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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6-17 21:27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의 설교 전략(임학균)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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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의 설교 전략
임학균 전도자(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

목차
1. 소개 글
2. 그리스도의 교회론
1)그리스도의 교회
2)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명
3)그리스도의 교회와 환원운동
3. 설교론
1)설교의 정의
2)설교의 목적
4.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 내용 분석
1)설교 내용의 주제 분류
2)설교집 소개와 내용분석
3)전체 비교 분석
5. 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 주제 분석
1)1950년대의 설교 주제
2)1960년대의 설교 주제
3)1970년대의 설교 주제
4)1980년대의 설교 주제
5)1990년대의 설교 주제
6)전체 분석
6.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 전략을 위한 제언

1. 소개 글
필자가 부여받은 주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의 설교 전략’을 분해 해 보면 그리스도의 교회, 설교(說敎), 그리고 전략(戰略) 등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조직신학 가운데 교회론의 관심사이고, 설교는 실천신학에서 다룰 문제이다. 한편 군사(軍事) 용어인 전략의 사전적 의미는 “① 전쟁 목적을 이루려는 온갖 꾀와 방침, ② 정치․경제 따위 사회적 활동이나 투쟁에 있어서의 기본 방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군사 외에도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계획을 뜻하는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이런 전제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의 설교 전략”이라는 본 주제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가 첫 번째 질문이 된다. 그 다음에는 ‘과거에 성서와 교회사(敎會史), 그리고 환원운동사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사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위치와 내용과 방법은 어떠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성서·교회사·실천신학을 바탕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본 주제의 요지라 하겠다.

그러나 본 연구의 핵심은 교회론 보다는 설교론에 있으므로 본 소고(小考)에서는 졸고 「말씀의 샘터」제4장에 소개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명”,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와 환원운동”<임학균, 「말씀의 샘터」, 도서출판 설송, 2006. pp.279-94.>을 인용하여 대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론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이므로 연구된 다른 자료를 소개함으로서 그 분야를 보강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론에 관한 연구는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발표되어 있는데, 연구물의 성격을 크게 분류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론(論)과 교회사(史)”,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역사와 그리스도의 교회(유악기)(Christian Church) 역사”<편의상 본 소고에서는 이후에 나오는 ‘Church of Christ’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Christian Church’는 ‘그리스도의 교회(유악기)’로 지칭할 것이다.>이다.

한국에서 발표되거나 번역되어 출간된 자료로서 그리스도의 교회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로서 교회사에 해당하는 글로는 먼저 김세복 전도자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교회사(1969)」가 있다. 이 연구는 그의 석사학위 논문으로서 환원운동에 대한 간략한 기술과 더불어 당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현황을 정리한 글이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환원운동사로는 김익진 교수가 발표한「신약교회 운동사(1986)」가 있다. 이 논문에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전래 과정과 역사가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동석기, 강명석 전도자(그리스도의 교회, 무악기)와 성낙소, 최상현 목사(그리스도의 교회, 유악기) 등 국내인사들의 행적과 1954년에 입국한 그리스도의 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데일 리처드슨(Dale Richderson)을 위시하여 빌 램시(Bill Ramsey), 최수열(L. Haskell Chesshir), 말콤 이 파수리(Malcolm E. Parsley) 등 여러 선교사들을 소개하였다. 또한 1907년 이후 1985년 이전까지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역사와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였던 유명한 환원운동가들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자료들을 고루 기술하였다.
필자도 1951년에 창립하여 2001년 현재 50주년을 앞두고 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의 반세기 역사를 정리한 「우리교회의 반세기사(1999)」에 졸고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환원운동사」를 기술하였다. 이 글은 1999년 현재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현황, 국외 파송 선교 현황, 유관기관, 주요 인사 등을 기술한 후, 마지막으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루어 온 환원운동의 의미를 기술하였다.
이 외에도 신민철 전도자의「그리스도의 교회사 연구(1992)」, 김익진 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인「강명석과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터커(M. H. Tucker)의 글을 번역한 「환원운동의 역사(1987)」외에도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동석기 전도자와 강명석 전도자에 대한 연구가 꽤 많이 발표되어 있다. 또한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http://www.hanincoc.org )를 위시하여 유익한 많은 사이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참고할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의 교회론에 역점을 둔 연구로는 기준서 교수가 쓴 「신약교회론(1996)」과, 역시 기준서 교수가 번역한 에버렛 퍼거슨(Everett Ferguson)의 「현대인을 위한 성서적인 교회(1977)」가 있다. 또한 이태환 교수는 에드워드 왈톤(Edward Whalton)의 「신약교회」를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그리고 필자도 졸고 「말씀의 샘터(2006)」제4장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간략하게 기술하였다.
「신약교회론」은 교회의 이해, 신약교회론, 성서와 교회,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연관성, 교회의 구성, 표상, 특성, 예배 등을 기술하였는데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하는 환원운동의 두 가지 분명한 목적은 “하나의 교회로 일치와 말씀으로 환원"<기준서, 「신약교회론」, 서울, 그리스도신학대학 출판부, 1996. p.4.>이라고 강조하였다.
「신약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론과 교회의 배경, 조직, 예배 등을 알기 쉽게 요약하여 환원운동을 연구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환원운동 연구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알기 쉽도록 정리한 책이다.
필자도 CBS 방송설교집 「말씀의 샘터(2006)」 제4장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기술했는데,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할, 사명, 환원운동, 예배, 권세를 기술하고 마지막으로 환원운동은 종교개혁의 연장선상에서 교회가 계속 해야 할 새롭고 중요한 사명임을 강조하였다.

