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사귐08: 기름 부음(3)(요일 2:20, 27))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기름 부음
출애굽기 30장의 관유는 자연에서 채취된 기름이 아니라 조제된 기름이었다. 올리브유에 향을 적절히
배합하여 정성껏 만든 기름이었다. 하나님은 향기로운 이 기름을 거룩히 구별하였으며, 그 기름을 성막 기구들에 발라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셨다.
또 하나님의 일군들이 이 기름을 머리에 발라 거룩히 구별되도록 하셨다. 이 기름을 바른 하나님의 일군들은 향기롭고 가치 있는 일에 종사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었다.
관유는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하였다. 앞에서 보셨듯이, 구약시대에는 구별된 하나님의 일군들에 한해서 기름 부음을 받고, 또 머리에 발라
거룩히 구별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울과 다윗의 경우에서 보듯이,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은 즉시 하나님의 신(능력)이 임하였다(삼상
10:1-10, 16:13).
신약시대에는 침례가 기름 부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경우에서 보듯이, 침례 직후에 성령님이 임한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침례 직후에 견진례를 시행하였는데, 견진례는 관유를 이마에 발라 십자가 성호를 그어줌으로써 침례를 받은 자의 마음속에 성령이 임재하시고 거주를
시작하시는 표지이고, ‘성령의 인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이다.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었음을 ‘직인 찍어’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견진성사, 성공회에서는 견진예식, 그리스도교에서는 견신례 또는 입교예식이라고 부른다. 루터교에서는 견신례를 행한다.
장로교회나 감리교회와 같이 약식세례를 행하는 교단들에서는 대부분 입교예식으로 대신한다. 반면에 침례를 베푸는 교단들에서는 대부분 견진례를
생략한다.
중요한 것은 머리에 관유를 바르고 하나님의 신(능력)이 내린 이 특별한 의식이 구약시대에는 구별된 하나님의 종들, 예를 들면, 제사장들이나
예언자들 또는 왕들에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또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고,
침례를 받은 자들에게 제한 없이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점이다.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의 선물로, 구원의 보증으로, 구원의 인감 찍음으로, 능력이 아닌 세 번째 위격의 성령님으로 모든 성도들을
침례 베풀어주신다. 이것을 ‘성령으로의 침례,’ ‘성령침례’ 혹은 ‘성령세례’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쓰인 침례 혹은 세례란 말은 ‘충만,’
‘내주,’ ‘동거’를 의미한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기름 부음의 차이
세 번째 위격의 성령님이 성도들의 심령에 거주하시는 축복이 구약시대에는 없던 신약시대만의 축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성령시대’라
부른다.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말하고, 병을 고친다고 해서 성령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 같은 외적(ON의)인 능력의 역사는
구약시대에도 흔했다. 그 같은 것을 일컬어 “약속하신 성령”(the promised Holy Spirit, 엡 1:13)이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의 임재가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있었고, 하나님의 신, 곧 성령님의 능력(ON)의 역사만 있었으며, 하나님의 신이 친히 그들 마음속에는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제한 없이 누구에게나 성령님이 그들 마음속에 항구적으로 임재(IN)하고 계시며, 그 대신 방언을
한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병을 고친다든지 하는 은사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때에 공적으로 일시적으로
잠정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사랑의 은사이외에 그 같은 능력의 은사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유 부음이 하나님이 특별히 뽑으셨음을 상징한다는 구약시대의 측면에서 신약시대에도 주의 종들이 도유가 생략된 안수례를 통해서 기름 부음을
받는다. 이들은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은사자들이다(엡 4:12).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도 뽑힌 자들이다.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봉사의 일을 하는 은사자들이다.
만인제사장 개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주의 일군들이다. 그러나 안수례를 받고 전임(專任)하는 일군들과는 책임과 직무에서 차이가 있다.
출애굽기 30장 26-29절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성물로 구별하라.”고 한 말씀에서 배워야할 점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세속적인 것들에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행위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도, 예배에 참예하는 성도들도, 예배에
쓰이는 모든 기물과 제기들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물도 구별되어 바쳐져야 한다. 여기에는 몸과 마음, 겉과 속이 모두 해당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이나 모든 것이 깨끗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쓰이는 모든 도구와 장소가 성물로써 귀하게 쓰임을 받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믿음과 신앙의
자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성소의 모든 도구들은 그 자체가 거룩했다기보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관유가 발라짐으로써 비로소
성스러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디도서 3장 5절의 말씀대로, 본래 죄인이었던 자들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곧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늘 자신들을 세상과 구별하고,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하고 살아있는 제사로 마음을 드려야한다.
예수님의 그리스도 임직식
세례 요한의 침례는 그리스도인의 침례나 유대교의 개종침례나 정결침례와도 다르고, 유대인 쿰란공동체가 행한 정결의식하고도 달랐다. 유대교에서
행하는 침례의식(Tevilat Keilim)은 반복적인 정결례로써 그리스도교에서 행하는 단회적인 침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만 유대교
개종자에게 요구되는 침례는 단회에 그친다. 유대교인들은 정결례를 위한 침례탕(Mikvah)을 구비해놓고 있다. 유대교에서의 침례는 미슈나 구전이
정한 정결례(Tohoroth)이지 회개나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침례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출산이나 월경, 배우자와의 잠자리 뒤에도 침례탕에
들어가 부정(treyf)을 정(kosher)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회당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다. 또 새로 구입한 부정한 식기를
침례탕(Mikvah)이나 자연수(강, 호수, 바다 등)에 담갔다가 꺼냄으로써 정(kosher)하게 해야 사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새 언약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멤버로 가입하기 위한 것이다. 유대교의
개종침례는 유대인과 혈통이 다른 남녀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교할 때 받는 의식이며 유대인들은 받지 않는다. 남자 개종자는 할례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례 요한한테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 쿰란공동체는 개인이 자기 죄를 자백하고 정결의식을 행한 후에 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결의식은 단회(單回)의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침례는 단회의식이었고, 그 어떤 공동체에도 가입을
권유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를 믿거나 신앙을 고백하도록 권하지 않았고, 오직 오실 자 그리스도와 그의 시대를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것은 죄를 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본래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죄가 없었으며, 회개가 필요치 아니한 분이셨다. 이뿐 아니라, 세례 요한의 침례가 예수님 자신의 임재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더더욱
불필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은 그리스도로 기름 부음 즉 임직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받으신 침례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침례는 다르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 받지만, 그분은 그 누구를 믿거나 소유가
되실 수 없는 독생자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침례는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에 대한 실체였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던 것처럼, 세례 요한도 예수님께 침례로 기름을 부어 왕들의 왕과 주들의 주로 삼으셨다. 그 사실을 입증한 것이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임재하신 것과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1-22)는 음성이었다. 이후로 기독교에서는 침례가 성령님으로의 기름 부음 또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시간으로 믿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고후 1:22, 5:5)는 말씀의 확증으로 침례직후에 기름을 이마에 바르는
인침(견진) 의식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