껏 손뼉 치며 아멘을 외치고, 흥겹게 춤춰야 은혜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원하는 것은 개념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험하고 느끼고 감동에 잠기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연인을 사모하듯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가장 깊고 가장 밝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사랑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 그분의 이름으로 큰일을 이루는 것, 하나님께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관심 밖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경청했던 베다니의 마리아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성과 이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신앙이란 체험 못지않게 이해의 대상이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사실, 보다 깊은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4장 7-11절의 말씀을 보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할 것, 열심히 서로 사랑할 것,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할 것, 받은 은사대로 서로 봉사할 것,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할 것 등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도면 기도, 봉사면 봉사, 사랑이면 사랑, 접대면 접대, 말씀선포면 말씀선포, 능력의 일이면 능력의 일을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하라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 더 부언한다면, 마가복음 12장 30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려고 힘쓰되 마음(흠모)을 다하고 목숨(의지)을 다하고 뜻(신념)을 다하고 힘(몸)을 다하여 우리 각자의 영적 기질에 따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와주시리라 믿습니다. 2005년 한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