한편 그리스도의 교회(유악기) 입장에서 기술한 연구로는 김찬영 목사의 그리스도의 교회 초기 역사」, 최윤권 목사의 「내가 본 한국그리스도의 교회사(1997)」, 박대순 목사의 「간추린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사(1998)」등이 있다. 특히 유악기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환원운동을 중점적으로 연구 발표한 사람은 조동호 교수이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1994)」가 있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환원운동,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유언문서, 선언과 제언, 루넨버그 서신, 알렉산더 캠벨의 침례론, 성만찬 예배 회복의 필요성 등을 번역하였거나 해설하였다. 또한 유악기 교회를 중심으로 한 연대표이지만 무악기 교회 일부도 포함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약사(2005)」< http://kccs.pe.kr/rmw013.htm >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의 당위성(2007)」< http://kccs.pe.kr/zb41/view.php?id=recent&no=116 >등은 환원운동사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이해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다음에 우리가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주제는 바로 설교론이다. 여기서는 설교의 정의와 목적을 살펴보고, 조직신학적 관점에서의 설교론과 환원운동가들의 설교론, 그리고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선포된 설교 역사와 그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실천신학의 주요 장르인 설교론과 관련된 연구는 정말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루어 져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뿐 아니라 다른 교파교회는 물론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방교회 등 소위 기독교(基督敎)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종교에서는 모두 설교가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목에서 보듯이 본 연구의 핵심은 설교론 가운데에서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의 설교 전략”이기 때문에, 성서에 나타난 설교론, 환원운동가들의 설교론, 그리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설교론의 토대 위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시행되어 온 설교를 내용별로 분석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선포될 미래의 설교는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살펴볼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1930년 11월 8일 동석기 전도자에 의해 처음 전래 된 이후 오늘까지 어언 77주년이 되었다<김익진 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와 동석기 전도자」, 기준서 편, 『그리스도신학대학교 교수논문집(창간호)』,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출판부, 2002. p.72.>. 그러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선포된 설교가 아직도 설교론적 원론 외에는 한 번도 분석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가 분명하다. 문제는 연구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원 자료로 사용될 문서가 필요한데 77년간 선포된 설교가 문서로 기록되어 남아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1984년 이전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설교집의 공백기였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1966년 8월부터 발간된 「월간 참빛」에 기고된 지상 강단이 분산되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월간지라는 특성상 그 당시의 지상 강단은 시사성까지 띄고 있기 때문에 설교의 주제 분석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역시 1930년 이후 발간 이전까지인 약 36년 간은 자료가 없으므로 장애요소가 대단히 큰 편이다. 또한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월간 참빛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자료뿐이므로, 창간호 이후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 약 20여년 간의 자료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수집할 수가 없어서 참고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부분은 다른 사람의 연구 몫으로 남긴다.

단행본 형태의 설교집이 처음 출간 된 것은 1984년이었다. 원종호 전도자의 「나와 너 그리고 하나님」이 첫 작품이었다. 그 후 박경동 목사가 「천국에서 만납시다(1992)」를, 원종호 전도자가 「거라사의 광인(1993)」을, 정히건 전도자가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1993)」를 출간하였다. 그 후 10년이 넘도록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설교집 발간이 중단되었다가 2006년에 필자가 CBS방송 라디오 설교집인 「말씀의 샘터」를 출간하여 겨우 맥을 이었다.

한편 설교집 목록에서 제외시킨 책들이 몇 권 있다. 전계선 전도자의 유고집 「구원이야기」는 본 연구에서 제외 시켰다. 고인이 생전에 써 두었던 칼럼과 설교들을 그의 소천(召天) 이후 고인의 자제인 전신호 전도자가 유작들 가운데에서 [구원론]을 중심으로 특정 목적을 띤 글들을 모아 편집하였기 때문에 전계선 전도자의 생전 주요 설교주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계선 전도자의 설교 내용은 부산 중앙 그리스도의 교회 담임전도자 재직 시절에 선포한 것을 별도로 분석할 것이다. 박신배 교수의 설교집「선교와 설교」도 선교라는 메인 타이틀에서 보듯이 선교라는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편집한 글이라고 판단되어 본 연구에서 제외시켰으며, 전창선 목사의 설교집은 필자가 구하지 못했기에 제외되었음을 밝힌다.

본 주제는 솔직히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버거운 과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이 주제에 도전한 가장 큰 이유는 필자 자신의 이유에서였다. 그리스도의 교회 전도자로 일하기 시작한 1983년 이후 현재까지 24년을 설교해 온 나는, 과연 그 동안 무엇을 어떻게 말해 왔는지, 선포되는 말씀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알고 싶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무엇을 설교 할 것인지를 정리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러한 주제에 관심 있는 동역자들과 정보를 나누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생각하였다.
설교자는 평생을 설교한다. 그런데 알고 하는 설교와 모르고 하는 설교는 질과 양에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주제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미래적이다.

한편 서술했듯이 설교 연구를 위한 자료들은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필자가 설교론을 기술하면서 참고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김청수의 「명설교 큰은혜(2003)」는 성장하는 교회와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의 가장 큰 원인이 설교에 있다고 보고, 설교자들이 좀 더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현장감 있게 기술하였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와 사도들의 설교, 종교개혁자들의 설교를 개괄 분석한 후 설교의 정의와 목적, 그리고 구성을 제시하였다. 특히 좋은 설교와 나쁜 설교를 사례별로 구분 제시하여, 좋은 설교로 가는 길을 안내하려 하였다.
정인교는 논문「설교학」<정인교, 「설교학」, 한국복음주의 실천신학회 편, 『21세기 실천신학개론』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pp.87-138.>에서 설교의 신학적 근거와 정의, 기능과 설교자, 그리고 회중의 관계를 말하면서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짤막하고 간결하게 설교학을 기술하였다.
김상복 외 5인 공저의 「성화 중심 설교 교인들이 변한다(1998)」는 설교와 교회성장, 설교와 전도, 효과적인 설교 전달법, 설교자의 확실한 본문이해, 설교의 문제점, 설교와 청중 등의 관계를 각각 주제별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방선기는 「설교하기는 어려워도 설교준비는 즐겁다(1999)」에서 데니스 레인의 설교법을 ‘데니스 레인 식’ 설교라고 명명한 후 그 틀에 맞추어 설교하는 법을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였다.

