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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04 21:46
여성목사 합당한가?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924  
이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보완하였습니다. 추가된 내용은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목회자를 보는 입장에 관한 추이적 관점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미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 하실지라도 다시 한번 더 읽어 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여성목사 합당한가?"는 여성 목사의 당위성 여부를 유대교적, 성서적, 교회사적,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추이적 관점에서 살펴본 글입니다. 아래아 한글 2007로 작성하였습니다.


여성목사 합당한가?

조동호 목사(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차례

1. 유대교적 관점
2. 성서적 관점

1)제도적 관점
2)구원론의 관점

3. 교회사적 관점
4.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추이(推移)적 관점

1) 19세기

(1) 목회직에 대한 알렉산더 캠벨의 견해
(2) ‘목사’(섬기는 자, Minister) 체제의 확립
(3) 19세기 여성 목회자들


2) 20세기

(1)그리스도의 제자들/그리스도인의 교회
(2)그리스도의 교회들
(3)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결론

여성 목사가 과연 합당한가? 성서나 역사에서 그 당위성이 확보되고 있는가?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서의 추이는 어떤가?

1. 유대교적 관점

유대교 성전에는 여성 목회자가 없었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토라에 실린 613개의 계명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성전(성막)에서 섬기라는 계명을 주시지 않았다. 둘째는 성전의 일이 여성이 하기 어려운 거친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전의 일에는 제물을 도살하고, 가죽을 벗긴 후 각을 뜨고 내장과 내용물을 치우는 일이 포함되었다.

유대교 회당에서도 여성에게 직책이 주어지지 않는다. 유대교 회당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여성과 13세 이하의 아이들은 회당의 회원으로 관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의 개혁주의(진보주의) 유대교인들을 제외하고는 여성과 13세 이하의 아이들은 남성들과 함께 본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본당과 통하는 별관에 따로 모인다. 또 여성이 회당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나 기도회에서 베라코트(특히 쉐모네 에스레이)의 암송과 토라 낭독은 공동체를 위한 의무, 즉 하나님의 계명으로 보지 않고 자발적인 것으로 본다. 따라서 여성은 기도회를 인도할 수 없다. 유대교인들의 회당예배는 제사예배가 아니고, 성전시대에 성전에서 봉헌되었던 제사예배의 횟수만큼 갖는 기도회 또는 베라코트의 암송을 위한 모임이다.

유대교에서는 여성들이 지켜야할 계명이 남성들의 것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기도회에서의 여성들의 제한적인 역할을 여성차별로 보지 않고, 보상의 차원으로 본다. <“The Role of Women,” http://www.jewfaq.org/toc.htm>

사도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상반절)는 권면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도록 한 것은 당대의 그리스문화를 적용했기보다는 토라에 실린 613개의 계명에 여성 사제직에 관한 계명이 없다는 유대교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하반절)에서 바울이 율법을 거론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2. 성서적 관점

1) 제도적 관점

구약성서시대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시대에도 여성에게 성직이 주어지지 않았다. 유대교 성전을 섬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남성들이었다.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장로들과 집사들)은 모두가 남성들이었다. 그렇다고 여성들의 영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사시대에 드보라와 같은 여성 지도자가 있었듯이, 신약성서시대에도 유력한 여성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터로 추정되는 유적지를 므깃도(Megiddo)에서 발견하였다(2005년 11월 5일). 이 교회당은 3세기 중반부터 4세기 초경, 극심한 기독교박해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of the god, Jesus Christ)를 기념하여 세워진 이 교회당은 한 로마관리와 아케투스(Aketous)란 이름의 한 여성의 헌금으로 지어졌다. 이렇듯 교회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은 고금을 막론하고 컸다. 아굴라의 부인 브리스길라(Priscilla, 롬 13:3)는 에베소 교회의 유력한 일군이었고, 바울의 추천을 받았던 뵈뵈(Phoebe, 롬 16:1)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이었으며, 루디아(Lydia)는 바울이 의지했던 빌립보 교회의 큰 일군이었다. 이들은 모두 바울에게 목숨이라도 낼 줄만큼 헌신적인 일군들이었다.

