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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5-18 19:58
성경과 역사를 통해 본 여성 사역자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53  

성경과 역사를 통해 본 여성 사역자

조동호 목사(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이 글의 목적은 신학쟁점의 하나인 여성 사역자에 관해 의견을 그리스도교(개신교) 입장에서 피력하는데 있다. ‘장로’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사제’와 ‘목사’로 변천되어왔는지, 또 우리가 알고 행하는 것들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과는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려는데 있다.

첫째, 성경시대에 여성들은 남자들의 소유물에 불과했고, 교육의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다. 게다가 여성 사제들은 성창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따라서 야훼 한분만을 믿었던 이스라엘에서는 여성 사제를 두지 않았다. 게다가 계명(율법)을 생명처럼 여기는 이스라엘에서는 13세 이상의 ‘계명의 아들’(Bar Mitzvah)들만을 이스라엘로 간주하였다. 여성들은 계명들을 지켜야할 의무자들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도 이스라엘에서는 여성들이 사제가 될 수 없었다. 그리스로마세계에서 예루살렘성전은 주후 70년에, 이방인 성전들은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392년에 완전히 폐쇄 또는 붕괴되었고 이방인 사제들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대신에 그리스도교 장로들이 예배의 미사(성체성사)화로 인해서 사제로 탈바꿈하였다.

둘째, 성경시대에 유대교 회당에는 설교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회당에는 복수(3명)의 남성 장로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회당장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회당의 관리와 민원을 해결하는 공회원들이었다. 이들은 예배와 교육의 책임은 물론이고, 율법규정에 따라 곤장을 치게 하거나 파문을 시키는 등의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마 10:17, 막 5:22, 눅 7:3, 21:12, 행 22:19). 예수님, 바울, 바나바 등이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할 수 있었던 것도 설교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막 1:21, 눅 6:6, 행 13:15, 19:8). 회당에서는 안식일, 월요일, 목요일 오전기도회 때 해당 주의 ‘파르샤’(Parshah, 모세오경의 일부)와 ‘하프타라’(Haftarah, 역사서와 예언서 가운데 파르샤와 관련된 몇 구절)를 낭독자가 읽는다. 설교는 이 부분을 해설해 주는 것으로써(행 28:23) 필요할 경우 회당장들로부터 지명을 받은 자나 자원자가 나서서 할 수 있었다.

셋째, 유대교회당에 설교자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던 이유는 유대교가 교리종교가 아니고 실천종교이기 때문이었고, ‘쉐모네 에스레이’(일명 ‘아미다’)라 불리는 18개의 베라코트(Berakhot)을 낭송하기 위한 집회의 특성상 전담 설교자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회당에 설교자가 따로 없었고 회당장이 여러 명이었다는 증거는 신약성경에 많다. 대표적인 구절이 사도행전 13장 14-15절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파르샤와 하프타라)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오늘날에는 신학교육을 받은 랍비들이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

넷째, 성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선지자(예언자)가 되는 데에는 남녀구별이 크게 없었다. 여성들은 남자들의 소유물에 불과했고, 교육의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으며, 계명의 아들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친 미리암(출 15:20), 드보라(삿 4:4), 훌다(대하 34:22, 왕하 22:14), 노아댜(느 6:14), 안나(눅 2:36) 등의 여성 선지자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정통파(근본주의)를 제외한 보수파, 개혁파(진보주의), 재건파(급진주의)에서 여성 랍비들을 허용하고 있다. 1922년 재건파를 세운 랍비 카프란(Kaplan)은 남녀동등의 차원에서 ‘계명의 딸’(Bat Mitzvah) 성인식(남자는 13세에, 여자는 12세에 행하는 유대교 성인식)을 처음 도입하였고, 개혁파에서도 이를 따라하고 있다. 보수파에서는 1980년대부터 여성 랍비제도를 수용하고 있다. 계명의 딸과 여성 랍비를 수용하는 유대교 교파들, 특히 개혁파와 재건파는 정통파가 중요시하는 토라의 의식법보다는 도덕법을 더 중요시한다. 신약시대에도 여성 선지자가 있었다. 전도자 빌립의 네 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행 21:8-9). 아굴라의 부인 브리스길라(롬 13:3)는 에베소 교회의 유력한 일군이었고, 바울의 추천을 받았던 뵈뵈(롬 16:1-2)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이었으며,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교회의 일군들이었다(빌 4:2-3). 외경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 따르면, 아름답고 눈물겨운 전설과 미모를 지닌 전도자 테클라(Thecla)도 있었다.

