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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1-29 11:30
(4)3세기에 걸친 스톤-캠벨 운동 역사: 조사와 분석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340  

 3세기에 걸친 스톤-캠벨 운동 역사: 조사와 분석
Stone-Campbell History Over Three Centuries: A Survey and Analysis

번역: 조동호 목사
출처:
The Encyclopedia of the Stone-Campbell Movement.

    목차

  • 서론
  • 운동사 저술에의 도전
  • 초기 역사들
  •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역사기술
  •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기술
  •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기술
  • 미국 종교사 속에서 그 운동의 역사기술
  • 요약과 분석
  • 그 운동의 역사기술에 대한 현재와 미래의 상태
  • 참고자료
  • 역자 해설

미국 종교사 속에서 그 운동의 역사기술
Historiography of the Movement in American Religious History

톤-캠벨 운동권 밖에 있으면서 각자의 서술 모델들을 적용하여 이룩한 학자들의 관찰과 분석들은 스톤-캠벨 운동의 전반적인 역사기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서술들이 정확하고 공정한가에 대해 논의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톤-캠벨 운동권 내부의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이슈들을 보게 하고, 스톤-캠벨 전통에 선 교회들 속에서 자기이해를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이슈들에 주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나의 학문분야로써 미국 종교사는 19세기 미국 역사가들과 미국 교회역사가들 모두의 시도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 국가와 그 나라의 기독교가 겪은 체험의 역사와 운명에 담긴 모든 ‘섭리’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시드니 알스트롬(Sydney Ahlstrom)이 자신의 <미국 국민의 종교사>(A Religious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1972)에서 보는 것처럼, 주류 ‘개신교의 총의(總意)’적 해석에 대한 갈망은 강했다. 20세기에 이 종합적인 촉구는 시카고대학교의 역사가 윌리엄 워렌 스위트(William Warren Sweet)와 더불어 좀 더 비판적인 소리를 갖게 되었다. 스위트의 저술은 미국종교발전에 있어서 ‘변방’의 문화역사적 중요성에 관한 프레더릭 잭슨 터너(Frederick Jackson Turner)의 강조를 되풀이하였다. 스위트는 후에 제럴드 브라우어(Jerald Brauer), 로버트 핸디(Robert Handy), 윈드롭 허드슨(Winthrop Hudson), 시드니 미드(Sidney Mead), 마르틴 마르티(Martin Marty) 그리고 앞에서 언급된 제자들 교회의 W. E. 개리슨(Garrison)과 같은 ‘시카고학파’ 역사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뛰어난 많은 수의 학자들은 스톤-캠벨 운동을 탁월하게 서술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들은 교회폭정에 저항하고 전통을 불신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원시주의 원동력과 천년왕국주의 원동력을 결합시킨 스톤-캠벨 운동을 미국의 변방종교(frontier religion)가 지녔던 특별히 빼어난 현상으로 기술하였다. 더구나 이들 역사가들은, 비록 스톤-캠벨 운동이 교파주의 상태에 ‘빠지는’(lapse) 순수 아이러니를 드러내었지만, 그 운동이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촉구하는 기본적인 외침을 인정하였다. 스톤-캠벨 운동의 초기 구성요소들에 관해 제럴드 브라우어(Jerald Brauer)가 1953년에 논평한 다음의 글은 대표적이다: “그들의 전투적 외침은 ‘성서적 기독교로 돌아가 그 기독교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을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들 원리들을 위해 진실하게 설교하고 힘쓰는 동안, 그들은 불행히도 일치를 위한 재집결지가 되지 못하고, 미국 현장에서 경쟁하는 또 하나의 교단이 되고 말았다.” 윈드롭 허드슨(Winthrop Hudson)도 1961년에 다음과 같이 비슷한 지적을 하였다: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 Movement)은 수많은 교인들로부터 의미심장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에 반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해야할 그 운동의 목적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1830년대에는 단순히 또 하나의 교단이 되고 말았다.” 또 마르틴 마르티(Martin Marty)는 미국 종교의 아이러니들을 강조한 세련된 1986년 저술에서 스톤-캠벨 운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와 거기에 내재된 한 가지 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것이다. 그것은 매우 풍부한 아이러니들이고, 매우 대표적인 경향들이다. 세계교회운동(ecumenical)의 시대에서 교단 형성의 힘이 이보다 더 명확하게 나타난 곳은 아무데에도 없다.”