2. 그리스도의 교회론
1) 그리스도의 교회
신약성경에 나타난 교회를 헬라어로는「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이 말은 “세상에서 빼어낸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잘 알겠지만 고대 민주정치를 실현했던 그리스 시민들은, 국가와 사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민의(民意)를 모으려고 아크로폴리스에 모였는데, 이 모임을 일컬어 에클레시아라고 불렀다. 그랬기에 교회의 어원인 에클레시아는 처음에는 종교용어가 아닌 정치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에클레시아는 건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켰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에클레시아를 거룩한 백성들뿐 아니라 다른 무리들까지 다양하게 지칭하여 사용하였다. 사도행전 19장 32절에는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했던 무리들도 에클레시아라고 불렀으며, 39절에는 그들을 재판하려고 구성된 모임도 에클레시아라고 불렀다. 요즈음 말로 하면 친(親)그리스도의 모임도 에클레시아요, 반(反)그리스도의 모임도 에클레시아였으며, 중립적 입장의 모임도 에클레시아였다. 그러므로 단순히 에클레시아, 즉 교회하면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규명이 되지 않았기에 초대교회 때는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 앞에 그 교회의 소유와 성격을 설명하는 주체를 부여하여 그 에클레시아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분명해야 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마태복음 16장 18절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신앙을 고백하자 예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울 것인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로마서 16장 16절에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 기록된 것을 보면 이미 당시 모든 교회의 명칭은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는 친(親)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존재하고, 반(反)그리스도의 공동체도 존재하며, 중립적 입장의 공동체도 과거처럼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초대 교회를 본받아 교회가 누구의 것이며, 어떤 교회인가를 확실히 할 수 있도록 교회의 소유와 성격을 나타내는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사셨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셨기에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부른다. 이런 원리로 볼 때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여야 하고,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 직분, 신앙의 목표나 인간 사상이 교회의 소유주체일 수는 없다. 그런 것들은 교회의 발전에 필요한 구성요소일지는 몰라도 교회의 주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래부터 교회의 올바른 명칭은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만 나타나 있지 않고 다섯 가지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첫 째는「그리스도의 교회」가 기록되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는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였고, 로마서 16장 16절에는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 기록하여 당시 초대교회가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는「하나님의 교회」가 기록되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고전10:32, 11:22, 15:9, 고후1:1, 갈1:13, 살전2:14)에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라고 기록하여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름도 여러 차례 사용되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세 번째는「주님의 교회」가 기록되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는 “···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주님의)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는 원어에는 기록되었으나 한글성경에는 번역이 되지 않았다.
네 번째는「그 교회」가 기록되었다. 사도행전 5장 11절에는 “온 (그)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했고, 또한 에베소서 1장 23절에는 “(그)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도 정관사 “그”가 한글성경에서는 생략되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장자들의 총회와 교회」가 기록되었다. 히브리서 12장 23절에는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라고 기록했다.
그러면 이처럼 다섯 가지나 되는 교회 이름가운데 왜 유독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다. 주님의 교회와, 장자들의 총회와 그 교회는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죄인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설계하셨으나, 그리스도는 세상에 직접 오셔서 고난 당하여 인간 구원을 성취하여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기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이 중심 된 공동체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사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기에 그리스도가 머리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그저 또 하나의 사회공동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명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사명은 예배, 선교, 봉사, 교육, 그리고 교제인데, 이것을 흔히 교회의 5대 사명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사명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강제적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분부하셨기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지켜야 한다. 초대교회는 이것을 잘 지켰다. 그런데 15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근대에 들어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새로운 사명이 하나 더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분열된 교회의 성서적이고 비교파적인 일치운동이다.
유럽에서 강력하게 전개되어 그 파장이 아메리카 대륙까지 미쳤던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 천주교)의 부패에 대한 항거였다. 그 결과 로마카톨릭교회는 개신교를 “항거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인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불렀다. 개혁자들은 교회와 사회가 올바른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항거했다. 개혁자들이 추구하던 종교개혁의 주요 쟁점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인간의 구원방법과 교회의 조직 등, 두 가지만 예로 들겠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외에도, 그들이 주장하는 일곱 가지의 성사(聖事)를 행해야만 비로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그러다가 로마교회가 주장하던 구원론의 성경적 오류와 부패를 드러낸 결정적인 사건은 면죄부였다. 로마교회는 “죄를 지은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후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헌금을 하면 교회는 그 돈을 받고 죄를 용서한다”는 면죄부를 발부하였다. 그러면 조상의 영혼은 그 순간 천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런 부당한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자 양심적이고 신앙적인 사람들이 부패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섰는데 이들을 일컬어 종교개혁자라고 부른다.
개혁자들이 제기한 또 다른 중요 쟁점이 바로 교회의 조직이었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자기들 스스로 교황제도를 만들어 그를 교회와 세상의 최고 지도자로 세웠다. 성경적 근거로 제시한 것은 마태복음 16장 19절에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다른 사도들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했을 뿐 아니라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이 한 번도 교황권을 알거나 가르치거나 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8:18). 한 때 중세의 교황에게 얼마나 강력한 권세가 있었던지 세상의 왕들도 교황의 윤허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속적 권력과 같은 강력한 힘을 부여한 적이 없다. 성경과 교회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예수님은 자기 자신부터 가장 낮고 겸손한 길을 걸으셨으며, 베드로 역시 무소불위의 강력한 교권을 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3절에서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가르쳤다. 결국 교황제도는 후세 사람들이 세상 권력을 본받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교황은 종교재판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반대자들을 처형하였다. 교황의 부정과 부패는 세계사에서 만천하에 밝혀진 바와 같다. 얼마 전에 교황인 요한 바오로2세가 역사 앞에 과거를 공식 사과한 것도 이러한 배경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자들의 교회개혁 및 성서적 교회회복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신교회에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것은 가속화되는 교회의 분열이다.