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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1 19:18
[은혜 13강]제12장 돌을 던지지 말라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149  
   http://kccs.info/gracejc_ch12.htm [2121]

13 LESSONS ON GRACE Written by Jack Cottrell
Wipf and Stock Publishers: 150 West Broadway, Eugene OR 97401
1999

Translated by Dong Ho Cho
Christian Church Studies, 2011
℡(042)841-9697

제12장 돌을 던지지 말라

“교리 설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인 무언가를 설교해 주세요.” 모든 설교가가 종종 이 선의의 제안을 받는다. 본서의 여러 장(章)들도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교리적 측면에서 너무 버겁다는 비판을 받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은 교리보다 더 실제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교리는 가르침, 즉 진리로 가르쳐진 것과 믿어진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이 진리로 믿는 것은 그가 하는 다른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바른 교리는 그래서 바른 행동에 선행조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념한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행 2:42). 성경말씀의 첫 번째 가치가 그것의 교리인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딤후 3:16).

본서에 실린 일련의 연구들을 위해 기초를 형성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관한 책들은 이것의 훌륭한 본보기들이다. 그것들은 철저하게 교리서적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은 매우 실제적이다. 그것들의 초점, 즉 믿음으로 의롭다하심(以信稱義)의 교리는 우리와 하나님과 관계의 모든 측면과 우리의 상호관계의 모든 것을 위해 필요한 기초를 놓는다.

따라서 로마서가 특히 후반부 장(章)들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말하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무슨 다른 반응이 가능하겠는가? 은혜는 동기를 부여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을 쓸모없게 만든다. 은혜로 구원받는 자들은 사랑 안에서 걸을 것이다.

이 장(章)에서 우리는 로마서에 언급된 이웃 사랑의 몇 가지 측면들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1. 사랑은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사랑의 첫 번째 특징은 이 진술에서 발견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한다”(롬 13:10). 만약 우리가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결코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이 아프거나 해를 입는 것을 보기 원치 않는다. “당신은 항상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옛말이 있다. 물론 요점은 아무도 그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기를 정말로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아이러니들 때문에, 고의성은 없지만, 우리의 행동들은 종종 사랑한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사랑은 그 같은 해(害)를 피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이것이 왜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계명들이 부정적인 말로 표현되어지는가에 대한 이유이다. 계명들은 결국 보편적인 사랑의 법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일 뿐이다. 만약 사람이 그의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는 이웃의 것을 훔침으로써, 이웃에게 거짓말함으로써 혹은 이웃을 살해함으로써 그를 해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계명들이 우리에게 하지 말아야할 것을 말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 사람이 그 같은 일들을 행하지 않을 때, 그는 사랑의 법을 이행하는 데에까지 와있는 것이다(롬 13:8-10을 보라).

A. 약함 혹은 강함?

이 원리들의 구체적인 적용은 로마서 14장에서 발견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그의 형제에게 양심을 거슬려 죄를 짓게 함으로써 그를 해(害)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롬 14:13). 심지어 당신이 본질적으로 전혀 해롭지 아니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만약 당신의 그리스도인 형제가 그것이 잘못이라고 믿지만, 당신이 행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하게 된다면, “당신은 더 이상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롬 14:15).

여기서 다뤄져야할 주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이 아닌 것들이나 행동들, 그리고 그 같은 것들에의 약하고 강한 접근들이다. 아직도 믿음이 약하고 적절한 이해가 부족한 그리스도인은 해롭지 아니한 어떤 행동이 꽤 죄가 된다고 느낄는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에게 그것은 자기의 양심에 어긋난 것일 테고, 또 그래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롬 14:14,23, 고전 8:7).

그러나 강한 그리스도인은 무엇인가가 해롭지 아니한 때를 알고, 또 그러므로 죄 짓지 않고 그것을 착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비난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성경이 직접적으로나 함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한다.

신약성경의 글들에서 그 같은 행동의 주된 본보기는 우상들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이다. 고대의 정육점들에서 생육(生肉)의 주된 공급처는 지역의 이교 신전이었다. 동물들은 여러 우상들의 희생물로써 도살될 것이고, 그러면 일상의 소비를 위해 시장들에서 팔려나가게 될 것이었다.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같은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지 혹은 그른지에 관해서 일치할 수 없었다. 먹는 것을 죄로 여겼던 사람들은 혹 그들의 심령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을 먹음으로써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차라리 어떠한 고기도 전혀 먹지 않는 것을 선호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고기를 먹는 것이 전혀 해롭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고전 8:4-6, 10:25-27). 믿음이 강한 자는 이것을 안다. 죄는 우상에게 동물을 바치는 자들에 의해서 초래되지, 고기를 하나님의 선물로 믿고 먹는 자들에 의해서 초래되지 않는다.