스톤-캠벨 운동을 현상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한 가지 혹은 또 다른 중심사상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시카고학파’의 접근과 일치하였다. ‘변방’ 논제는 단지 그 같은 것들의 한가지였을 뿐이다. 한 가지 부수적인 주테마는 ‘원시주의’ (primitivism) 혹은 ‘환원운동사상’(restorationism)이었다. 1976년에 이뤄진 한 중요한 연구에서, 사무엘 힐(Samuel Hill)은 미국 땅에서 탄생한 종교 단체들을 특징지으려고 복원주의(restitutionism)의 전체 모형론을 설명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모르몬교도들과 함께 “제도 복원주의”(institutional restitutionism)의 형태, 즉 참 교회를 재건하려는 십자군에 속한다고 하였다. 모르몬교도들은 참 교회를 재건함에 있어서 새롭고 특별한 계시(모르몬경)를 주장한 반면,[역자 주29]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대조적으로 신약성서의 청사진 위에서 엄격하게 참 교회를 재건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렇게 쉽게 꼬리표를 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저항적이었다. 동일한 요람의 제도 복원주의에서 태어났으므로, 제자들 교회는 결국,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갈라진 이후, 덜 전형적인 “관계 화해를 위한 복원”(restitution as relational reconciliation)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제도적으로 하나의 교단이 되었고, 또 스톤-캠벨 운동이 가진 복원주의의 원동력을 상실한 교단이 되었다.

[역자 주29] ‘계시’는 하나님의 뜻이 언어, 기적, 사건 등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모르몬교는 이 계시의 계속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서는 신구약성서 66권만을 유일하고 충분하며 최종적인 계시로 보며, 더 이상의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경과 위경을 신학과 실천의 규범으로 삼지 않으며, 단지 참고자료로만 활용할 따름이다. 그런데 모르몬교에서는 성경과는 그 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모르몬경을 제2의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어서 정통기독교와는 크게 다른 종교적 특색을 갖게 되었다.

그 아이러니의 또 하나의 다른 측면이 시드니 미드(Sidney Mead)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S. 미드는 아이오와대학교의 교수로서 스톤-캠벨 운동에 소속한 많은 역사가들을 지도하였다. 미드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알렉산더 캠벨의 독특한 브랜드의 환원운동사상이 “일치와 환원을 충돌선상에 놓는다.”고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러니는 스톤-캠벨 집단 내부에 있었다. 더 큰 역사적 아이러니는 캠벨주의자들이 19세기의 한 종파를 완벽하게 전형(epitomized, 집약적)이 되게 한 것이었고, 그렇게 용인된 전형(arrangement)이 제자들 교회 자신의 유일성에 대한 주장을 철저히 상대화시킨 것을 발견할 뿐이었다는 것이다. 캠벨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희망을 미주(美洲)의 신(新) 공화국(共和國)의 정책에 걸었고, 그 정책은 다양한 종교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종파들의 다양한 ‘정설들’[역자 주30]을 정교분리 정책에 따라 동등하게 대우한 것이었다. 미드가 리처드 휴즈(Richard Hughes)의 견해와 같이한 것처럼, 만약 캠벨이 궁극적으로 세계복음화와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보급이 손에 손을 잡고 나갈 천년왕국의 비전을 품었다면, 그것은 교회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을 국가가 하도록 허용하는 한 가지 교회의 사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파들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독특한 단체가 좀 더 결정적으로 [미국의] 자유로운 제도들에 공헌했는가를 보여주려고 앞을 다투었다. 환원운동사상가인 캠벨도 “반(反)교파주의 종파”를 설립함으로써 구체적으로 그러했다고 미드는 평가한다. 

