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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10 07:13
영동교회 가수 현미의 간증문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029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가수 현미

매혹의 저음가수 현미 밤안개의 가수 현미, 저의 이름 앞에 붙던 이러한 관형어들이 이제는 예수님 믿고 전도하는 현미, 성가를 통해 선교하는 현미로 바뀌어진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1981년 1월 17일 미국 워싱턴 스타풀렉스 아모리 스타디움을 꽉 메운 레이건 대통령(그리스도의 교회 출신임) 당선 축하객들, 7000여 명을 헤아리는 미 국회의원, 기독교 실업인들과 전 세계에서 모여 온 축하 인사들 앞에서 나는 경건히 주도기문을 불렀습니다. 너무나도 엄청난 영광 때문에 목이 잠기고 또 후두염이 발생하여 그 영광의 순간을 정말 사력을 다했다고밖에 표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불렀는지 어쨌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놀라운 기적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 스타풀렉스 아모리 스타디움을 메운 모든 청중들이 일제히 기립박수(standing ovation)를 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다시 「이 세계는 주의 품에를」 불렀습니다. 또 다시 박수는 장내를 뒤흔들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이런 영광의 순간을 안겨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가 눈물과 뒤범벅 된 채였습니다. 스탠딩 오베이션은 그래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습니다. 장내는 숙연해졌고 저는 흐느끼며 찬송을 끝까지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참으로 그 노래를 가사대로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밀도 짙게 전했다고 생각 되었고 축가를 부르러온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선교하러 온 것처럼 착각되어졌습니다.

저는 팬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20년이나 불교를 믿던 여자였고 60년대를 휩쓸던 대중가요의 가수로서 평안남도 평양서 1·4 후퇴 때 월남한 본명 김명선이란 여자로서 처음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은 1980년 3월이었고 지금도 나가고 있는 서울 용산 동부 이촌동의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이강평 목사님, 김광준 전도사님 시무) 참으로 가족적이고 은혜로운 교회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되지만 미국에 사는 제 막내 동생 명희가 제 신앙의 견인차가 되었지요. 명희는 미국 LA의 독실한 목사님 가정의 며느리가 되었으며 그 시댁의 모든 식구들이 어찌나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지 사실은 그 기도 때문에 20여년의 (불교)를 청산하려고 생각하고 어느 교회로 처음 나갈까 하는 결정만 남았는데 하나님은 그것까지를 결정해 주실 뿐만 아니라 바로 앞집(한양대무용과 조승미 교수)에 인도자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망설이고 있던 저에게 조숭미 교수가 전도를 해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교회지요?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요」 「아니 무슨 파가 있을 것 아니에요」글쎄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아니 장로교요 감리교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일 뿐입니다」 저는 훗날 저를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너무나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자 큰 시험(시련)이 왔습니다.

영동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지 꼭 한 달 만에 복막염이 병발했습니다. 입원해 있는 20여 일 동안 영동교회 교우들의 그 지극한 병문안과 이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에 저는 더욱 감화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교파들이 추구하는 헌장이나 헌법이 없는 교회 오직 그리스도인의 법인 성서로 돌아감을 지향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였습니다. 이강평 목사님(한양대 교수)이 시무하시는 이 교회는 너무도 가족적이었고 성가대가 결성되어 있지 않아 제가 나가면서는 거의 매 주일 제가 특송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나가며 신앙생활의 첫 걸음을 떼던 어느 날 우리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에 클럽 라빈슨이라는 미국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그 주일은 제가 세례를 받기로 작정한 날이었고 저는 특송을 불렀습니다. 저회 교회에서 라빈슨 목사님은 저와 또 한 사람의 세례 문답자를 위해 특별히 축도해 주셨고, 제가 가수임을 이 목사님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 된다면 축가를 부르도록 초청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할렐루야! 레이건 대통령은 당선되셨고 라빈슨 목사님은 저를 초청하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은 진행되었고 저는 그 진행하심에 따라 미국을 다녀온 뒤 각지로 다니며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찬양과 간증으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할 때마다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랐습니다. 우리 돼지 큰 아들 영곤이가 기타 반주를 해주고 수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찬양과 간증의 순서를 맡으면서 저는 저의 지난날이 정말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 별로 다를 바 없었던 여자였는데 새 생명과 환희의 여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주일이 기다려지고 하루하루가 새롭습니다. 밤무대(나이트클럽이나 비어홀 등)에서는 일이 싫어지기 시작했고 그런 만큼 전국 각처에서 저의 성가를 듣고 싶어 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요청이 쇄도하여 바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가요계 생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성가집을 내기 위해 레코드 취업을 하였습니다.

수익성 문제보다도 내면으로부터의 이 기쁨을 이 구원 받은 감격과 환희를 노래하지 않고는,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레코드와 카세트를 출반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성가를 통해 선교하는 여자가 되게 하소서 이제는 거의 가정 모두가(큰아들, 작은아들, 이모, 바로 밑의 동생내외와 올케 그리고 조카들)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현미는 이 생명 다 하기까지 주님만을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위의 내용은 1983년도 한민대학교(구 한성신학교) 교지 {쎄메론} 제9집에 실린 내용을 옮긴 것임을 밝혀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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