B. 자유 혹은 사랑?

그러나 이것이 문제의 끝은 아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또 덕을 세우는(건설적인)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말한다(고전 10:23). 비록 내가 우상들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에 자유로울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나보다 더 약한 누군가에게 죄를 짓게 할는지 모른다. 만약 그가 내가 그 같은 고기를 먹는 것을 본다면, 그리고 그가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그것을 즐기게 된다면, 그는 죄를 범한 것이다(고전 8:9-12).

답이 무엇인가? 이웃을 사랑하는 자에게 답은 매우 간단하다.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은 사랑에 반(反)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이 그가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이 잘못이다. 사랑은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따라서 바울은 말한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롬 14:15).

바울은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답다”(롬 14:21, 고전 8:13을 보라)고 말한다. 자유의 법은 사랑의 법에로 길을 튼다.

이 원칙은 필요한 곳이면 어디에든지 반드시 부지런히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카드놀이나 당구 혹은 영화 보러가기나 주일 오후에 일하는 것에 관련이 있을는지 모른다. 어떤 정해진 장르의 음악을 듣거나 어떤 정해진 프로그램들이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에 관련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자유들(우리의 “권리들”)보다, 그것들을 행사함으로써 더 약한 형제를 죄에 빠뜨린다면, 기꺼이 앞서 가려해야 한다.

C. 판단 혹은 수용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그것으로 인해서 걸려 넘어지게 하고 있는 경우라면, 말하자면, 그들이 이 일들을 실제로 하고 싶다는 유혹을 받고 그들의 마음에 죄를 범하는 경우라면, 그 같은 행동들을 실제로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주목하자. 무언가를 형제가 단순히 좋아하지 않거나 그것을 찬성하거나 또는 그것으로 인해서 거절당한다는 점에서 그를 단순히 “불쾌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우리는 포기할 필요까지 없다. (여기 약간의 혼란이 있다. 왜냐하면, 더 오래된 번역이 불쾌하게 만드는(offend)이란 말, 즉 초기에는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이란 뜻을 실제로 의미했던 어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노선을 따라서 바울은, 만일 그 같은 견해의 문제들에 대해서 형제들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면, 개개인은 다른 사람들의 견해들을 존중하고 판단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다. (로마서 14:1-13을 보라).

그 같은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지도적 원리는 여전히 이것이다. 사랑은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2. 사랑은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을 돕는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단지 만족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과 지식에서 성장하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를 추구한다. 우리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한다(롬 14:19).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만약 우리가 성경말씀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들이 깨지기 쉽고 부자연스런 “더 약한 형제들”에 대해서 안다면, 그들과 함께 연구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에 대한 적절한 지식으로 그들을 격려하자. 만약 우리에게 죄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더 약한 형제들이 있다면, 어떤 가능한 방법으로든 우리 자신들을 드려 섬김이 되게 하자.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여야 한다”(롬 15:1).

우리가 성령님으로부터 무슨 은사를 받았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구성원들이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그 은사를 이용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들 개개인이 다른 모든 구성원들에 상호 의존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교회를 한 몸에 비교한다(로마서 12:4-5을 보라).

로마서 12장 6-8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신령한 은사들은 발휘될 때 주(主) 안에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세울 은사들이다. 어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언할 수 있었고, 따라서 주(主)께로부터 오는 말씀들을 모두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심령들을 부유케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단함은 떨어지지만, 가르치고 이끌고 격려하는 것과 같은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은사들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인정이 많아서 가장 필요한 때 자비와 동정을 베풀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드물게 세속적인 재물의 복을 받고 베푸는 은사를 가질는지 모른다. 목회사역의 훈련과 전 세계적인 복음전도와 같은 일들을 후원함으로써 그들은 지극히 중요한 목회사역을 제공하며 그리스도의 전신(全身)을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3.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첫 번째에 놓는다.

사랑은 사람이 자기 자신 위에 다른 사람들의 필요들과 소원들을 놓을 수 있을 때 그것의 정점에 이른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당신 자신을 위하는 것만큼 당신의 이웃을 위해 동일한 종류의 사랑을 가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위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동일한 양(量)만큼의 사랑을 가져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그분의 말씀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더 많은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무엇보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의 바로 그 목숨을 버릴 수 있을 때이다(요 15:13).

이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사랑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반드시 요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의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포기하도록 분명히 요구한다. 우상들에게 바쳐진 고기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면서 바울은, 고기 먹는 것이 누군가를 해롭게 하고 있다면, 그것을 철저하게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전 8:13).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과 형제들을 위해서 무엇을 기꺼이 포기하는가?

만약 우리의 사랑에 거짓이 없다면,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첫 번째에 두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롬 12:10).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롬 15:1-3).

요한의 말씀들에서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하였다. 어떤 해(害)도 끼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도우며, 다른 사람들을 첫 번째에 둠으로써 사랑 안에서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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