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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04 14:40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산증인 김정만 목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663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5849 [529]
   http://kccs.info/with_home/bbs/board.php?bo_table=person_in&wr_id=90 [422]

<김정만 목사는 새마을운동보다 훨씬 전에 농촌 근대화 운동을 시작해 농가 소득을 높이는 사업도 전개했다. 신동연 기자 >

“세상이 모든 것 빼앗아가도 하나님은 그 이상을 주십니다”
영혼의 리더38 ‘그리스도의 교회’원로 김정만 목사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 중앙선데이, 제151호 | 20100131 입력

하루는 어떤 사람이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고쳐달라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다. 제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예수는 그 아들을 치유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 17:20)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주 작은 믿음, ‘코딱지만 한’ 믿음이 있어도 정말 말 한마디로 산을 옮길 수 있을까. 예수의 언어였던 아람어 등 과장법을 즐겨 사용하는 셈족어의 특징을 감안해 이 말씀을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합리적인 해석을 하지 않고 성경 말씀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산을 옮기지 못하는 게 자신들의 믿음 부족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원로 목회자인 김정만(87·사진) 목사가 바로 그런 신앙의 지도자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산증인

종교를 떠나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가 어떤 신앙의 대상을 믿는다고 자신한다. 지극히 성실하게 믿음의 여정을 걸어온 김정만 목사의 삶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최고령 원로 목회자인 김 목사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역사의 산증인이다. 충북 중원이 고향인 김 목사는 12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1993년 서울 상계동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은퇴했다. 믿음이 소문나 김 목사를 다른 교회에서 영입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

김 목사는 평생 3남1녀 자식들이 자라날 때 학비도 차비도 제대로 대주지 못했다. 오직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식구가 이부자리가 없어 잠자기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먹을 게 없어 애들을 고아원에 맡긴 적도 있었다. 쌀이건 보리건 들어오면 신도들에게 나눠줬다. 개인적으로 살 궁리를 하지 않고 새끼 돼지를 나눠주며 이웃이 살 방편을 마련했다. 김 목사는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고난에 찬 길이지만 예수와 함께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인지 자식들이 모두 잘 자라줬다.

김 목사가 속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19세기 초 미국의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에서 출발했다. 환원운동은 “예수는 오직 하나의 교회를 세웠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순수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운동이다. 환원운동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더욱 철저히 실천하려는 운동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침례 세례를 행한다는 점에서는 침례교와 같고 매주 성찬식을 한다는 점에서는 가톨릭·정교회·성공회와 같다.

우리나라에서 환원 운동은 1927년 시작됐다. 선교사가 아니라 독자적인 자각에서 시작됐다. 성락소·동석기·강문석·최상현 목사 등이 우리나라 환원운동의 초창기 주역들이다. 김 목사는 믿음과 성경 외에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는다. 김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는 치유의 은사나 방언의 은사 등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신기한’ 현상도 있었다. 미래가 자꾸 보여 자만할까 봐 이를 거둬달라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그런 기적적 현상도 내세우기를 꺼린다. 그는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기 위해 세상이 주는 상은 거부했다. 역사 기록을 위해 김 목사를 설득한 끝에 경기도 남양주 덕소에 있는 자택에서 어렵게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지성이면 하늘도 사람도 감동한다. 김정만 목사는 60년 전도 생활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끌었다.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김 목사의 신앙에 대해 들었다.>

우상 숭배 잘못 해방 후 깨달아

-일본 순사를 때려눕힌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은 다음이었다면 달랐겠죠. 괴산 장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노인이 목화를 공출하는데 일본 순사가 품질이 나쁜 것을 내놓는다며 노인의 뺨을 쳤습니다. 순사를 두들겨 패고 산에 있는 동굴로 피해 있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언제부터 예수를 믿으셨습니까.

