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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4 01:57
초기 성만찬예배 고찰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201  
초기 성만찬예배 고찰
A Study on the Early Lord's Supper
http://kccs.pe.kr/ls10.htm

1. 초대교회

주후 30년 오순절날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그 구성원이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인 사도들로부터 시작된 교회는 점차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이방인들의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의 행각과 각 가정에서 시작된 초대교회는 회당예배와 성전예배에 익숙한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회당의 말씀 중심의 예배와 성전의 제사중심의 예배는 나중에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추방당한 후 독자적으로 예배 예전을 뿌리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회당 예배에서 말씀의 예전이 뿌리를 내리고, 성전 예배와 최후의 만찬에서 다락방 예전이 발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말씀의 예전과 다락방 예전이 통합되기 전까지는 초대교인들이 주로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렸고, 가정에 모여 성만찬을 행하였다(행 2:46; 3:11; 5:12, 42; 20:7; 눅 24:53). 물론 이 때의 성만찬은 아직 공동식사와 성만찬 예배가 분리되기 이전의 애찬 형태의 것이었을 것이다(행 20:6-12; 고전 11:17-22).

애찬과 성만찬이 최초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고린도전서 11장 17-22절의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고린도교회는 "아마도 식사를 먼저하고, 다음에 주의 만찬을 갖는 순서로"1) 예배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교인들은 공동식사의 연회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진지한 태도로 성만찬에 임할 수 없으리 만큼 술에 취했던 것 같다. 여기서 바울이 주의 만찬과 애찬을 구별하여 배고프면 집에서 식사하도록 충고한 때로부터 주의 만찬과 공동식사가 분리되기 시작했을 것이다.2)

초대교회가 사용한 구체적인 예식서는 성서에 남아 있지 않다. 성서에는 예수의 성만찬 제정의 말씀과 몇 개의 성만찬 설교가 전하여 지고 있을 뿐이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누가는 초대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만 전하고 있다. 여기서도 말씀과 성만찬 중심의 예배가 이루어졌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예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성서가 초대교회의 예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예루살렘교회는 처음부터 회당예배와 성전예배에 익숙한 유대인들의 교회였기 때문에 그들의 예배가 이 틀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기도문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써 {디다케}의 기도문3)을 들 수 있는데, 이 기도문의 내용이 유대인의 베라코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초대교회 예배가 유대교 예배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적어도 성서봉독, 집례자의 설교, 기도, 찬송시, 인사와 평화의 입맞춤, 봉헌, 성만찬 설교, 성만찬 기도, 주의 기도, 성만찬에의 초대, 분병례, 그리고 축도 순서로 이어지는 예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2. 2세기 초

주후 107년에 순교한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8장에서 교회 일치의 차원에서 주교만이 성만찬을 집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디다케} 9장은 침례 받지 아니한 자는 성만찬을 먹거나 마시지 말 것과 먼저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성만찬에 참여하지 말 것을 훈계하고 있어서 이 시대에 이미 성만찬 예전에 대한 질서가 확립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4) 또 이 시대에는 고린도전서 11장 17-22절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신자들이 예배 때에 각자의 예물로 떡과 포도주를 갖고 참석했으며 성직자의 축성을 위해서 한 곳에 모아 두기도 하였다.5)

주후 112년경에 소아시아 비두니아의 로마 지방장관이었던 플리니(Pliny the Younger)가 트라잔 황제에게 보낸 편지는 보다 많은 예배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서신은 비두니아 지역의 교회가 정한 날 새벽 미명에 모였다는 것과 예배 중에 연도형식(alternate verses)의 찬양과 십계명과 유사한 엄숙한 맹세를 했으며, 흩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모여 "보통의 흠없는 음식에 참여했다"는 점을 보도하고 있다.6)

3. 저스틴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예배의 원형은 순교자 저스틴의 글 속에서 볼 수 있다. 저스틴은 사마리아에서 출생하여 에베소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로마의 한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하다가 주후 168년경에 순교하였다. 그는 150년경에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Emperor Antonius Pius)에게 {변증서}(The First Apology)를 기록하여 그 당시 이교도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악성 루머들을 해명하려 하였다.