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시도한 루터의 사후에 그의 추종자들은 교단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루터교회이다. 또 다른 개혁자 프랑스의 칼뱅이나 스위스의 쯔빙글리는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교단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장로교회이다. 영국의 개혁자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회개운동을 통하여 동조자들을 규합하여 교단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감리교회이다. 영국에서 형성된 또 다른 교파인 영국국교회라고 불리는 성공회는 16세기의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이혼 문제가 계기가 되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갈리어 영국의 국왕을 교회의 대표로 하여 이뤄진 교파이다. 이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파를 만들었는데 오늘날 세계에 산재한 개신교의 기독교의 교파는 파악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교인수를 자랑하는 장로교의 교파수가 80개를 넘는다는 공식보고가 있다. 이 수는 종교를 관장하는 국가의 공식기관에 등록되어 있는 것을 기준 하였고, 등록되지 않은 수를 합하면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 교파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특정지역과 특정사상과 특정환경에 영향을 받아 특정교리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것을 정리하여 그들만의 헌법이나 장전을 만들어서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요즘에는 교권이나 주도권 때문에 교단과 교회가 갈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해에 따라 반목하는 경우가 발생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러기에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처음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배, 선교, 봉사, 교육, 친교의 다섯 가지 사명 이외에 종교개혁 이후 근대에 들어서 또 하나의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일치 운동이다. 세계의 모든 교회는 처음처럼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는 고난 당하시기 전의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 음성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교회와 성도가 하나되기를 원하신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의 몸인 교회가 아무 사심 없이 성경적 교회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3) 그리스도의 교회와 환원운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배, 선교, 봉사, 교육, 교제의 5대 사명 외에 교회의 역사적 산물인 분열된 교회가 일치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교회일치는 우리들만의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소원이기도 하다. 고린도전서 1장을 읽어보면 고린도교회가 특정인을 중심으로 분열되었을 때, 성령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그들을 강하게 책망하였다. 생각해 보라. 동일한 한 하나님을 섬기면서 서로 분열되어 반목한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같은 부모 안에 있는 친자녀들이 서로 분쟁하여 자기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가장 마음 아파하실 분은 당연히 아버지와 어머니시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모든 자녀들이 서로 하나되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라신다. 이처럼 교회일치가 중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교회가 오직 하나였고, 성경에도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오직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선교학적 입장에서도 하나의 교회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교회에 대한 시각에 혼란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되기 위하여 무조건 일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초대교회 당시부터 이단자들이 교회를 위협한 역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단호하였다. 갈라디아서서 1장 8절에는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하심으로서 이단자에 대하여 강하게 대처하라고 강조했다.
교회일치를 위하여 세계의 교회가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운동이 에큐메니칼 운동이다. 그러나 현실을 말씀드린다면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일치보다는 각 교파의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세계 정세의 공동관심사에 대한 협의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 편이 타당하다. 아직도 그 당시의 교파들은 여전히 존재할 뿐 아니라 오히려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욱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교회를 하나로 일치시키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교회를 이룰 수 있는가? 15세기 이후 종교개혁의 당위성으로 인하여 시작은 좋았으나 교회분열이라는 비성서적인 결과를 초래하자 이를 걱정하여 하나로 일치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 양심적이고 경건한 신앙인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정황이 상정되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현실적이고 신앙적인 방법이 도출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환원운동이다. 환원운동이란 교회역사상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던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범을 찾아서 분열된 교회가 그 방법으로 하나되자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원형을 찾아가서 실천하면 될 것이라는 점과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형을 회복하자는 의미에서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이라고 불렀다. 환원운동을 설명 드리면 교파를 없애고 하나의 교회만을 추구하고, 신구약 성경 66권 외에는 다른 모든 신앙의 규범을 버리고 오직 성경만을 신앙의 규범으로 삼자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을 환원운동가고 불렀다. 환원운동가들은 이 일을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론을 연구했는데 여덟 가지 운동의 원칙을 정했다. 여기서 교회의 역사를 전부 말씀드릴 수 없기에 환원운동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말하려 한다.
첫 번째, 책은 성경만(No book but the Bible): 대부분의 이단자들은 66권 성경 외에 다른 책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들 조직의 창시자의 어록이거나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그들의 경전이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됨으로서 완성되었기에 다른 성경은 없다. 오직 신구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두 번째, 신조는 그리스도만(No creed but Christ): 교회는 교회 역사를 통하여 계속하여 특정한 이론과 사상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 것을 신앙고백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취급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견들이 도출되었고 반목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기에 환원운동가들은 “오직 성경 외에는 그 어떤 인위적인 신앙규범도 만들지 말자”고 약속하였다.
세 번째, 명칭은 하나님의 것으로만(No name but the Divine): 많은 신앙용어들이 교회에 등장하여 그것이 마치 신앙인 것처럼 강조된다. 교회의 명칭이나 교회의 조직, 그리고 교리상의 이유로 기타 성경 외의 명칭을 가지지만, 명칭은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만 사용하자는 약속이다.
네 번째, 주장은 복음만(No plea but the Gospel):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강조해야 한다. 교회 분열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특정사상과 주장이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의 주장은 오직 복음뿐이다.
다섯 번째, 일치의 기초는 성경으로만(No basic of unity but the scriptural):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다양한 사회에서 한 소리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일치의 기준이 필요한데 그 것을 성경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여섯 번째, 본질에는 일치를(In essential Unity): 교회역사에는 많이 이단자들이 등장하여 교회를 혼란하게 했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뚜렷하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데 그것을 본질이라고 정의했다. 본질의 중심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의견에는 자유를(To opinions Liberty): 말씀드렸듯이 사회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만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유에 맡겨서 인위적인 교리에 얽매이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여덟 번째, 매사에는 사랑으로(In all things Charity):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주장이 주요하듯이 남의 주장도 중요함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매사를 대하여야 한다.
이처럼 환원운동은 비교파적인 교회일치운동이고, 오직 성서로 돌아가자는 성경회복운동이다.

