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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2-09 00:24
(2)3세기에 걸친 스톤-캠벨 운동 역사: 조사와 분석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515  

 3세기에 걸친 스톤-캠벨 운동 역사: 조사와 분석
Stone-Campbell History Over Three Centuries: A Survey and Analysis

번역: 조동호 목사
출처:
The Encyclopedia of the Stone-Campbell Movement.

    목차

  • 서론
  • 운동사 저술에의 도전
  • 초기 역사들
  •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역사기술
  •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기술
  •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기술
  • 미국 종교사 속에서 그 운동의 역사기술
  • 요약과 분석
  • 그 운동의 역사기술에 대한 현재와 미래의 상태
  • 참고자료
  • 역자 해설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기술
Historiography of the Churches of Christ

제자들 교회의 학자들이 20세기 전반기 동안 대부분의 스톤-캠벨 역사기술을 차지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에도 역사가들이 있었으나 그들이 발행한 대부분의 자료들은 분열에 따른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독특한 입장들을 변호하는 것들이어서 보다 광범위한 역사적 이해에는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기독교개혁에서 스톤-캠벨 운동이 갖는 섭리적인 역할에 관한 초기 태도를 확립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줄기가 그 운동의 이상(理想)과 특히 신약교회의 복음과 질서 회복에 대한 참되고 신실한 계승자라고 생각하였다. 명시적으로든 혹은 암시적으로든 이들 초기 역사들은 제자들(그리스도인들)이 환원이상(還元理想)을 포기한 것으로 기술하였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사역(使役)에 인정되지 않은 관행들을 첨가하거나 (교회)일치를 위해 타협을 강조하고 추구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초기 분열 때 제자들(그리스도인들)이 일치를 택했고,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신약교회)복원을 택했다는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톤-캠벨 운동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초기 역사가들은 그들이 복원에 집중하는 당위성을 역사서술에 포함시킬 자신들의 임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역자 주14]

    [역자 주14] 이 글의 저자의 입장이 무엇이든지 간에 제자(파)들은 신약성서교회의 회복운동, 또는 사도전통의 회복운동보다는 연합운동, 곧 에큐메니즘에 치우친 것이 사실이며, 신학에 있어서도 보수신학보다는 진보신학에 치우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들(무악기)은 제자(파)들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다. 폭넓은 개념의 연합보다는 신약성서교회의 회복운동, 또는 사도전통의 회복운동에 치우쳐 좁은 개념의 일치를 선호하였다. 연합보다는 진리에 더 가치를 둔 것이다. 이 두 입장의 중간에 서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유악기/독립)이다.

신시내티 교회 지도자이자, 출판가였던 존 F. 로우(John F. Rowe)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소속으로 명확히 확인된 저자로서 초기 역사들을 저술하였다. 1877년에 이미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그들의 시작과 발전에 관한 약사>(The Disciples of Christ: A Brief History of Their Rise and Progress)를 썼다. 그러나 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은 1884년에 저술되고 출판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10판이 연이어 인쇄되었다. 그의 책, <개혁운동들의 역사: 열아홉 차례 교회협의회 총회들의 역사로 본 사도교회 환원에로의 귀착>(History of Reformatory Movements: Resulting in a Restoration of the Apostolic Church, With a History of the Nineteen General Church Councils)은 제목만으로도 책의 논지가 설명된다. 5년 후 로우는 위 책에 <제3세기이후 일어난 모든 쇄신들의 역사>(A History of All Innovations from the Third Century Down)라는 제목의 부록을 첨가하였다. 이 부록에서 로우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기본 줄거리를 상술한 후에 스톤-캠벨 운동을 모든 교회개혁노력들의 정점으로 기술하였다.

다른 초기 역사가들처럼 로우는 캠벨운동을 사도 기독교(Apostolic Christianity)의 복원을 위한 주된 원동력으로 기술하였다. 그는 서론에서 “믿음과 실천 모두에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신앙인들의 단체를 실제로 일으킨” 사람은 알렉산더 캠벨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스톤에 관해서는 여섯 쪽만 다루고, 본질적으로는 스톤 신학을 캠벨 부자의 것과 하나로 통합해 버렸다. 스톤의 사상을 캠벨 부자의 것에다 함께 섞는 이런 경향은 19세기를 넘어서까지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가들에게 하나의 표준이었다. 두 사상의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요인들이 기여했던 것 같다. 이런 요인들 중 하나는 스톤이 쓴 일차자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점이고, 다른 하나는 스톤의 교리적 입장과 신념에 관한 거북스러움이었다. 그런 거북스러움은 특히 삼위일체와 대속에 관한 이해, 그리고 그가 인도했던 열광적인 부흥회들에서 나타났다.