뵈뵈의 직책이 “교회의 일군”이었는데, 여기서 ‘일군’은 ‘디아코노스’이다. ‘디아코노스’는 ‘집사’ 또는 ‘일군’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쓰이는 범위가 넓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장로들도, 집사들도 모두 ‘디아코노스’였다. 이 용어를 ‘집사’로만 생각해서 뵈뵈를 여집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만일 뵈뵈가 정말 집사였다면, 집사도, 개신교를 제외하고는, 역사적으로 낮은 성직이기 때문에 뵈뵈를 성직자로 볼 수 있게 만든다. 여성이 집사와 장로직에 올랐다는 기록이 희박한 것이 사실이나 주후 112년경에 소 플리니가 트라쟌 황제에게 쓴 편지에서 비두니아 지역의 두 명의 여성 집사를 언급하였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여성 동역자들이 장로(목사)로 안수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성서는 장로(감독=목사)의 자격자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할 것과(딤전 3:2)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할 것을(고전 14:34) 지시하고 있어서 여성 목사의 당위성을 찾기가 녹록치 않다. 바울은 장로의 기능을 두 가지로 언급하였는데, 감독자(Overseer)의 기능과 목사(Shepherd)의 기능이었다(행 20:28). 이 기능이 여성들에게 주어졌다는 신약성서의 증거는 희박하다.

한 가지 주목해야할 것은 신약성서시대의 예배당 구조와 조직이 유대교 회당의 것과 거의 같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처음 교회를 세운 교인들과 지도자들이 대부분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에 깊숙이 밴 유대교적 전통과 사상과 관습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독교의 발뒤꿈치를 붙들고 늘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신약성서에 충분한 자료들이 확보되어 있다.

2. 구원론적 관점

신약성서에 드러난 제도적 관점에서는 여성 목사의 당위성이 확보되지 못한다. 이것은 환원이상의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인 ‘진리,’ ‘신약성서교회,’ ‘사도전통’ 또는 ‘옛 질서’에로의 환원을 외치는 호소에 여성 목사가 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구원론적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독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세심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이 부분이 환원이상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인 운동,’ ‘연합’ 혹은 ‘일치’를 외치는 호소와 맞물려 여성목사의 설 자리를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바울의 사상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갈 3:28)는 것이었다. 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신”(고전 12:13) 한 몸이란 것이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원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종족의 차별이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에베소 3장에서는 이 사실이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9절)이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8절)이라고까지 하였다. 구원에 차별이 없는데,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는”(행 6:4) 목회사역에 남녀노소의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환원운동에서 ‘그리스도인 운동,’ ‘연합,’ 혹은 ‘일치’ 운동은 분열의 벽, 인종의 벽, 남녀의 벽, 신분의 벽, 계급의 벽을 허물고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큰 용광로에서 녹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분열을 획책하는 인종의 벽, 남녀의 벽, 신분의 벽, 계급의 벽은 허물어져야 한다. 그때 비로소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유롭게, 히브리서 4장 16절의 말씀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은혜의 보좌’란 성막 지성소의 법궤 뚜껑을 일컫는 시은소를 두고 한 말이다. 히브리서 6장 19-20절을 보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하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휘장을 찢고 앞서 지성소로 들어가셨고, 성도의 희망도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그리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을 보면, 그 길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이요,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다”고 하였다. 또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을 지상 성막의 법궤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설명한 이유는 지상 성막이 하나님의 지시로 지어진 하늘 성막의 모형과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 막는 성막휘장은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인위적인 장벽을 상징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찢기신 것은 ‘휘장’이란 장벽이 허물어진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네 개의 뜰과 두 개의 성소가 다섯 개의 벽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크고 넓은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유대인 여성의 뜰,’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유대인 남성의 뜰,’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인 ‘제사장의 뜰’ 또 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놓인 ‘성소,’ 다시 휘장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법궤가 놓인 ‘지성소’가 있었다. 이 유대교 성전에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인종의 벽’이 있었고, 유대인 여성들과 남성들 사이에 ‘남녀의 벽’이 있었으며, 유대인 남성들과 제사장들 사이에 ‘신분의 벽’이 있었고, 제사장들과 대제사장 사이에 ‘계급의 벽’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벽은 하나님의 영역인 성막 안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뜰의 장벽들은 다 유대교가 만들어낸 인위적이고 권위적인 벽들이다. 이 모든 벽, 심지어 신성의 상징인 성막휘장까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 육신을 깨뜨리심으로써 다 허물어졌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 남녀, 신분,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 법궤 앞 시은소 앞으로 나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방인들인 우리조차도 아무런 거리낌이나 방해물 없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 지성소 은혜의 보좌 앞으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더 이상 대제사장도, 제사장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차별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신분이 있고, 계급이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여성 목사의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남녀노소민족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데, 여성이라고 해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인 제사장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성만이 목사가 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바로 이 히브리서의 만인제사장설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감히 누가 막겠는가?