3. 설교론
1) 설교의 정의
마태복음 4장 23절에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설교(preaching), 가르침(teaching), 치유(healing)”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있음을 보게되는 데, 이는 설교가 교회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공관복음의 다른 기록에서도 이러한 사상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막 1:14-15, 눅 4:14-19).
환원사상가들은 선교론과 설교를 연계하면서 설교의 중심을 성경에서 찾자고 주장하였다. 알렉산더 켐벨(Allexander Campbell)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복음 선포에서 찾아야 한다”<기준서, 「신약교회론」, 서울, 그리스도신학대학 출판부, 1996. p.70.>고 강조하였고, 발톤 스톤(Balton Stone)도 “교회의 존재 이유는 복음 선포에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위임 명령으로서 피할 수 없는 절대행위라고 하였다(마 28:19, 막 16:15-16, 눅 24:47, 요 20:21-23, 행 1:8)”.
실제로 기독교, 로마 카톨릭 교회, 동방교회 등, 성서를 경전으로 사용하는 모든 종교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수단인 설교는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조건으로 이해하여 왔다.

이론적으로 설교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자.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설교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설교를 지칭하는 용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사용되어지는 용어인 케리그마(Kerygma)는 ‘복음’으로서 권고와 위로의 의미가 있다. 호밀리아(Homilia)는 “서로 서로 이야기하다”로서 오늘날 프리칭(preaching)이 여기서 나왔다. 세르모(sermo)는 주제설교로, 콘치오(contio)는 “성경 본문을 바탕으로 공중예배에서 행해지는 설교” 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용어가 다양하듯이 설교의 정의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사람 따라, 견지하는 신학 따라 다양하다. 이 말은 설교에 대한 정의는 기독교 역사에 따라 그 어떤 정의도 영원하고 단일화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이 주장한 설교의 정의를 살펴보면 설교의 정의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자유주의 진영의 대표적인 입장은 니버갈인데 그는 “설교의 과제란 회중의 양육과 삶의 영위를 조력하는 것”<정인교, 「설교학」, 한국복음주의 실천신학회 편, 『21세기 실천신학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p.102. 재인용.> 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유진영의 설교이해와 정반대 되는 설교개념은 칼 바르트(Karl Barth)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설교개념은 이중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1923년과 1933년 본 대학에서 행한 세미나에서 다음가 같이 정의하였다. “첫째 설교란 설교를 위탁받은 거룩한 교회에 의해 부름 받은 사람을 통해 성경본문을 현대인에게 해석해 주는 자유로운 연설 가운데 행해지는 봉사 속에서 하나님 스스로에 의해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둘째, 설교란 교회에 명령되어진, 이 일로 부름 받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 말씀 자체에 다음과 같이 봉사하도록 시도하는 것이다. 성경본문을 현대인에게 그들을 향한 것으로 자유로운 연설 가운데 그들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한 선포로 해석하는 것이다.”< Ibid., p.105. 재인용.> 이 설교의 정의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설교가 교회에 명령되어진 시도라는 점이다. 또한 뢰슬러(Dietrich Rössler)는 “설교란 예배라는 맥락에서 기독교적 전승(성경)을 현대인을 위해 해석해 주는 하나의 기독교적 연설로 신앙을 강화시켜 주고 성도들에게 (기도교적) 삶을 안내해 주는 목적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한편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곧 복음이며,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이 기록된 말씀인 성경이다. 그리고 설교는 성경이라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을 거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훗날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 등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던 칼 바르트의 주장도 루터의 주장이 바탕이 되었다. 이는 설교가 교회에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큰 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등 하나님 말씀의 반열에 설교를 나란히 세움으로서 설교의 위치를 그만큼 높게 보았다.
칼빈(John Calvin)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 그리스도의 통치수단, 효력 있는 은혜의 수단, 양면적인 효력을 발생시키는 권능, 성령의 능력의 현현으로서의 수단” 등 여섯 가지로 이해하였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말씀에 의해 일어나, 말씀의 선포에 의해 성취되어 왔다. 개혁자들은 말씀에 사로잡혀 그들의 소명을 이루어 갔다. 진실로 말씀의 선포가 없는 종교개혁, 열정과 확신 가운데 말씀이 설교되어 지지 않는 종교개혁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이 가능했던 그 중심 이유는 그들이 인식한 설교에 대한 신학이었다.
환원사상가들도 설교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였다. 그들의 주장은 주로 성서의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환원운동은 종교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16세기에 본격화된 종교개혁의 시작은 마치 방향키 없는 배와 같았다. 출발선은 있었으나 정해 진 목표를 정하고 나간 것이 아니었기에 사방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 후 약 1세기의 시간이 흐르며 종교개혁이 정착되자 그 과정에 개혁자들의 눈에는 개혁의 주제들과 현상과정에서 하나 둘씩 모순점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역으로 종교개혁의 역(反逆)개혁이 요구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형식적인 신앙에서 돌이켜 내실 있는 신앙을 회복하자는 경건 회복 운동, 분열된 교회가 돌이켜 교회일치를 회복하자는 운동과 이성주의에서 탈피하여 성서의 권위를 회복하자는 성서회복운동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른바 대각성 운동이었다. 교회분열은 개혁자들의 주장과 사상을 중심으로 교파가 형성되고 인간의 이성이 중시되다 보니 성서의 위치가 뒤로 쳐졌기 때문에 생긴 모순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환원운동의 목적과 방법론은 설교에 대한 시각과 방법론에서도 일치하였는데, 그것이 성서 중심 운동이었다. 그래서 원(原)교회로부터 변형, 변질된 교회들을 향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고 호소하였던 환원 운동가들은 성경만을 신앙의 유일한 표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환원 운동의 중심 표어가 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표어는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기준서 교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성경이 말하는 곳에서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하자”는 표어는 흔히 ‘성경의 침묵성’이라는 신학 용어로 압축한다. 이 표어는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 1763-1854) 이 1809년 8월 17일 그리스도인의 독립 선언문으로 불려지는 ‘선언과 제언문’을 발표할 때 한 말이다. 이 한마디가 환원 운동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환원 운동의 사상적 바탕은 성경의 권위만을 믿고 따르며, 그 외에 인위적인 문서(교리, 헌법, 장정 등)와 신앙고백들은 철저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한편 에베소서 4장 11절 이하 16절에는 설교자를 위시하여 가르치는 일꾼들을 교회에 세운 이유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기록한 4장 11, 12절은 일꾼들을 세운 명백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하나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일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을 교육학적인 현대의 용어로 바꾼다면 영적인 지·정·의를 충족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회중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섬기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를 확장시켜 나가도록 돕는 일을 맡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필자의 시각으로 설교의 정의한다면 ‘고대에 보내어 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에 의해 세움 받은 사람들이 해석하여 전해 줌으로 회중들로 하여금 지·정·의의 전인적인 삶을 창조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2) 설교의 목적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목적이 있듯이 설교에도 중요한 목적이 있다. 설교학에서 설교의 목적이란 메시지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설교하는 사람의 설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생애와 교훈과 수난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선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교훈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를 말한다. 그러나 설교의 정의가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달라지듯이 설교의 목적도 그에 따라 다르게 설명되어 진다.
설교의 목적에 대하여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토저(A.W. Tozer)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레디 데이비스(H. Grady Davis)는 복음선포, 가르침, 치유가 설교의 일반적인 목적이라고 하였으며, 헤롤드 브라리슨(Harold T. Brason)과 제임스 타이러(James C. Tarlor)은 “설교는 다양성을 가진 성도들을 위해 복음 전도, 성장, 하나님과의 관계, 치유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의 목적을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균형 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
그러면 설교의 다양한 목적들은 어떤 것들인가? 김청수는 이에 대하여 설교의 목적을 삼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제안을 던져 주었다. 그것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 몸과 마음과 생활의 치유, 구원과 확신으로 인한 평안, 믿음으로 말미암은 승리의 영광,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고난을 통한 축복, 감사, 성공적인 삶, 행복한 가정, 자녀들의 장래, 나라와 민족의 번영,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생, 하나님을 위한 헌신, 전도, 충성, 가난과 질병과 걱정과 근심과 모든 죄에서의 자유, 기타”<김청수, 「명설교 큰은혜」, 도서출판 누가, 2003, pp.69-70.> 등 일상 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정인교는 그가 기술한 “설교학”에서 “설교의 제(諸)기능”<정인교, 「설교학」, 한국복음주의 실천신학회 편, 『21세기 실천신학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pp.112-115.> 이라는 분류를 통해 “연결기능, 목회적 기능, 예언적 기능, 교육적 기능” 등 설교의 목적을 네 가지로 설명하였다. 연결기능이란 과거에 쓰여진 성경을 현재에 맞추어 연결해 주는 기능이고, 목회적 기능이란 복음적 메시지와 내용으로 인하여 삶의 패러다임이 결정적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기능이다. 또한 예언적 기능이란 사회의 부조리와 왜곡된 구조를 고발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선포되어 시대를 진단하는 기능이고, 마지막 교육적 기능이란 회중들로 하여금 지적인 성숙을 통해 윤리적 기능을 감당케 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러한 주장들과 생각들을 종합해 볼 때 ‘설교는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을 주는 목적을 갖는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설교의 올바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기준서 교수는 “성경적 설교(Biblical Sermon)”에서 성서적인 설교자의 신학적 입장과 자세를 아래와 같이 권면하였다.