로우는 그의 책에서 사도교회의 복원을 파괴할지 모를 자들에 대한 여러 암시를 제시하면서도, 스톤-캠벨 운동에서 이미 진행 중인 분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책은 스톤-캠벨 운동을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교회와 이전 세기들에서 인위적으로 도입된 부패한 것들에서 벗어난 사도적인 공동체로서 묘사한다.

로우의 역사는 1929년까지 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에서 표준으로 남았다. 같은 해에 F. W. 셰퍼드(Shepherd)는 <교회, 타락, 그리고 환원>(The Church, the Falling Away, and the Restoration)을 저술하였다. 그는 1906년 종교 조사를 위해 그리스도의 교회들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했던 인물이다. 존 F. 로우의 아들, F. L. 로우(Rowe)에 의해서 책이 출판되었는데, 그 책은, 더 간략하지만, 존 F. 로우의 초기의 책과 상당히 동일한 기초 위에서 쓰였다. F. W. 셰퍼드는 신약교회의 기술로 시작하면서 로마 가톨릭주의의 출현을 배도(背道)란 말로 정의하였다. 비록, 로우처럼, 셰퍼드도 스톤의 사상을 알렉산더 캠벨의 것과 거의 동일하게 건전한 것으로 취급하였지만, 스톤-캠벨 운동의 이야기는 발톤 스톤의 업적으로 시작하였다. 그 책이 1832년 스톤과 캠벨 운동들의 연합 이야기로 갑자기 끝을 내고 있지만, 거기에 내포된 암시는 또 다시 스톤-캠벨 운동이 신약교회 복원의 임무를 성취했고, 지금 그리스도의 교회들 속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로우와 셰퍼드의 책들은 20세기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출간되었다.

20세기 초 다른 중요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담론은 1939년과 1942년 사이에 <복음주창자>(Gospel Advocate)지에 실린 일련의 기사에서 나타났다. 프리드 하드만 대학(Freed Hardeman College)의 교수였던 L. L. 브리건스(Brigance)가 쓴 “환원연구”(Studies in Restoration)라는 제목의 기사들은 스톤-캠벨 운동의 진수로써 로우와 셰퍼드의 글에서 나타난 교리와 실천의 회복에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심지어 셰퍼드 이상으로 브리건스는 그 운동에 있어서 스톤을 그의 신학이 본질적으로 캠벨의 것과 동일한 선구자로서 묘사하였다. 이전의 역사들과는 달리 브리건스의 역사는 스톤-캠벨 운동의 이상에서 일부 형제들의 이탈을 공공연히 비난하며 분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역사가들 사이에서 이미 겪었던 것처럼, 1940년대 중반 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에서도 목사와 편집장들에 의해 쓰인 역사로부터 학문적인 훈련을 받은 역사가들에 의해 저술된 역사에로 하나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전환으로 인해, 역사기술은 스톤-캠벨 운동의 존재이유였던 환원(복원)에 대한 배타적 집중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승리주의(triumphalism)[역자 주15]의 옛 형태를 단념하기에 이르렀다. 

    [역자 주15] ‘승리주의’(triumphalism)는 특정 교리, 문화, 사회체제가 모든 다른 것들보다 우월하다거나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나 신념을 말한다. 승리주의는 통일을 꾀한 교리가 아니라, 정치해설가들이나 역사가들처럼 당파들의 특정 태도들이나 신념체계들을 특정 짓는 말이다.