3. 교회사적 관점

기독교시대에서도 종교적인 성직이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성직자들은 모두 남성들이었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성전시대의 제사장급인 사제(장로)들과 레위인급인 부제(또는 보제=집사)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장로(사제, 감독, 주교)들과 집사(부제, 보제)들은 모두 사제들(목회자들)이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여성 장로(목사)나 집사가 없다. 여성 장로와 집사를 두지 않는 유대교의 전통이 기독교에서도 그대로 답습된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와 유대교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큰 특징은 ‘목사’와 ‘랍비’가 장로들의 목양(목사)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목사’는 16세기 마르틴 부쳐가 ‘사제’(장로)를 바꿔 부른데서 생긴 것이고, 신구약성서시대의 랍비는 목회자가 아니었으나(성서시대에는 회당에 목회자가 아예 없었음), 오늘날의 랍비는 목회자이다. 성공회나 루터교회와 같이 전통교회의 틀이 남아 있는 일부 개신교회들을 제외하고는 오늘날의 대다수 개신교회들의 ‘목사’ 또는 ‘목회자,’ 그리고 유대교회에서의 ‘랍비’는 성전시대의 ‘제사장’과 전통교회들의 ‘장로사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능을 갖게 되었다.

개신교회와 유대교회의 예배에서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의 예배가 더 이상 제사예배가 아니란 점이다. 유대교회의 예배는 그 자체가 성전예배를 대신하는 ‘기도회’모임이다. 개신교회의 주의 만찬도 가톨릭이 행하는 ‘제사(미사)’가 아니라 ‘기념’과 ‘회상’의 성례이기 때문에 ‘사제’란 개념이 전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성전시대의 제사장이란 개념과 기독교회의 목사와 유대교회의 랍비는 연결성이 없다. 더욱이 종교개혁의 큰 특징은 ‘만인 제사장설’이다. ‘만인’ 속에는 남녀노소가 다 포함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목사는 제사장적 성직개념보다는 기능적인 전문직의 개념이 강하다. 여기서 기능적 전문직이란 사도들이 언급하였듯이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는 것”(행 6:4)을 말한다.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는” 이 특정 사역에 여성들이 제외되어야할 어떤 특별한 사유를 현대사회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목사’ 또는 ‘사제’를 함축하는 ‘Reverend,’ ‘Pastor’와 같은 용어를 쓰지 않기로 처음부터 작정하였고(발톤 스톤, “스프링필드장로회의 유언서”), ‘집사’ 또는 ‘일군(섬기는 자)’를 뜻하는 'Minister'를 사용하고 있다. 회중주의를 표방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의 목회자는 성도를 섬기는 일군이지 ‘사제’가 아니다. 여성 목사안수를 크게 문제 삼는 데는 목사안수를 사제직으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초기 지역교회들의 직책에는 유대교 회당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가 있었다. 복수의 장로들과 집사들이 그것들이다. 장로들은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의 붙박이 목회자들이었고, 집사들은 봉사자들이었다. 그 밖의 사도들, 교사들, 전도자들, 예언자들은 떠돌이(순회) 목회자들이었다. 떠돌이 목회자들 시대가 끝난 2세기 초부터는 지역교회들이 붙박이 목회자들인 장로들의 지도아래 전적으로 놓이게 되었다.

초대 장로들 가운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사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행 15:1-6, 22-23; 벧전 5:1; 요이 1:1; 요삼 1:1).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바울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였다고 했는데(행 14:23),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장로를 택하는 유래가 된 것이다.