성경적 설교는 설교자의 사상이나 견해의 전달이 되어서는 아니되며,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의미만을 그대로 전달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성경 본문에서 출발하여 본문으로 돌아오는 본문 중심의 강해 설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을 떠난 설교는 성경적인 설교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말씀의 권위와 영감성을 저하시키게 된다. 따라서 제목이나 주제 설정 그에 따른 내용 전개에 있어서 언제나 본문과 그 본문에 연결된 성경 구절만을 선택해야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성경 본문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성경적인 설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교자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신학적인 전제가 복음주의 입장에 서 있어야만 한다. 즉 설교의 내용과 방법이 본문의 메시지가 의도하는 바와 일치해야만 된다.

이 말을 요약하면 설교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성경 본문의 강해 설교가 유익하며, 신학적 입장은 복음주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4.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 내용 분석
앞에서 서술했지만 1930년 이후 현재까지 77년 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전도자들은 수많은 설교를 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해 온 설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내용 별로 분석한 연구 결과는 아직 하나도 없다. 사실 그러한 작업을 시도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문서나 녹음 등으로 남겨진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객관적인 연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지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러한 작업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해 둔 사람은 아직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사실이다.
설교 내용의 분석을 위해서 가장 객관적인 자료는 역시 설교집과 녹음 자료이다. 그런데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에 의하여 쓰여진 설교집이 출간 된 것은 아쉽게도 모두가 최근의 일이다. 필자가 추적한 결과로는 1984년에 원종호 전도자가 「나와 너 그리고 하나님」을 처음 출간한 이후 박경동 목사가 「천국에서 만납시다(1992)」를, 이듬해에 원종호 전도자가 「거라사의 광인(1993)」을, 정히건 전도자가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를 출간하였고, 2006년에 필자가 CBS 방송 설교집인 졸고 「말씀의 샘터」를 출간하여 겨우 맥을 이었다. 필자의 설교집 이전 10년 동안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독자들이 모두 읽을 수 있는 설교집이 공식적으로 출판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위에 열거한 자료만을 중심으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 내용을 분석하는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다. 77년의 역사와 그 동안 설교한 수많은 사람들의 설교를 비교해 볼 때 불과 다섯 권의 설교집으로 설교 내용을 분석한다는 것은 통계학 상으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수치이지만,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대대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위한 시발점이 된다면 그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1) 설교 내용의 주제 분류
설교는 교인들의 생각과 생활에 큰 방향을 제시하는 만큼 교회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본 연구는 교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또한 설교가 교회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펴보고자 함에 있다.
분석을 위하여 필자는 설교의 내용 유형을 아래와 같이 크게 일곱 가지로 임의로 나누어 분류하였다. 그러나 각 책별의 설교 내용 분류는 필자의 신학적·성서적인 주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분류의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둔다. 또한 각 내용별 설교를 분류할 때 설교집의 내용이 주일이나 수요일, 기타 현장에서의 설교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또한 설교집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주제도 다른 발표물에서는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출간한 경우도 있으므로 설교집의 선포 내용이 전적으로 설교자의 성향이라고 말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럽다.