다섯째, 그리스도교에도 복수(3명)의 남성 장로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지역교회의 당회장(감독자와 치리자)들이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장로들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였다. 사도 야고보가 주후 44년에 참수를 당하자 그의 빈자리를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메웠다. 사도들은 순회전도를 위해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은 야고보의 몫이 되었다(행 15:4, 6, 13, 고전 15:7, 갈 1:19, 2:12). 바울이 선교지에서 교회를 설립한 후 복수의 장로들을 선출하여 장립한 것은 바로 유대교 회당의 회당장들에 필적한 것이었다. 개개의 회당에 3명의 회당장 장로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교지 교회들에도 3명의 장로들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14장 23절은 바울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개교회의 장로들은 지역교회의 목자(목사)와 감독자로서 그 역할과 임무가 신약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져있다. 특히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그들의 직책이 양무리를 보살피는 목자와 감독자임을 주지시켰다. 동일한 맥락에서 야고보서 5장 14절은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하였다. 동일한 맥락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스스로를 일컬어 ‘장로’라고 하였다(벧전 5:1, 요이 1:1, 요삼 1:1).

여섯째, 개교회의 남성 장로들이 반드시 설교자일 필요는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지역교회를 감독하고 목양하는 남성 장로들만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세기 말까지는 사도, 전도자, 선지자(예언자), 교사들이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순회 목회자들이었다. 이 순회목회자들 가운데 소수의 여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례를 집례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를 맡아하는 남성 장로 설교자는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에 의해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그나티우스가 서머나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언급한 주교/감독의 직무는 다수 장로들의 으뜸 곧 오늘날의 담임 목사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일곱째,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아주 오랜 기간 여성 장로들은 없었지만, 여성 집사(봉사자)들은, 비록 소수였지만, 초기 수백 년간 존재했었다. 그리스도교(개신교)를 제외한 전통교회들에서는 집사를 가장 낮은 직급의 성직으로 간주한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롬 16:1)이었던 뵈뵈를 집사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 장로들 가운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5-220), 오리겐(185-254), 크리소스톰(347-407), 데오도렛(393-460)은 뵈뵈를 집사로 보았다. 주후 112년경 비두니아 지방 총독이었던 소 플리니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쓴 편지에서 두 명의 “ministrae”를 언급하였는데, 이 단어는 ‘여자 집사들’ 혹은 ‘여자 일꾼들’로 번역될 수 있다. 감람산 인근 굴무덤에서 “소피아 곧 그리스도의 종과 신부, 집사, 제2의 뵈뵈 여기에 눕다.”라고 새긴 4세기 후반의 석비가 발굴되었고, 카파도키아에서도 “마리아 집사”라고 새긴 6세기경 석비가 발굴된바 있다.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 문서에는 “40세 이하의 여자를 집사로 안수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고, <교부들의 삶>(Liber Patrum)은 “여자 집사들은 정숙하고 점잖아야하며 60세 이상이어야 한다. 그들은 여성들에게 침례를 베푼다. 사제들이 벌거벗은 여성들의 몸을 보는 것이 절절치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4세기 후반의 <사도헌법>(Apostolic Constitutions)은 감독에게 남녀 교회지도자들의 안수에 관해 지시하고 있고, 감독이 여성에게 안수할 때 드리는 기도문까지 적었다.