저스틴에 의하면, 2세기 중반의 교회들은 주일날에 모여서 성서를 봉독하고 집례자(the president of the brethren)로부터 설교를 들었으며, 일어서서 다함께 기도하였다. 또 집례자의 설교 후에 떡과 물로 희석된 포도주의 봉헌과 성별의 기도와 분병례와 헌금과 구제가 있었다. 또한 집례자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떡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마음껏 올렸다.

다음은 저스틴이 쓴 {변증서}(The First Apology) 65-67장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감화를 받고 전적으로 우리들의 가르침에 동의한 사람에게 우리가 침례를 베푼 후에, 형제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가서 그들 자신들과 침례를 받고 조명함을 받은 자와 또 다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합심하여 공동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진리를 터득한 우리가 옳다 인정함을 받고,  옳은 행실을 통해서 훌륭한 시민의 본을 보이며,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그의 명령을 준행하는 자들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낸 후에는 서로가 입맞춤으로 인사를 합니다. 다음에 형제들의 집례자에게 떡과 물과 포도주가 희석된 잔이 주어집니다. 그는 이것들을 가지고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만물의 아버지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자들로 인정된 선물들을 위하여 긴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기도와 감사를 끝내면 참석한 회중은 소리를 합하여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아멘"이란 히브리어로 "그렇게 되어지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집례자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회중이 화답한 후에 우리가 부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감사의 기도가 바쳐진 떡과 물로 희석된 포도주를 참석한 사람들에게 분배하고 참석치 못한 사람들에게 가져갑니다(65장).

그리고 이 양식은 우리 사이에서 성만찬(Eucharist)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것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진리로 가르친 것들을 믿고, 죄사함과 중생을 위한 씻음으로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통의 떡과 보통의 음료로 먹고 마시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육신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살과 피를 취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의 말로 감사가 드려진 양식은 육체가 되신 그 예수의 살과 피임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말이란 그리스도로부터 오고, 우리의 피와 살이 육체의 진행을 따라 양육이 되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이라 불리는 그들의 회상록 가운데에서 예수께서 명하신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예수는 떡을 들어 감사하신 후 말씀하셨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것은 내 몸이다.' 이와 같이 잔을 드시고 감사하신 후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피이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그들에게만 주셨다"(66장).

그리고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에는 도시나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함께 모임을 갖습니다. 사도들의 회상록들이나 선지자들의 글들을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읽습니다. 읽는 사람이 낭독을 마치면 집전자는 설교를 통해서 훈계를 하며, 이들 선행들을 본받도록 권면 합니다. 그 다음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나서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기도를 마치면, 떡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오고, 집전자는 같은 방법으로 그가 할 수 있는 대로 기도와 감사를 올립니다. 그러면 회중들은 아멘 하고 응답을 합니다. 성찬의 분배와 나눔은 축성된 봉헌물을 각자에게 줌으로 이루어지고 참석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부제들을 통하여 보내줍니다. 재물이 있고 뜻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의향대로 그가 원하는 것을 내고, 모아진 것을 집례자에게 갖다 줍니다. 집례자는 이 헌물을 고아와 과부와 병이나 다른 이유들로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자나 나그네들에게도 나누어줍니다. 한마디로 집전자는 모든 궁핍한 사람들의 보호자가 됩니다.(67장)7) 

저스틴의 글을 통해서 2세기 중엽의 주일 예배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성서봉독--사도들의 회고록 즉 복음서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는다.

설교--집례자는 봉독한 성서 본문을 토대로 교훈과 권면을 한다.

기도--사람들로부터 옳다 인정함을 받고 옳은 행실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 또 명령을 지키는 자가 되기 위해서 온 회중이 일어서서 기도한다.

◈성만찬 예전◈

인사--평화의 입맞춤

봉헌--떡과 물로 희석된 포도주를 부제가 집례자에게 준다.

성찬기도--집례자가 그리스도의 성만찬 제정사를 포함한 성별의 기도를 올린다.

응답--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한다.

분병례--부제는 신자들에게 분배하고 참석치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으로 가져간다.

성만찬에의 참여--진리를 믿고,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다.

헌금--자원해서 바친 헌금으로 구제를 행한다.