(1) 일반교리: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신론(하나님,예수,성령), 인간론, 성서론 등.
(2) 그리스도의 교회 특수교리: 환원운동, 성례전, 교회론 등.
(3) 축복의 길: 건강, 재물, 은혜, 치병, 간증 등.
(4) 사명·은사: 신유, 방언, 예언, 통역, 섬김, 말씀, 사명 등.
(5) 개인신앙생활: 예배, 헌금, 교회생활, 가정생활, 기도, 전도(선교), 찬송, 성결, 회개, 감사, 사명 등.
(6) 사회신앙생활: 사회정의, 사회봉사, 시사(時事) 등.
(7) 성서강해: 66권 성서 가운데 특정 성경을 강해한 설교.

2) 설교집 소개와 내용분석

[표 1] 설교집 내용 분석

(1) 원종호 전도자의 「나 너 그리고 하나님」은 1984년도에 출간하였는데, 총 27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장 먼저 출간 된 설교집이다.
설교 내용별 비율은 “개인신앙(51.9)-일반교리(25.9)-축복(7.4)-은사사명(7.4) · 사회신앙(7.4)-환원운동(0)”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설교한 내용은 51.9%인 개인 신앙이었고 가장 적은 것은 환원운동에 관한 내용으로서 0%였다.

(2) 박경동 목사의 「천국에서 만납시다」는 1992년도에 출간하였는데, 총 97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설교 내용별 비율은 “개인신앙(37.0)-일반교리(26.8)-사회신앙(15.5)-축복(12.4)-은사사명(7.3)-환원운동(1.0)”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설교한 내용은 37.0%인 개인 신앙이었고 가장 적은 것은 환원운동에 관한 내용은 1.0%였다.

(3) 원종호 전도자의 「거라사의 광인」은 1993년도에 출간하였는데, 원종호 전도자의 두 번째 설교집이다. 총 40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설교 내용별 비율은 “개인신앙(45.0)-축복(25.0)-사회신앙(15.0)-은사사명(12.5)-일반교리(2.5)-환원운동(0)”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설교한 내용은 45.0%인 개인 신앙이었고 가장 적은 것은 환원운동에 관한 내용으로서 0%였다.

(4) 정히건 전도자의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는 1992년도에 출간하였는데, 총 81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이 설교집의 특이한 점은 1982년 1월 23일부터 1982년 12월 26일 사이에 설교했다고 날짜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았다는 점이다.
설교 내용별 비율은 “개인신앙(44.4)-일반교리(22.2)-환원운동(16.1)-은사사명(7.4) · 사회신앙(7.4)-축복(2.5)”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설교한 내용은 44.4%인 개인 신앙이었고 가장 적은 것은 축복에 관한 내용으로서 2.5%였다.

(5) 임학균 전도자의 「말씀의 샘터」는 2006년도에 출간되었는데, 총 90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이 설교집은 CBS방송에서 설교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교회에서 주일 낮에 설교한 내용을 재정리하여 방송하였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누었는데, 제1부 신앙 칼럼, 제2부 말씀의 샘터(일반 설교모음), 제3부 룻 이야기(룻기 강해), 제4부 그리스도의 교회(구원론과 교회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교 내용별 비율은 “개인신앙(29.0)-사회신앙(21.1)-환원운동(18.9)-성서강해(11.1)
-일반교리(10.0)-은사사명(6.6)-축복(3.3)”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설교한 내용은 29.0%인 개인 신앙이었고 가장 적은 것은 축복에 관한 내용으로서 3.3%였다.

3) 전체 비교 분석
전체적으로 공동 1위는 개인 신앙에 관한 설교였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아무래도 설교가 하나님과 인간 개개인의 만남을 주선하고, 하나님과 인간 실존의 문제가 직접 연결되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문제가 개인설교에 가장 많은 비율을 만든 원인으로 분석된다. 개인신앙 다음으로 두 번째를 차지하는 내용은 일반교리와 축복, 그리고 사회신앙이었다. 아마도 일반교리의 강세 역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문제가 설교자에게서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적게 설교된 내용은 환원운동과 축복설교였다. 이 부분은 예상을 벗어나는 대목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만의 특수 현상인지 전체 한국교회의 현상인지는 좀 더 연구해 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가 기복 신앙으로 인하여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축복 설교의 비율이 이렇게 적은 것은 심층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는 우선 타 교파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내용도 정확하게 분석해 본 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환원운동에 대한 설교가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는 부분도 예상 밖이다. 설교집이기 때문에 특수 교리를 제외했기 때문이지, 아니면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설교자의 성향이 다르듯이 설교 내용의 비율 순위가 2위에서 6위까지 각각 다르다는 것과 점유 비율도 각각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설교의 내용은 설교자의 성향에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5. 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 주제 분석
설교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하나의 지역교회가 움직이고 방향을 잡는 데 있어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보다 더 영향력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설교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그 교회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필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설교 내용유형을 살펴보고 싶었다. 1951년 2월 4일에 창립한 부산중앙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56년의 역사를 만들고 이제 환갑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 대부분이 한국 전쟁 이후에 세워진 점에서 중앙 교회의 설교 내용을 분류해 내는 작업은 나름대로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설교원고였지만 그것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생각해 낸 방법이 그 동안 보관된 교회의 주보와 예배 일지에 기록된 설교의 본문과 제목을 분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부산 중앙 교회에서 선포된 설교의 원고를 직접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윤곽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크게 10년 단위로 나누고, 설교자 별로 나누어서 내용의 흐름을 살필 것이다.