여덟째, 교회에 여성들의 조력이 필요했던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사실이다. 첫째는 고대 그리스도교 침례는 벌거벗은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세 번 침수를 했다. 이 때문에 감독(장로)이 벌거벗은 여성에게 침례를 베풀기가 난감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개종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개종침례를 받아야하는 유대교에서는 개종자가 여성인 경우에는 3명의 여성 조력자들이 랍비를 대신해서 침례를 베풀어왔다. 이 때 랍비는 문밖이나 차단막 밖에서 의식을 집전한다. 둘째는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고 조직과 제도가 정비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침례를 베풀 수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침례가 주로 강에서 새벽이나 밤에 베풀어졌지만, 신체접촉은 여전히 난감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여성 조력자들 곧 여자 집사들이 필요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고 조직과 제도가 정비된 이후에는, 특히 예배가 성체(빵)를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Mass)로 발전된 이후에는 여자 집사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게다가 수녀회가 조직되고 침례 대신에 약식세례를 시행한 중세기에는 더더욱 여자 집사란 제도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다만 오늘날의 가톨릭교회는 사제의 말단계급인 ‘부제’(‘보제’)라 불리는 집사와는 별도로 ‘봉사자’ 개념의 평신도 사역자를 인정하는 추세에 있다. 이들을 가톨릭에서는 ‘minister’라 부른다. 디모데전서 3장 12절,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가 웅변하듯이 여성 집사가 일반적이지는 않았지만, 현존하는 자료들로 볼 때, 1세기 교회시대이후 곧 2세기부터 13세기까지에는 분명히 안수 받은 여자 집사들이 교회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홉째, 우리말 성경에서 ‘선지자’와 ‘예언자’는 모두 설교자이다. 다만 ‘선지자’는 히브리어의 ‘로에’(ro'eh)나 ‘호제’(chozeh)에서 나온 말로써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렘 24:1, 겔 37:1, 암 7:1, 슥 3:1)을 전한 자들이었다면, ‘예언자’는 히브리어 ‘나비’(Nabi)에서 나온 말로써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것을 선포하는 자들이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성 선지자들도 설교(권면)자였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여성들이 교회에서 잠잠해야하는 것을 창조의 섭리라고 말한 것은 당대의 정황들에 연결되어 있다. 성경시대의 여성들은 아버지들 또는 남편들의 소유물이었고, 내다 팔릴 수 있는 재산에 불과했으며, 교육을 받지 못해서 글을 읽지 못하였다. 그리스로마인들은 물론이고 유대인들조차도 여자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리스로마시대의 여성 사제들은 몸을 파는 성창들이었고, 바쿠스축제와 그 축제를 주도한 여성 사제들의 광기는 악명이 높았다. 바울시대에 바쿠스(디오니소스) 여성 사제들은 솔방울과 리본으로 장식한 디오니소스 지팡이(thyrsos)를 손에 들고 술에 취해 예배자들과 함께 머리를 앞뒤로 심하게 흔들며 광적이고 음란한 춤을 추었다. 바울이 기도나 예언하는 여성들에게 수건으로 머리를 덮어 옷차림을 단정히 할 것과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격식을 갖춰 시행할 것을 권면한 이유를 이런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전 11장).

열째, 성경의 예언활동은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이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리스의 예언자들과 신탁소의 무당(제니)들처럼 앞날에 대해 점을 치지 않았다. 그들의 예언활동은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에서 떠나 재앙을 당하는 백성에게 회개운동을 펼친 것이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회복운동을 펼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예언은 이 회복운동에 포함된 것이었다. 세례 요한, 예수님, 사도들도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을 펼쳤다. 예수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3:2)였다. 교회시대의 문을 개방한 베드로의 첫 설교도 “회개하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행 2:38)였다. 바울은 십자가에 관한 말씀, 구원과 재림에 관한 말씀을 예언으로 보았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가 신령한 자요 교회에 덕을 세우는 자라고 하였다. 이 같은 내용은 다니엘서와 계시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서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말씀 선포)을 하려고 하라”고 권하였다. 성경시대에 여성 선지자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볼 때, 또 그들의 직무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선포하는 권면(설교)에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여성 설교자들을 금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2세기 무렵부터는 설교와 복음전파를 전담했던 떠돌이 순회사역자들이 교회들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거나 증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고; 둘째, 이미 교회들은 사도들이 살아서 활동하던 때로부터 영지주의 경향을 띤 삼위일체를 부인한 유대인 에비온파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으며, 사도들이 죽은 이후 교회들은 순회사역자들에 대해서 이단성이 없지 않은지 먼저 의심부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교회들은 국교가 된 4세기말까지 남성 장로들의 지도와 감독아래 지속되었다.