이 전환기의 과도기적인 인물이 호머 하일레이(Homer Hailey)였다. 그는 에빌린기독대학교(ACU)와 플로리다대학(Florida College)에서 성서를 가르친 교수였으며, 1944년 남감리교 대학교(SMU)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다음 해 그는 <환원운동의 태도와 결과들>(Attitudes and Consequences in the Restoration Movement)이란 제목으로 그의 논문 수정판을 출판하였다. 비록 그의 저술이 종합역사로 기획된 것은 아닐지라도, H. 하일레이는 스톤-캠벨 운동의 기본적인 태도였다고 믿었던 것들을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가장 초기의 추진목표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the union of Christians)이었으며, 신약성서를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의 전례(典例)로 삼고자 한 간절함이 초기 설립자들에게 옛 질서(사도전통)의 환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일레이는 그 분열이 성서가 침묵하는 부분을 어떻게 간주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의 결과라고 설명하였고, 선교회(교회협의회 성격)의 적법성과 예배 중 악기 사용하는 문제들에 집중하였다. 하일레이는 그가 인용한 개리슨(W. E. Garrison)의 1931년 저술, <변방을 좇는 종교>를 포함해서 스톤-캠벨 운동의 역사를 폭넓게 섭렵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분명히 그로 하여금 일치의 이상(ideal of unity)을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이전 역사들의 사례에 있어서보다 좀 더 빼어난 위치로 옮겨놓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제도(noninstitutional)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지도자가 될 하일레이는 비록 캠벨이 자신의 강령(綱領)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연합)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고는 하나 그의 일차적인 헌신은 “대중성”보다는 오히려 교리적인 진리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얼 I. 웨스트(Earl Irvin West)가 쓴 4권짜리 역사 가운데 첫 권이 1949년 <옛 질서의 탐구: 1849-1906년의 환원운동의 역사>(The Search for the Ancient Order: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 1849-1906)란 제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E. 웨스트는 M.A.와 B.D. 학위를 버틀러대학교(Butler University) 신학대학원에서 취득했고, 일 년 전에는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Ph.D.학위를 막 마친 상태였다. 웨스트의 저술은 그리스도의 교회들 출신의 전문 역사가에 의해서 쓰인 스톤-캠벨 운동의 명실상부한 최초의 종합역사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J. F. 로우 이후에 나타난 해석의 경향들, 곧 환원운동의 진수와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위업으로써의 환원을 견지하였다. “옛 질서”(사도전통)가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복원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진리에 대한 모든 위협들을 물리치면서, 상대적으로 상처가 없는 환원운동의 진정한 유산을 보전하면서 19세기와 20세기를 통과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 전체적으로 그 줄기와 운동의 자기 이해에 제각기 뜻 깊은 공헌을 하게 될 두 개의 서로 다른 역사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학자들에게서 나타났다. 첫 번째 것은 밴더빌트대학교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데이비드 에드윈 해럴 2세(David Edwin Harrell, Jr.)가 쓴 비판적 사회적 역사였다.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위해 수행된 저술에 근거해서, 해럴의 <기독교 미국에 대한 탐구: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미국 사회>(Quest for a Christian America: The Disciples of Christ and American Society, 1966)와 <1865-1900년, 그리스도의 제자들 분열에 대한 사회적 사료들>(The Social Sources of Division in the Disciples of Christ, 1865-1900, 1973)은 분열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취한 교리적 입장들이 스톤-캠벨 운동에 의해서 회복된 성서 진리들에 단지 완고하게 집착한 것만이 아니었다는 굉장한 증거를 제시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대다수 그들 남부 시골 교회들이 직면했던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았고, 남북전쟁과 지역파벌주의는 그들의 특질(ethos)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D. 해럴의 저술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와 스톤-캠벨 운동 전체를 통해서 부각되는 학자들 사이에서 환원운동의 역사기술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어떤 면에서 해럴의 저술은 단순히 이전의 일치된(總意的) 해석들을 되풀이(模寫)하지 않는 전문적 역사적 사회적 탐구를 합법화 하였다. 그의 개인적인 신앙충절은 그리스도의 교회들 안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하위그룹들의 하나인, 비제도(noninstitutional) 교회들에 바쳐지고 있다. 그의 연구의 초점은 어떤 면에서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특질들을 대조함으로써 자신의 개인적인 충절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럴의 저술은 그리스도의 교회들 소속의 역사가들 사이에서 지나치게 변증적이거나 혹은 특정 교리를 절대화하려는 해석에서 멀어지는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두 번째 그리스도의 교회들 소속의 “새로운 역사가”는 빌 J. 험블(Bill J. Humble)이었다. 험블의 1964년 아이오와대학교 박사학위논문은 19세기 기독교선교회 논쟁의 역사였다. 그 글에서 그는, 해럴처럼, 이슈를 지역 파벌화하고 또 그것을 분열시키는 일에 남북전쟁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1969년에 출판된 험블의 간략한 <환원 이야기>(Story of the Restoration)는 해럴의 학술적인 서적들과는 매우 다른 장르인 성인주일학교교재로 고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학교를 통해서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험블의 책은 그리스도의 교회들 안에서 폭넓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해럴처럼, 험블은 분열과 이상 속에 있는 파벌적 이슈들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그 중요성은 일치와 환원이 대립되는 목표들이었다는 것이다.[역자 주16]