4. 터툴리안

터툴리안(Tertullian)은 성례(sacramentum)란 말을 처음 사용한 북아프리카의 교부로서 저스틴과 마찬가지로 변증서를 통해서 기독교 예배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특성을 강조하였다. 터툴리안에 의하면, 3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성도들은 기도(예배)하기 위하여 모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황제들과 그들의 신하들을 위해서 기도하였고, 세상의 질서와 평화와 종말의 지연을 위해서도 기도하였다. 예배는 장로(목사)들에 의해서 인도되었으며, 예배 중에는 성서를 봉독 했으며, 봉독된 성경 말씀에 따라서 권면과 책망과 훈육적인 설교를 하였다. 설교자의 비판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엄한 권위로 이루어 졌으며, 범죄한 자들은 예배와 모임과 거룩한 친교로부터 제외되었다. 그리고 헌금은 자원자에 한하여 드려졌던 것을 알 수 있다.8)

터툴리안은 예배 중에 있었던 성만찬 예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앞에 언급된 '거룩한 친교'가 예배 중에 있었던 성만찬을 암시하는 것 같기는 하나, 성도의 모임을 설명하는 다른 글에서도 성만찬 예전에 대한 언급은 피한 채, 애찬에 대한 설명으로 글을 종결 짓고 있다.9)

한편, 터툴리안은 마르시온을 대항하는 글에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다' 즉 '내 몸의 상징(figure)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쪼개진 떡을 당신의 몸으로 삼으셨습니다"10) 라고 적고 있고, 그의 논문 "기도에 관해서"(On Prayer) 19장에서는 금식 중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만찬을 금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1)

5. 히폴리투스

최초의 성문화된 성만찬 예식문은 3세기 초(215년경)에 로마의 감독 히폴리투스가 기록한 {사도의 전승}12)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히폴리투스는 원래 동방 출신으로써 로마에서 주교가 된 사람이다. {사도의 전승}은 본래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나 유실되어 없고 라틴어 사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만찬 기도문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유대교의 영향권에서는 유대교의 기도문 베라카를 사용하거나 변형시켰고, 헬라 문화권에서는 헬레니즘의 종교-시적인 산문 형태를 이용하여 발전시켰다. 따라서 성만찬 기도문의 기원과 형태를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유대 기독교 성만찬 기도문이다. {디다케}의 기도문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기도문에는 구약과 그 구원사 및 '거룩하시다'를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다이와 마리}(Addai and Mari)가 있다고 한다.

둘째, 로마 기독교 성만찬 기도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기술하고 있고,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구약의 인용이나 '거룩하시다'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아래에 소개하게 될 히폴리투스의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은 현재 {로마 미사경본}13)의 두 번째 성찬 기도문의 원형이다.

셋째, 헬라 기독교 성만찬 기도문이다. 철학적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고, 창조와 구원사를 묘사하고 있다.14)

히폴리투스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부제들이 주교에게 봉헌물을 주면, 주교는 모든 사제들과 함께 봉헌물 위에 안수하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 다음과 같이 인사를 교환합니다.

주교: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회중: 또한 사제와 함께(혹은 또한 당신의 영신(靈神)과 함께).

주교: 마음을 드높이!

회중: 주를 향하여(혹은 주와 함께 마음을)!

주교: 주님께 감사합시다.

회중: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주교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시오.

오 하나님, 당신의 사랑하는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마지막 때에 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구원자 그리고 당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로서 우리들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이 성자는 당신의 나눌 수 없는 말씀이며, 당신은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로 인하여 기뻐하셨습니다. 당신은 그 성자를 하늘로부터 처녀의 태중에 보내시어 수태케 하시고, 육체가 되게 하셨으며, 성령과 처녀에게서 탄생케 하심으로써 당신의 아들임을 나타내셨습니다.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고, 당신을 위하여 고난 중에서 양손을 뻗어 한 거룩한 백성을 예비하셨고, 당신을 믿었던 사람들을 고난 중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그는 죽음을 멸하고, 악마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지옥을 박멸하고, 의인들을 가르치시며, 계약을 세워 부활을 나타내시려고, 자발적인 고난에로 배반을 받았을 때에 떡을 들어 당신께 감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깨뜨릴 내 몸이니라." 또한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드시고,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릴 내 피이니, 너희가 이를 행할 때에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자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고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봉사자가 되기를 허락해 주신 일에 감사 드리며 떡과 잔을 바칩니다. 우리는 당신께서 당신의 거룩한 교회의 봉헌물 위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시고, 당신의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에게 허락하시어 진리 가운데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 되며, 당신의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성자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성부 하나님께 당신의 거룩한 교회 안에 지금도 언제나 세세에 이르도록 영광과 영예가 있기를 빕니다. 아멘.15)

