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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0-12 11:50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실까?(요 1:1-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75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실까?
The Christ We Believe in
http://kccs.pe.kr/srmn436.htm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며, 자신의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배신과 도전과 모독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시며, 저주받아 죽어 마땅한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주기로 예정하시고,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기로 결정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통해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방법들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 외아들 예수를 맏아들이 되게 하신 것도 그렇고, 죄 범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외아들 하나님이 동정녀를 통해서 육신을 입게 하신 것도 그렇고, 마구간에서 태어나 목수가 되게 하신 것도 그렇고, 소외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의 친구가 되게 하신 것도 그렇고, 학식이 거의 없는 천한 자들을 제자 삼게 하신 것도 그렇고, 결국에는 고문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토굴에 묻히게 하신 것도 그렇고, 무덤에서 일으켜 하늘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게 하신 것도 그렇습니다. 예수와 관련된 이 모든 것들은 참으로 역설적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신 아주 특별한 방법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해주는 분이십니다. 예수가 누군가를 알면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처럼 예수는 본래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셨고, 사람들의 빛과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그러나 세 인격체로 존재하십니다. 한 분 하나님 속에 아버지의 인격체와 아들의 인격체 그리고 성령의 인격체가 계십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뿐인 태양이 광선과 빛과 열을 함께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광선은 본래 보이지 않습니다. 빛이 보이는 것은 광선의 반사로 인한 것입니다. 반사체가 없는 우주공간은 캄캄합니다. 지구에 밤이 찾아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반대편이 광선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광선은 보이지도 않지만 직진만합니다. 그래서 광선이 가서 닿는 지구의 반대편은 반사로 인해서 빛이 비취지만, 그 반대편에는 광선이 닿지 못하기 때문에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밤에 별들을 볼 수 있는 것은 태양광선이 아주 멀리 있는 별들에 반사되어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달은 지구 가까이서 움직이기 때문에 달이 뜬 밤에는 다른 별들보다 크게 볼 수가 있고, 희미하게나마 사물을 식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빛에서 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광선이 물체에 닿을 때 굴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광선처럼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광선의 반사에 해당됩니다. 보이지 않던 광선이 물체에 반사될 때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예수라는 특별한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를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빛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고자 하면, 예수가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혀주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맏아들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본디 하나님의 외아들이었으나 이제는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본디 하나님께는 외아들만 있었으나 이제는 많은 자녀들을 두게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비록 지금은 우리가 여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살지만,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 우리 모두는 홀연히 변모하여 신령하고 영광스런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한 때 하나님의 외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적고 있고, 요한일서 4장 9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십니다. 로마서 8장 29절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1장 6절은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외아들’과 ‘맏아들’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외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하나뿐이라는 뜻이고,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여러 아들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의 첫 소절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하고 부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예수는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란 엄청난 선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된다는 대 선언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 선언은 역대 유명 인사들이 말한 그 어떤 명언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록들 가운데 몇 가지만을 상기시켜 본다면, 아브라함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의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다.” 윈스톤 처칠의 “승리를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이다. 내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뿐이다.”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마르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다.”와 같은 유명한 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아무리 유명하다할지라도 예수의 이 위대한 선언,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보다 더 중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믿는 자들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롬 8:15).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고, 로마서 8장 16절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 철학자(Cynicist) 디오게네스가 ‘개 같은 인생’(Cynicos Bios)이란 말을 했듯이, 우리 같이 천한 인간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 주기도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같이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은혜 중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빌립보서 2장 5-11절의 말씀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포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성장한 다음에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목수가 되었습니다(요 1:14). 그러나 그는 곧 목수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예언자의 일을 하셨습니다. 예언자로서 예수는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병자들을 고치셨으며, 약자인 민중의 편을 드셨습니다(마 11:19). 그러시다가 당대의 정치종교지도자들의 눈 밖에 나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신 후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통을 친히 다 겪으신 것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다 버리셨고, 낮고 천한 자들과 동일한 신분을 취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예수의 특징이 있습니다.

넷째,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다섯째,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부활의 첫 열매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덤에 갇힌 예수를 우리를 위해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이 예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외아들의 신분에서 맏아들의 신분이 되신 것처럼, 부활에 있어서도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줄줄이 그분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예수는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 우편보좌에 앉으셔서 찬양과 예배를 받으십니다(막 16:19). 이 또한 마지막 때에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통해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방법들은 우리 인간의 상식을 뛰어 넘는 것들입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 외아들 예수를 맏아들 되게 하셨고, 죄 범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외아들 하나님이 동정녀를 통해서 육신을 입게 하셨고, 마구간에서 태어나 목수가 되게 하셨고, 소외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의 친구가 되게 하셨고, 학식이 없는 천한 자들을 제자 삼게 하셨고, 끝내는 고문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으며, 토굴에 묻히게 하셨고, 무덤에서 일으켜 하늘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해주는 분이십니다. 예수가 누군가를 알면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맏아들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 죽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부활의 첫 열매되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