이들 장로들의 임무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당부하신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서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 할 것이니라”(딤전 5:17). 이 두 구절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장로의 임무는 양무리를 치고 감독하는 목양과 치리와 교육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발전된 것이 사제와 부제(보제)직이다. 역사상에 나타난 장로에 관한 기록이나 변천을 보면, 장로 직책은 평신도의 직책이 아닌 사제 계급으로 발전된 사실을 살필 수 있다. 천주교회, 영국 성공회, 감독교회, 미국 감리교회, 독일 개신교회들에서 장로는 사제 계급인 정회원 목사를 말한다. 사제(priest)라는 말도 장로(presbyter)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장로사제의 발달은 기독교예배가 ‘미사’ 곧 제사예배로 발전된 때문이었다. ‘미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말한다. 이것을 ‘피 없는 희생제사’라고 말한다. 초기 기독교에서 제사예배의 발달은, 피의 희생 제사를 바치고 있던 이방인들이 성전도 없고 희생물도 없는 기독교예배를 무신론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정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주교의 권한이 커진 4세기이후 기독교예배는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빠른 속도로 축성에 의한 성체변화의 신학과 제단과 제물과 제사장의 개념화가 이뤄졌다. 이것이 붙박이 목회자였던 장로가 사제가 된 배경이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사도들, 교사들, 전도자들, 예언자들과 같은 떠돌이 목회자들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였고, 이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지역교회들이 전적으로 지역교회 장로들에 의해서 생존되어 왔으며, 2세기 초에 시리아 안디옥 교회의 장로였던 이그나티우스가 안디옥 교회 장로회의 당회장 격인 감독(혹은 주교, 목사에 해당됨)의 위치에 서면서 오늘날의 목사 개념의 목회자로 변천되어 왔다. ‘장로사제’를 ‘목사’란 말로 바꾼 사람은 종교 개혁가 마르틴 부쳐(Martin Bucer/1491-1551)였다. 그는 또 ‘미사’(제사예배)를 ‘주의 만찬’으로, ‘제단’을 ‘주의 만찬상’으로 바꾼 개혁가였다. 이로부터 개신교회에는 제단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제단이 없다는 것은 사제(제사장)가 없다는 뜻이다. 사제가 없다는 뜻은 여성 목사가 여성 제사장을 계명으로 주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계명(토라)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남녀노소신분계급종족의 벽을 허물어버리셨다.

교회사는 우리에게 목사가 사제 계급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혀 준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이후 한 때 사제였던 장로 직분을 평신도 직분의 교회지도자로 바꿔놓았고, 떠돌이 목회자의 바통을 이어받은 목사를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전념하는 전문인으로 바꿔놓았다. 목사가 더 이상 사제(성전 예배 때의 제사장)직급이 아니란 점을 기억해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개신교역사에서 여성이 목사가 되지 말아야할 이유를 찾을 수 있겠는가?

사도전통을 따라 옛 질서를 회복하려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바울 사도의 지시를 거역하기가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바울의 이 언급이 무질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고린도교회에 “주의 명령”(고전 14:37)으로 지시한 내용이었지만, 유대교적 전통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4.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추이(推移)적 관점

1) 19세기

19세기라 함은 스톤-캠벨운동이 시작된 1800년대, 즉 스톤-캠벨운동이 세 개의 파로 분열되기 이전을 말한다. 이 시기에 이미 스톤-캠벨운동에서는 소수이긴 하지만 여성목사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다른 교단들, 예를 들면,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 등에서는 여성목사가 배출되지 않고 있었다.

스톤-캠벨운동에서 교회에서의 여성의 고유한 지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진 것은 1890년대 초였다. 이때 다른 제반 문제들, 예를 들면, 적절한 성서해석과 적용의 문제, 교회정치조직에서의 문화의 역할, 목회자(evangelists) 수급의 심각한 필요, 설교자와 목회자의 권위적 기능에 대한 문제들이 함께 논의되었고, 찬반(贊反)에 관한 토론이 1891년부터 1893까지<크리스천 스탠더드>(Christian Standard)지에 집중적으로 실렸다.