[역자 주30] 19세기경에 미국의 변방에서는 스톤-캠벨운동뿐만 아니라, 모르몬교(Latter-day Saints)와 같은 새로운 종파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밖에도 19세기 무렵 생겨난 종파들을 보면, 자유의지 침례교회(Free Will Baptist), 원시 침례교회(Primitive Baptist), 제칠안식일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Seventh Day), 앤더슨파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 Anderson, Indiana), 클리블랜드파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Cleveland, TN), 제칠안식일 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 여호와 증인(Jehovah's Witnesses), 크리스천 사이언스(First Church of Christ, Scientist), 성결교회(Holiness) 등이 있다. 이들 종파들은 미국 정부의 종교정책, 즉 정교(政敎)분리정책에 따른 종교의 자유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복음주의 역사가인 나단 해치(Nathan Hatch)와 마크 놀(Mark Noll)은 환원운동사상가의 원동력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스톤-캠벨 운동이 보여준 대중주의 혹은 민주화의 기풍에 집중하여 주목하였다. 특히 해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기술”(historiography from below)의 한 방법, 즉 주류 ‘개신교 총의(總意)’적 해석들에 비판적인 한 방법을 발전시켰다. 이로 인해서 해치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가로지르는 변방에서 일어난 많은 종교운동들의 “종파적 열정”이 근대 “세계교회운동의 저명인사들”에 의해서 극복되어야할 단순한 하나의 장애물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것이 참된 영적 생명력을 드러내었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했다. 캠벨의 제자들과 스톤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함, 사제들의 억압으로부터 해방, 그들의 힘으로 성서의 “명백한 사실들”(plain facts)을 읽을 수 있는 단순한 사람들의 손에 기독교를 되돌려 놓는 것에 대한 최상의 모델들이었다. 변방에서의 그 같은 대중주의 종교운동들의 지도자들과 설교자들은 “소외된 사람들(marginal people)에게까지 뻗어감에 있어서, 독학을 신장하고 엘리트 정설들의 교리화로부터 참여자들을 보호함에 있어서, 지지 공동체들의 사람들을 함께 엮음에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보통 사람들의 대망들을 서로 동일시함에 있어서 현상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해치는 주장한다.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의 옳음에 가치가 있다고 해치는 주장한다. 비록 해치는 자신이 스톤-캠벨 운동을 돋보이게 묘사한 것으로 알지만, 그가 스톤-캠벨 운동을 철저히 대중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은 명백히 과장하여 그린 것이다. 특히 해치는 스톤과 캠벨 모두의 기독교가 지닌 교회적 전통적 측면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보다 앞선 사무엘 힐(Samuel Hill)처럼, 분명히 해치는 변방의 다른 종교단체들과 관련하여 스톤-캠벨 운동을 평가할 때 ‘비교 환원운동사상’에 의존하여왔다. 그러나 또 다른 미국 종교사가인 미국 성공회의 리처드 웬츠(Richard Wentz)는 스톤-캠벨 운동을 “환원사상가의 전통들”의 범주와 더 나아가 “성서주의자와 합리주의자 그리스도인주의”의 종속 범주아래 포괄시켰다. 이것으로 그는 오히려 엄격한 성서적 역사적 신학적 환원주의(reductionism, 단순한 신약교회로 돌아가자는 스톤-캠벨의 환원사상)에 관하여 말하려고 한다. 스톤-캠벨 운동은 그 자체의 뿌리인 칼빈주의를 비롯해서 이전의 모든 교회전통을 배척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하고 합리적인 신앙을 규정하였고, “자체 동봉(同封)된 합리적 진리의 보고(寶庫)”로써 신약성서에 의존하였으며, 또 “독특하게 미국인의 정신”에 입각해서, 믿음과 실천에서 오로지 실용적으로 “작용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R. 웬츠는 자신의 책의 서문에서 일반화에 대한 자기 자신의 성향을 고백한다. 그 성향은 스톤-캠벨 운동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확실한 증거로 나타난다. 그에게서 스톤-캠벨 운동은 미묘한 차이가 무시되고 총체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다.