1) 1950년대의 설교 주제
[표2]의 내용과 같이 1950년대의 전체 설교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한 주제의 순위는 “개인신앙(40)-일반교리(26)-은사사명(14)-축복설교(14)-환원운동(6)-사회신앙(0)”의 순이었다.
1950년대의 설교자는 이흥식, 박선흠, 박경동, 김광수 전도자 등이었다. 그러나 보관된 예배일지는 1957-58년의 것만 남아 있어서 김광수 전도자 외에 다른 전도자들의 설교성향은 분석할 수 없었다.

[표2] 1950년대의 설교 주제

2) 1960년대의 설교 주제

[표3] 1960년대의 설교 주제

[표3]의 내용과 같이 1964년에 전체 설교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한 주제의 순위는 “일반교리(34)-개인신앙(33)-축복설교(15)-은사사명(12)-환원운동(4)-사회신앙(2)”의 순이었고, 1966년도에는 “개인신앙(42)-일반교리(29)-축복설교(17)-은사사명(4)-사회신앙(2)-환원운동(0)”의 순이었다.
1960년대는 1950년대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큰 변화는 없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설교한 내용은 개인신앙(37)-일반교리(32)-축복설교(16)-은사사명(8)-사회신앙(5)-환원운동(0)이었다.

3) 1970년대의 설교 주제
[표4]의 내용과 같이 1970년대에 전체 설교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한 주제는 “개인신앙(47.3)-일반교리(28.0)-축복설교(8.9)-은사사명(8.2)-환원운동(5.5)-사회신앙(2.1)”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1977년에는 개인신앙에 대한 설교가 57%에 이르러 개인신앙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표4] 1970년대의 설교 주제

4) 1980년대의 설교 주제

[표5] 1980년대의 설교 주제

[표5]의 내용과 같이 1980년대에 전체 설교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한 주제는 여전히 “개인신앙(52.2)-일반교리(27.0)-환원운동(9.7)-축복설교(7.0)-은사사명(4.0)-사회신앙(0.1)”의 순으로 나타났다. 개인신앙에 대한 설교는 여전히 강조되었으며 가장 적은 주제는 사회신앙이었다.
1980년대 설교가 1970년대 설교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변화된 내용은 축복설교가 줄어들고 대신 환원운동에 대한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5) 1990년대의 설교 주제
[표6]의 내용과 같이 1990년대에 전체 설교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한 주제는 “개인신앙(50.8)-일반교리(31.4)-환원운동(7.6)-축복설교(4.8)-은사사명(3.4)-사회신앙(2.0)”의 순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것은 역시 개인신앙이었고 가장 적은 주제는 사회신앙이었다. 1980년대에 비하여 비율의 차이에만 약간 상이할 뿐 순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표6] 1990년대의 설교 주제

(6) 전체 분석
50년간 선포된 부산중앙 교회의 설교 내용은 개인신앙과 일반교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90년대에서 28%와 27.2%, 31.4%로 일반교리의 설교가 치중되었고, 개인신앙에서는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 각각 47.3%, 52.2%, 50.8%로 근래에 접어들면서 설교의 빈도가 더욱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사회 안정과 개개인의 경제력 향상으로 인하여 소홀하기 쉬운 개인신앙의 강조가 설교에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와중에 축복설교가 줄어들고 환원운동에 대한 비율이 점차 높아 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율도 전체 비율의 10% 미만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설교가 생각 밖으로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전도자들의 성향도 설교의 비율에 영향이 있었다. 9대 김관평 전도자, 12대 전계선 전도자 등은 그리스도의 교회 교리에 큰 비중을 둔 설교를 하였다.
부산중앙 교회의 경우 선포된 설교에서 사회신앙의 성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사회신앙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비(非)사회적인 구조는 아니었다. [표7]을 살펴보면 선포된 설교의 내용과는 달리 부산중앙 교회의 지출된 재정구조를 살펴보면 복지와 운영비 그리고 선교비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다른 항목보다 높아서 개인신앙이 영적 사회화로 연결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인 사회신앙은 소극적인 반면, 선교 및 구제 등 비정치적인 분야에서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운영에서 교회의 성향을 볼 수 도 있는데 특히 재정 구조가 빈약했던 1960년대에는 교역자 사례비와 운영비가 거의 90% 정도를 차지했으나 1970년대 이후는 자체 운영비는 감소하고 선교비가 대폭 상승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일반교리의 설교 내용이 선교와 구제 등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임학균, 「한국소형교회의 재정구조분석」, 제주대학교대학원, 2000, p.44.>. 단 1989년의 경우 교역자사례비의 지출 비율이 높은 이유는 두 사람의 교역자에게 사례비를 지급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1999년 현재 70부를 배포하여 35부를 회수하여 50%의 회수율을 보인 설문조사 결과, 기존 교인들의 신앙적 의식구조도 교역자들의 신앙 성향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7] 부산중앙 교회의 연대별 지출비율표

6.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 전략을 위한 제언
1)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는 실천신학적인 설교학의 소양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의 목적과 방법을 잘 숙지하여 설교를 듣는 회중들이 영적이고 인간실존적인 문제를 해결 받도록 도와야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결 기능, 목회적 기능, 예언적 기능, 교육적 기능” 등 설교의 제 기능을 잘 이해하여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의 신학적 관점은 선포하는 설교에 지대한 영향을 주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는 성서중심의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설교해야 한다.

3)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체성을 살리는 말씀을 적절히 선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환원원동의 목적과 과정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동참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신약교회로의 교회일치 운동과 성서회복 운동을 이루어야 한다.

4)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는 비전(vision)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회중들에게 좋은 비전을 제시하고 계획성 있고 일관된 말씀을 선포할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해마다 1년 단위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맞는 설교전략을 세워서 실천하는 것이 유익하다.

5)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는 수시로 자신의 설교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설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설교의 내용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자신의 설교가 성서와 교회와 역사에 잘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6) 그리스도의 교회의 설교자는 회중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 지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회중들의 상한 영혼을 치유하고 성화 시켜 생명수의 강으로 인도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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