“8·15 해방 전에는 교회에 왔다갔다만 했지 제대로 믿지는 못했습니다. 신앙의 스승 두 분이 있습니다. 정찬성 목사님은 ‘예수를 그렇게 믿는 것은 안 된다’는 걸 일깨워주셨죠. 정 목사님은 감리교회를 다니셨는데 신사참배 거부 등을 문제 삼아 일본 사람들이 체포하려 해 만주로 피신해 2~3년 있으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로마서 16장 16절에서 교회의 이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교회’이어야 함을 깨달으셨습니다. 이런 내용이죠.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또 다른 분은 김은석 목사님이십니다. 황해도 출신인 김 목사님은 일본 탄광에서 노동자들에게 전도하다 귀국하셨습니다. ‘300만 기도 운동’을 전개하시기도 했습니다. 김은석 목사님은 일제하 한국 교회의 우상숭배 문제를 부흥회에서 제기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성서대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일본 신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배신한 것은 개인도 문제지만 그렇게 만든 교회는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김은석 목사님을 초청한 사람들이 당황해 강단에서 내려오라고 하기도 했죠. 구름같이 모여든 청중은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 김 목사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했습니다.

1945년 12월 하순께 김은석 목사님과 정찬성 목사님이 거행하는 침례를 받았는데 냇가에서 김은석 목사님은 기도를 해주시고 정찬성 목사님은 옷 입으신 그대로 물속에 들어와 침례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침례를 받고 나니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선지 추운 겨울인데도 옷이 금세 말랐습니다.”

-목회 생활을 하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도 안 하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시각에선 어렵다고도 볼 수 있었겠죠. 집사람은 제가 ‘고생을 짊어지고 다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전도는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전도해야 할 대상이 “안 믿겠다”고 해서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결국 믿게 하시니까요. 동네에서 힘자랑하며 괴롭히던 사람들도 하나님이 굴복시켰습니다.”

-중병에 걸리신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폐병이 들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게 되자 1959년 월간 한길사는 ‘김정만 형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국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폐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주지 않는 선물을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기도하던 고사리봉을 찾아 하나님께 전신을 맡기고 기도했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몸이 가볍고 상쾌해져 집에 내려오니 하나님이 깨끗이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그 후 그런 일이 한 번 더 있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받으실 상이 많으시겠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일했으니 하나님께서 일한 대로 쳐주시겠지요. 달란트의 비유만 봐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상을 내게 주실 거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서를 읽으실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십니까. 식사는 제대로 하시나요?

“100일 기도건 다른 기도건 밥 먹을 생각을 못 합니다. 뭘 먹고 기도하는 건 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물만 마십니다.”

-지금부터 수십 년 전에는 기독교에 대한 사회·문화적 탄압도 있었습니다. 소작농이 교회에 나가면 지주가 땅을 빼앗기도 했는데요.

“예컨대 장가갈 때 처가의 반대가 심했죠. 예수쟁이와 결혼하면 불태워 죽이겠다는 위협도 있었지만 처의 친정에선 훗날 조카들 중에 목사도 많이 나왔습니다. 소작농이 땅,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을 빼앗겨도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뺏기면 뺏기는 거죠. 그까짓 땅을 빼앗겨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주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두려움도 없어야

-하나님은 무엇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모든 걸 다 주시는데 주님이 주시는 걸, 그 많은 걸 어떻게 일일이 다 열거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아갈 방편을 주시고 영육의 건강을 주십니다. 세상이 받지 못하는 복을 주십니다. 예수를 못 믿으니까 못 받는 복을 예수를 믿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잘못 믿고, 잘못 깨달으면 받을 상을 못 받고 또 엉뚱한 상을 바라기도 하겠지요.”

-예수가 그렇게 좋으셨습니까.

“예수 믿는 게 좋고 더 좋은 게 없으니까 항상 감사했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저절로 모든 게 다 되니까요. 전도하다 보니 온 마을이 예수 믿고 삶이 달라지는 것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어떤 성경 구절을 좋아하십니까.

“성경 구절은 다 좋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