열한째, 313년 박해시대가 끝나자 교회는 삼위일체와 단일신론으로 심각하게 분열하였다.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주교들을 니케아에 모이게 하여 이 문제를 토론하게 하였고, 삼위일체파들이 단일신론파를 누르고 만들어낸 최초의 신앙고백서가 바로 ‘니케아신조’였다. 이후로도 논쟁이 지속되었으나 380-90년대에 테오도시우스 대제,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가 지지한 삼위일체신앙이 보편적(가톨릭, catholic) 신앙으로 굳어졌고, 392년 그리스도교가 제국종교가 되면서 개인의 신앙의 자유가 제한되었으며,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미사만 허용하는 미사의 제사화 곧 봉헌신학과 성체신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장로들이 제사장으로 둔갑되어 계급화 되었고(부제=집사, 사제=장로,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 혹은 보제, 사제, 주교, 대주교, 총대주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해야만 했던 설교와 대표기도가 순서에서 빠지게 되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역교회 공동체들에서 떠돌이 순회 목회자 개념의 전도자, 선지자, 교사가 사라지게 되었고, 여성 사역자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열둘째,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장로들은 16세기에 칼빈과 존 녹스의 평신도 장로 대의제 도입에서 비롯되었다. 원칙은 회중에 의해 선출된 회중의 대표가 치리회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그리스도교는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국가교회체제였기 때문에 제네바에서는 20인, 60인, 200인의 시의회들에서 전통에 따라 여성을 배제한 채 남성들만으로 배정된 인원수대로 치리 장로들을 선출하였고, 칼빈은 이들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한바가 있다. 존 녹스 역시 칼빈이 제네바에 확립시킨 개혁교회 장로회 제도를 도입하여 스코틀랜드 의회의 승인을 받아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에 정착시켰다. 스코틀랜드에서 회중이 선출한 치리 장로들과 사제(장로)들로 구성된 당회(session)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것은 1563년부터였다. 이때 치리 장로의 임기는 제네바에서와 마찬가지로 1년이었으나 인적자원의 부족을 이유로 1578년부터는 종신직으로 바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가교회체제 아래에서조차 16세기이후 그리스도교의 장로들은 임기가 제한된 평신도 선출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대원칙이 미국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연방수정헌법(1791년 12월 15일)이 채택된 이후에 더욱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열셋째, 유대교에서는 대제사장 또는 제사장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지성소의 하나님의 보좌(법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제사장 한 사람 뿐으로써 대속제일 날 하루 두 차례 정도 자신의 죄를 위해서와 백성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성막시대에는 백성이 출입할 수 없는 문(성막휘장, 성소휘장, 지성소휘장)이 세 곳이나 되었고, 성전시대에는 이방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미문(민족의 담),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 곧 계명의 아들들만이 출입하는 니카노르문(성별의 담), 제사장들만이 출입하는 제사장의 문(신분의 담), 대제사장만이 출입하는 지성소의 문(계급의 문)이 존재하였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에 출입하는 유일한 문이시라는 점과 문이 그분의 육체임을 강조하고 있다(요 10:9, 히 10:20). 예수님은 문인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깨뜨리시고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담을 상징하는 지성소휘장을 갈라놓으심으로써 남녀노소 빈부귀천 민족색깔에 상관없이 누구나에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히 10:19) 하였고,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법궤] 앞에 담대히 나아갈”(히 4:16) 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히 10:22) “새로운 살 길”(히 10:20)을 열어주셨다. 이것이 만인사제의 의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문자적인 의미의 사제들은 아니지만, 영적으로 의미적으로 실천적으로 사제들이란 것이다. ‘그리스도’란 말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인데,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을 번역하고 해제를 쓴 이형우 신부는 이를 일컬어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 즉 그리스도인(christianus)으로 탄생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열넷째, 대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대제사장인 것처럼,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님이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주장하는 교황과 사도직 계승을 주장하는 사제(장로)들로 인해서, 곧 가톨릭교회의 유대교화로 인해서, 개인들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 길이 다시 막혀 버렸다. 그리고 그 길을 다시 연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가들이었다.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들은 “근원(뿌리)으로부터”(Ad Fontes) 곧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였고, 고대 사본들을 찾기 위해 유럽의 도서관들과 수도원들을 조사하였으며, 성경의 원본을 복원하고 이를 모국어로 번역하였는데, 이 운동이 종교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종교개혁가들은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미사만 허용되던 시대에 모국어로 성경을 읽거나 특히 예배 중에 모국어로 읽어 주는 성경말씀들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의 영웅들인 루터, 츠빙글리, 칼빈, 부처, 녹스는 본래 가톨릭교회의 사제출신들이었고, 국가종교를 신봉하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루터교회, 개혁교회, 영국교회가 다 국가종교였으며, 국가종교에 반대하여 정교분리를 주장한 재침례파와 청교도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이를 근거로 시의회나 국가는 이들을 익사나 화형으로 다스렸다. 칼빈이 제네바에 세운 장로제도는 평신도 대의제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의회에 의해서 여성들을 배제시킨 채 남성들만으로 뽑힌 장로들이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을 감시하고 징계하는 제도였다.