    [역자 주16] 성서의 권위회복과 교회일치는 기독교선교의 지상 최대의 과제이다. 환원운동의 핵심논쟁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교회일치와 성서적 권위회복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알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환원운동은 종교 개혁가들이 파괴한 우주적 단일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일치운동이며, 성서의 권위를 회복하자는 복합적인 성격을 띤 운동이다. 이 두 가지 쟁점이 환원운동을 지난 200년 동안 지속시켜 온 추진력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원칙의 맥락을 어떻게 조화와 균형 있게 이어 가느냐에 있다. 교회일치 쪽이 밀리면, 율법적이고, 분파적인 성향을 띄게 되고, 성서의 권위 쪽이 밀리면, 교리적 상대성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서의 권위에만 치중하고 연합을 소홀히 하는 탓으로 미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들(무악기)이 다분히 분파적이며 율법적이다.[1966년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들(무악기)은 30여개 이상의 분파로 갈라져 있으며, 텍사스의 아빌린(Abilene)에서만도 6개 파가 서로 공박을 일삼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30개 이상 되는 그룹들은 서로 교제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1960년에 16,500개의 교회에 2백만 이상의 성도를 보유하였던 교회가 필립 영의 1987년 통계 자료에서는 13,485개 교회에 130만 성도로 감소되었다.[R. J. Kidwell,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The Seminary Review(Cincinnati Christian Seminary, Summer 1966); James D. Murch, Christians Only: A History of the Restoration Movement(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n.d.), p. 309.] 1995년에는 13,020교회에 165만 5천 성도로 보고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연합에 치중하고 성서의 권위를 소홀히 하기 때문에 진보신학 노선을 취하고 있다.[제자들 교회도 필립 영의 1982년 자료에 의하면, 1971년부터 1982년까지 10년간 916명의 교인수의 감소를 보이고 있고, 역시 필립 영의 1987년 통계자료와 대조해 볼 때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5년에는 4,036개 교회에 93만 성도로 보고되었다.] 그러므로 환원운동의 핵심논쟁은 바로 이 두 가지 교회일치와 성서의 권위사이에서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나가느냐로 집약될 수 있다.[James B. North, "The Current Challenge to the Restoration Movement," The Seminary Review(Cincinnati Christian Seminary, September 1986), pp. 105-122.] 그리스도인의 교회들(독립 또는 유악기)도 성서만이 믿음과 실천의 유일한 길잡이이며 교회일치의 시금석으로 입장을 정하고 있으며, 성서의 권위에만 치중하고 있어서 교회 일치에 다소 소홀히 하는 편이다.

    이 두 원칙에 추진력을 주기 위해서 환원운동가들은 세 가지 표준을 세웠는데, 그것들은 통일, 자유, 사랑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본질적인 것은 통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비본질적인 것은 자유로 하되, 본질적인 것이든, 비본질적인 것이든 간에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들(무악기)은 비본질적인 요소로 믿어지는 신약성서가 침묵하는 부분을 하나님께서 금지하는 것으로 믿어 본질적인 문제로 쟁점화 시켰고(‘성서가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서가 침묵하는 것을 침묵한다’에 비중을 둠), 회중예배 때의 교회에서의 악기사용, 급료목회자, 성가대, 교회공동체 사이의 협동, 교회 밖의 기구 구성문제(예: 선교회, 성서공회 등)등을 문제 삼음으로써 환원운동 100여년만인 1906년에 갈라서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1900년대 초 자유신학의 물결에 합류하면서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였고, 성서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진리의 통일보다는 상호이해와 협력을 기치로 연합운동을 전개하면서 결국 중도 그룹인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유악기)에서 갈라서게 되었다. [이상의 ‘역자 주’는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신학논문’에 실린 역자의 “그리스도의 교회와 환원운동”(http://kccs.pe.kr/rm02.htm)이란 글의 ‘환원운동의 쟁점’ 부분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험블의 해석을 특별히 중요하게 만든 것은 그 책에 쓰인 결론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복원된 사도교회(restored apostolic church)라고 주장한, 존 F. 로우로부터 이후 이전 역사들과 달리, 험블은 하나님의 뜻에로 교회가 돌아가는 것은 지속적인 도전이지, 완료된 과업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립스콤(Lipscomb)대학교의 역사학 교수, 로버트 E. 후퍼(Robert E. Hooper)는 그의 1993년 역사 저술, <독특한 백성: 20세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A Distinct People: A History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the 20th Century)에서 이와 동일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후 십년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출간된, 리로이 개리트(Leroy Garrett)의 <스톤-캠벨 운동>(The Stone-Campbell Movement, 1981; 1994년 개정판)이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소속 저자가 교회 일치를 무대 중심에 놓은 첫 번째 역사가 되었다. 그 책은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소속 회원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대학출판사(College Press)에 의해서 출판되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한 개리트는 환원이 스톤-캠벨 운동의 최우선의 신학적 동력이었다는 주장에 공공연하게 도전하였다. 그는 캠벨의 강조가 일치의 끈으로써 사도전통의 본질들 위에 있었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상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수많은 비본질 항목들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이 해석이,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는 논쟁적일지 모르지만, 그 운동의 참된 정체성이 신약교회의 믿음과 실천들을 세밀하게 복원하는 탐구였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한 세기동안이나 유지해온 경향을 극적으로 뒤엎는 것임을 말해준다. 어쩌면 의미심장한 일로써, 책 제목으로 개리트가 찍어 박은 “스톤-캠벨 운동”이란 용어는 대부분의 학술문헌에서 사용된 “제자들(그리스도인들) 운동”(Disciples Movement)과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을 대신해서 점진적으로 표준 학명이 되었다.

