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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06 12:37
승리자 그리스도44: 천국백성의 짧은 환난(9)(계 13:16-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1  

승리자 그리스도44: 천국백성의 짧은 환난(9)(계 13:16-18)

둘째 짐승 거짓 선지자(3)

둘째짐승은 거짓 종교가와 허탄한 철학가의 상징이다. 그가 가진 거짓 진리는 막강한 권세를 갖고 있다. 그 권세가 브랜드, 돈, 무력, 권력, 메가 또는 다수일수도 있다. 이런 유의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이다. 사람들이 갖기를 원하는 이런 유의 권세가 둘째짐승 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권한이 있어서 이것들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사람들이 쉽게 속아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0절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했고, 골로새서 2장 8절에서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권면하였다.

요한계시록 13장 16-18절은 짐승의 표, 666에 관한 말씀이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로마당국이 시민들에게 ‘짐승의 표’라 불릴만한 ‘리벨루스’라는 증명서를 받게 한 사례가 있다. 계시록이 기록되고 155년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데키우스(Decius, 250-251)와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253-260) 황제가 시민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명서 ‘리벨루스’(libellus, 250)를 발급받도록 하였는데, 대상은 모든 시민권자들이었다. 주후 212년에 발효된 카라칼라의 칙령이후 속주민도 로마시민권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로마제국에 살던 모든 자유민이 이 법에 따라야 했다.

주후 250년에 선포된 데키우스 칙령에 따라서 도시와 마을마다 증명서 발급을 담당하는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곳에 불려나간 시민들은 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로마의 신상들에 절차를 따라 관제를 붓고 향불에 분향하였다. 그리고 그 향이 타오르는 동안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선언을 하였고, 위원들은 사실여부를 조사하지 않고 증명서 곧 ‘리벨루스’를 발급해 주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말한 ‘짐승의 표’는 이런 증서를 말한 것은 아니고, ‘인침’ 곧 도장을 뜻한다.

16-17절,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신약성서가 말한 ‘인침’ 곧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증하는 약정서에 찍힌 인감의 모방이자 표절이다. 성서가 말하는 ‘인침’과 ‘짐승의 표’는 소속을 증명하는 시민권 개념이다.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표로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것에 반대개념이다.

둘째 짐승 거짓 선지자(4)

17절,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박해를 당한 성도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한 ‘굶주림’과 물질적 피해에 관한 언급이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려다보면, 고문을 받고 투옥당하는 것은 물론, 재산이 몰수되고 직장에서 파면을 당하기도 한다. 또 체포되기 전에 피신한 경우 깊은 곳에 숨어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매매활동을 할 수가 없다. 물리적인 박해는 대개 통제사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순교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18절의 ‘짐승의 수’는 666이다. 이 숫자가 사람의 수이기 때문에 666은 거짓 종교와 진리를 강요하는 권력의 하수인들이 된다.

666은 6의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7은 777이 된다. 7은 완전수이다. 6은 7에서 하나가 부족한 숫자이며, 인간, 천사, 사탄과 같은 고등한 영적 피조물의 숫자이다. 인간은 항상 부족한 존재이다. 그는 제6일 째에 만들어 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이성의 동물이자 언어와 도구를 쓸 줄 아는 만물의 영장이다. 감정을 통제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아는 동물이며, 의지적인 결단력을 가진  종교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피조물이다. 피조물은 그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에게 언제나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6이란 숫자는 다른 모든 숫자 위에 있으면서도 완전수 7에는 언제나 하나가 부족한 수이다. 6은 언제나 완전에 이르지 못한다. 6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고, 표적을 빗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666은 인간은 언제나 실패하고, 실패하며, 또 실패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거짓 종교와 거짓 진리로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숫자 8로 인식되었다. 예수님의 헬라어 이름 ‘이에수스’(Jesus)를 숫자로 환산하면, 888이 된다. 8은 메시아 곧 구세주를 상징한다. 메시아의 예표인 다윗 왕이 8번째 아들이었고,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8명이었으며, 유대인 남성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거룩한 공동체에 일원이 되었다. 외경 ‘시빌린 신탁’은 예수님을 8로 표기하였고, 150년경의 순교자 저스틴은 ‘주일’을 '제8일째 날'로 불렀으며, 중세교회는 침례탕을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둘째 짐승 거짓 선지자(5)

숫자 8은 기독교의 복음(7+1)의 성격을 설명하는 숫자이다. 숫자 8은 완전수 7보다 하나가 많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숫자 8은 넉넉한 구원, 넘치는 복을 뜻하며, 살림과 구원, 즉 삶에 플러스를 주는 복음을 뜻한다.

구약성경 미가서 5장 5절에 "그는 그들의 평화가 될 것이다. 아시리아 사람이 우리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때에,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서, 침략군들과 싸우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에 쓰인 '일곱 목자'와 '여덟 장군' 즉 숫자 7과 8은 완전한 승리를 상징한다. 특히 숫자 8은 '넉넉히 이긴다. 혹은 이기고도 남는다.' 즉 '플러스 1'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마태복음 5장에는 그 유명한 8복에 대한 말씀이 있고, 13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는 8개의 비유가 나오며, 22-25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에 관련된 8개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의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는 비유들에서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 '씨앗 비유', 맨드라미 씨와 같이 아주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는 '겨자씨 비유',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에 관한 비유' 등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을 숫자 8로 표기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며, 우리를 풍성하고 넉넉하게 복 주실 '플러스 1'의 존재이시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되 후하게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하실 수 있는 '플러스 1'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우리 인간이 부족한 '마이너스 1'의 존재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데 필요한 '플러스 1'의 요인으로 작용하실 수 있다. 비록 우리가 겨자씨와 같이 아주 작은 존재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큰 나무로 자라는데 필요한 '플러스 1'의 요인으로 작용하실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밀가루 반죽에 불과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여러 종류의 맛좋은 빵으로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누룩이 되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십자가의 표시가 플러스 기호인 점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하기'가 되신다. 그리스도교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더하기'가 된다.

666은 모든 거짓, 모든 실수, 모든 잘못, 모든 부족, 모든 악행의 상징이다.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을 음부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모든 불행의 상징이다. 그의 운명은 패배요,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 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해야할 분은 완전하신 777의 하나님과 넉넉하신 888의 그리스도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