여기에 실린 히폴리투스의 성만찬 기도문은 현재 로마교회의 {미사경본}의 두 번째 성찬 기도문의 원형으로써 '인사'(Sursum corda), '감사송'(prelude), '봉헌사', '기념사'(anamnesis), '성령임재의 기원'(epiclesis) 등이 포함되어 있다.16) 무엇보다도 히폴리투스의 이 기도문은 서방교회는 물론이고 동방교회가 발전시킨 성만찬 예전의 원형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히폴리투스의 이 기도문을 시작으로 해서 4세기 초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로 예전의 발전은 눈부신 것이었다.17) 이 시기에 '인사'(Sursum corda), '키리에'(Kyrie eleison), '삼성창'(Sanctus) 등이 공적인 예배에 첨가되었다.18)

그러나 이러한 예전의 발전은 각 지역의 언어권에 따라서(헬라어권, 라틴어권, 아랍-시리아권), 지정학적 위치와 문화에 따라서(동방과 서방), 또는 사도들의 전승을 이어받고 있다고 주장되는 5대 총 대주교좌(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로마, 콘스탄틴노플)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동일 언어, 동일 지역, 동일 문화라는 특성에 따라서 예배 전통은 조금씩 격차를 보이게 되었다.19) 그리고 이러한 격차는 크게 동방과 서방교회로 나누어지게 된다.20)

각주

1)Robert E. Webber, {예배학} 김지찬 역(생명의 말씀사, 1988), p. 63.

2)Ibid.

3){열두사도의 가르침: 디다케}(분도출판사, 1993); J. B. Lightfoot, The Apostolic Fathers(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56), pp. 126-127; Everett Ferguson, Early Christian Speak(Abilene, Texas: Biblical Research Press, 1981), pp. 93-105.

4){열두사도의 가르침: 디다케}; Henry Bettenson, trans. and ed., The Early Christian Fathers: A Selection from the Writings of the Fathers from St. Clement of Rome to St. Athanasius(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pp. 49-50; 네메세기, {주의 만찬} 김영환 역(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pp. 88-89; Brukhard Neunheuser, {문화사에 따른 전례의 역사} 김인영 역(분도 출판사, 1992), p. 32; J. B. Lightfoot, pp. 126-129; Everett Ferguson, pp. 93-105.

5)Massey H. Shepherd, Jr., {교회의 예배: 예전학} 정철범 옮김(대한기독교서회, 1991), p. 80.

6)Everett Ferguson, p. 81.

7)Everett Ferguson, pp. 81-117; 네메세기, 90-91쪽.

8)Tertullian, Apology, 39.1-5;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tans. and eds., The Ante-Nicene Fathers: Translations of the Writings of the Fathers Down to A.D. 325, Vol. Ⅲ of Latin Christianity: Its Founder, Tertullian(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57), pp. 46-47.

9)Tertullian, Apology, 7.3;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pp. 23-24; Everett Ferguson, p. 85.

10)Tertullian, Against Marcion, Ⅳ.40; Everett Ferguson, p. 108.

11)Henry Bettenson, pp. 148-149; Andrew Paris,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Lord's Supper(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1986), p. 286.

12)히뽈리뚜스, {사도전승}(분도출판사, 1992).

13){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개정 공포된 미사경본}(한국천주교주교회의 발행, 1992).
14)Burkhard Neunheuser, pp. 42-43.

15)네메세기, 96쪽; Everett Ferguson, pp. 94-95.

16)박근원, {오늘의 예배론}(대한기독교서회, 1992), 13-14쪽; Burkhard Neunheuser, pp. 42-43.

17)Burkhard Neunheuser, pp. 63-64.

18)박은규, {예배의 재발견}(대한기독교출판사, 1990, 개정판), 83쪽.

19)Burkhard Neunheuser, pp. 66-67.

20)성만찬 예배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성만찬 예배}(은혜출판사, 1995)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