그러나 웬츠의 장점은 그가 ‘전통’의 이슈에 집중한 것이다. 스톤-캠벨 운동은 둘 다 전통에 영향을 받았고, 그 자체의 전통들을 만들어냈다. 이 점은, 간략하게 말하면, 스톤-캠벨 운동에 대한 시드니 알스트롬(Sydney Ahlstrom)의 설명에서 강력하게 제기된다. 알스트롬은 ‘변방’이 그 운동 자체의 동력을 만들어냈거나(터너와 스위트) 혹은 민주적인 환원운동사상이 스스로 죽어(per se in the dust) 전통을 떠났다는 논제에 신중을 기한다. “정반대의 현상은 보다 더 충격적이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이든, 영국 침례교의 유산이든, 존 웨슬리의 말씀과 방법이든, 혹은 스코틀랜드의 할데인(Haldane) 형제들의 환원운동사상이든, 거기엔 실행되어 왔고, 교회론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개정된 전통의 유산들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미래는 실로 과거(혹은 “과거들”)의 것들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었지, 과거의 것들 없이 그냥 된 것이 아니었다.

스톤-캠벨 운동과 미국의 다른 종교단체들을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들은 미국 종교사 분야에서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 중 일부 모델은 틀림없이 다른 모델들보다 좀 더 희망적으로 입증할 것이다. 수년간 역사가들은 변방 종교 “운동들”이 지닌 사회와 교회의 정황(configuration)에, 또 그 운동들이 어떻게 “교단들”로 형성되었는지, 나아가 어떻게 그 교단들이 미국 문화의 국면조성에 도움을 주었는지를 공정하고 면밀하게 주목하였다. 1994년에 릴리기금재단(Lilly Endowment)에서 제공한 기금으로 이뤄진 한 연구서가 <교단주의 재고(再考): 해석적 에세이집>(Reimagining Denominationalism: Interpretive Essays)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다른 것들 속에서 이 기획은 교단주의에 관한 더 폭넓은 종합적 해석들을 단념시키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의 교단에 공감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내부자들이 전한 교단들의 독특성과 이야기에 주목하도록 격려하였다. 그와 같은 시도가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리로이 개리트(Leroy Garrett)와 같은 일부 스톤-캠벨 역사가들에게는 환영할만한 소식으로 다가온다. L. 개리트의 저술 <스톤-캠벨 운동>은 하나의 해석적 모델로써 전기와 '일화'(逸話, anecdotal) 역사를 훌륭하게 개발한다.

릴리의 기획은 또한 교단 역사에 관한 신선한 재해석들에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이와 같은 방법론들에는 회중 연구, 인류학, 사회학, 종교사, 문학적 연구 등이 포함된다. 이들 새로운 탐구 방법들의 일부가 스톤-캠벨 역사가들 사이에서 이미 관심을 얻고 있다. 회중역사는 작고한 제자들 교회의 역사가인 안토니 두나번트(Anthony Dunnavant)가 열정을 쏟았던 분야였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이 대사전의 총괄 편집자의 한 사람으로 헌신하였다. 두나번트가 잘 알고 있었듯이, 대역사(macro-history)는 소역사들(micro-histories)없이 효과적으로 구성될 수 없다. “예배에 참석한 자들”(people in the pew)이 무엇을 해왔는지, 또 어떻게 그들이 공동체(지역사회)에서 상호간에 그들 자신들의 삶을 해석하는지가 어떻게 스톤-캠벨 운동이 더 다양한 그리스도인 대중에게 자신을 제시해왔고, 또 제시할 것인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5)글에서 요약과 분석(Summary and Analysis)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