리처드 휴즈(Richard Hughes)의 <옛 신앙 되살리기: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이야기>(Reviving the Ancient Faith: The Story of Churches of Christ in America, 1996)는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스톤-캠벨 운동의 역사기술에 있어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R. 휴즈의 획기적인 연구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단지 구별되는 분파 정도가 아니라, 그 운동의 어떤 줄기에 못지않게, 초기의 확실한 주류를 대표한다는 주장을 많이 했다고 역설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발톤 W. 스톤의 “묵시적 종파주의,” 곧 [스톤과 캠벨] 연합 이후에도 그 운동의 생존능력을 유지시켰던 일종의 긴장을 크게 구체화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이 긴장은 마침내 캠벨과 제자들(그리스도인들)의 “합리적 종파주의”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나 그 자체는 일부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물려받은 동일한 합리적 경향들에 의해서 짓밟혔다.

적어도 휴즈의 저술은 한 중요한 새로운 해석들의 경향을 보여주었다. 먼저 그는 스톤-캠벨 운동에서 스톤의 중요성을 고양시켰다. 하지만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제자들 교회의 역사가들이 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이유에서 그렇게 했다. 그에 따르면, 스톤은 현 시대의 연합운동가(ecumenist)가 아니라, 모든 것이 가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해서 배설물로 여기는 반(反)문화적 급진주의자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스톤의 확실한 계승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례로 삼아서, 휴즈는 “역(逆) 승리주의” 방식에서 20세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를 설명해 나갔다. 19세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정의했던 “진정한” 종파적 묵시적 기독교는 20세기의 논쟁들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논쟁들은 전 천년설 갈등, 반(反)제도적 싸움들 그리고 1960년대의 위기였다. <옛 신앙 되살리기>에서 드러난 휴즈의 업적은 해럴(Harrell)의 연구로 시작된 한 경향을 지속시킨 것이었다. 그것은 스톤-캠벨 운동과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를 더 넓은 세계의 학계와 신앙 단체들에로 개방시킨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소속 학자들이 쓴 스톤-캠벨 운동의 가장 최근의 역사는 게리 할로웨이와 더글러스 A. 포스터(Gary Holloway and Douglas A. Foster)가 쓴 <하나님의 백성 새롭게 하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간결한 역사>(Renewing God's People: A Concise History of Churches of Christ, 2001)이다. 휴즈처럼, 이들 저자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임무가 일종의 끝없는 과정이란 것을 암시한 책 제목의 어휘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 환원의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할로웨이와 포스터는 주요 목표로써 교리와 실천을 율법적으로 되풀이(模寫)할 것을 강조한 환원에 대한 이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 오히려 이 세상의 집에 결코 전적으로 머물지 않고, 그들의 참 본향을 향해서 늘 오름의 행진을 펼친다는 나그네 백성의 개념은 두드러진 은유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한 세기 동안의 역사기술은 복원된 사도교회라는 보증으로부터 끝없이 노력하는 모습(a picture)에로 옮겨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Christ's church)의 더 넓은 역사 속에 있는 모습이요, 그들의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쓰는 나그네 백성을 새롭게 하는 모습이다. 그 세기에는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구성원들이 기여한 학문에 괄목할만한 발전이 있었다.

---(3)글에서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기술(Historiography of the 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