열다섯째, ‘목사’라는 호칭은 '사제'(장로 곧 목양자)라는 말을 '목사'로 바꾼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미사'를 '주의 만찬'으로 '제단'을 '주의 만찬상'으로 바꾼 개혁가였다. 이로써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시대나 가톨릭미사에서처럼 희생제물을 바치는 제사도 제단도 사제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만인사제의 의미는 사제체제를 엄히 배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종교개혁이후 그리스도교의 장로제도가 분명 평신도 대의제란 점에서 볼 때도 여성이 선출직 장로나 설교자 또는 전도자가 되지 말아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되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갈 3:28)라고 하였다. 구원에 남녀의 차별이 없는데,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는”(행 6:4) 목회사역에 남녀노소의 차별이 있어야겠는가? 정규신학교육을 받고 목사로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장로(리더십)냐 혹은 아니냐는 논쟁이 1850년대에 격화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가 장로들의 리더십 아래에 있는 목회자(설교자, 전도자)일뿐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목사가 장로들의 한 사람일뿐 아니라, 으뜸(당회장)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각기 다른 주장으로 말미암아 교단이 갈라서기도 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공교육을 받게 되었고 참정권을 갖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스도교(개신교) 신학교 학생들의 절반은 여성들이다. 그들이 설교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다면, 학생으로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수천 년에 걸쳐 여성들이 남성들의 억압아래에 있었으나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상은 창조신앙이고 그리스도교 사상이다. 하나님 한분이외에 모든 것이 피조물이고,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숭배하지도 말라는 십계명 제1-2계명에서도 명백히 밝혀져 있다. 구약성경은 지혜를 여성으로 의인화하고 있고, 그리스로마신화도 뱀을 치유의 상징과 여인으로 의인화하였는데, 그 뱀이 이브를 잘못된 길로 꼬드겼다는 가르침이 수천 년에 걸쳐 오늘날까지도 여성들을 불평등 불공정하게 대우하는 이유가 되어야하는지 그리스도인들은 심사숙고해볼 일이다.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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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찬 21-08-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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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하나님의 말씀) 거의 빼버리고 역사만 기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