(1) 목회직에 대한 알렉산더 캠벨의 견해

알렉산더 캠벨은 여성목사 안수를 좋아하지 않았고, 바울의 가르침에 순종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벨은 목회와 목사직에 관한 성격을 사제직 혹은 성직자(clergy)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캠벨은 <크리스천 뱁티스트>(Christian Baptist)를 발행한 1820년대 동안 ‘성직자’(clergy)에 대항하는 전쟁을 치렀다. 캠벨은 감독들을 장로들 혹은 목사들과 동일개념으로 보면서 감독의 의무들을 가르치고, 교회의 모든 집회들에서 사회를 보고, 회중의 구성원들을 목양하며, 징계문제들(회중의 도덕적 감독)에서 통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캠벨은 감독의 독특한 의무들에 관한 그의 설명에서 ‘설교하다’란 말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캠벨에게 있어서, 설교는 기독교 복음을 단순히 나누는 것이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였다. 성구를 해석하거나 기독교 믿음(소위 ‘설교’라 불리는 것)을 해석하는 것은 캠벨이 감독의 의무로 이해한 가르치는 것이었다. 주의 만찬의 집례는 회중의 모든 집회들에서 ‘사회를 보는’ 것에 포함되어졌다. 캠벨에게 있어서 설교는 남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은 목사와 장로들이 할 임무로 보면서 주의 만찬의 집례자를 사회자의 개념으로 보았다.The Encyclopedia of the Stone-Campbell Movement(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4)>

실제로 미국의 그리스도인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은 대부분 주의 만찬의 집례를 장로와 집사들이 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에서는 고용 목회자들이 아예 주의 만찬 집례에서 배제되고 있다. 회중 가운데 침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의 만찬을 집례할 수 있다.

캠벨에게 있어서 감독들과 장로들이 회중(개교회)의 붙박이 목회자였다면, 순회 목회자였던 전도자들(evangelists)은 회중이나 회중들의 단체의 감독아래서 그들에게 안수를 받고 그들로부터 파송되어 복음을 선포하고, 침례를 베풀며, 회중들을 조직하고, 훈련(징계)을 관장하며, 회중들이 장로들을 뽑고, 전도자의 감독 없이도 기능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또 캠벨은 감독들과 장로들이 연소하거나 초심자들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 반면에, 사도들을 모델로 삼았던 전도자들은 회중이나 회중들의 감독아래 있으므로 연소한 자도 가능하다고 보았다(딤전 4:12).<Ibid.>

알렉산더 캠벨은 ‘성직자’(clergy)에 대항하여 전쟁을 치렀던 만인제사장설의 주창자였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회와 능력이 닿는 대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어느 그리스도인이나 “상황들이 그것을 요구할 때 모든 사람들은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권리로써 설교하고, 침례를 베풀며, 주의 만찬을 베풀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감독직에 오를 자격자가 아무도 없는 회중들 속에서는 ”가장 재능 있고, 가장 성품이 좋은 사람들이 임시로 선출되어 어린 양떼의 공중예배와 덕 세움과 훈련(징계)을 관장해야 했다“고 제시하였다. 캠벨은 주의 만찬의 매주 시행의 의무를 논하면서 감독의 자격들에 적합한 회원들이 아무도 없을 때 ”두 명의 선임회원들“을 뽑아서 그들의 모임들에서 사회를 보고 주의 만찬을 베풀게 했던 한 회중(교회)의 예배를 추천한 바가 있다.<Ibid.>

캠벨이 이해한 회중의 목회자는 회중 내에서 선출된 다수 감독과 장로들이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목회의 일을 수행할 감독들이나 장로들이 거의 없었다.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회중들은 그들 가운데 상주하면서 목회 기능들을 전담할 전도자들을 1840년대부터 초빙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스톤-캠벨운동의 리더십에 고용(유급) 목사 혹은 가르치는 목사가 등장하게 되었다.<Ibid.>

그러나 정착하여 보수를 받는 전문 목회자의 등장은 스톤-캠벨 운동의 목회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들을 가져왔다. 새로운 전문 목회를 수용하기 위한 기존 목회 체제를 조정하는 것에 관해서 두 개의 상방된 견해들이 동시에 발전했다. 논의가 1890년대에 뜨겁게 달아올랐고, 지속되었다. 맥가비(J. W. McGarvey)와 윌키즈(L. B. Wilkes)가 목회자는 원칙적으로 고용된 전도자었다는 견해를 지지하였다. 이 견해에 따르면, 목회자들은 장로들의 부름을 받고 그들의 엄격한 감독아래서 섬겼던 정착 전도자들이었다. 전문 목회자는 장로들의 감시와 지배에 분명히 복종하였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의 입장을 대변한다.

아이작 에레트(Isaac Errett)와 게리슨(J. H. Garrison)과 같은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들에 의해서 지지된 반대의 견해는 목회자가 그 자신이 장로였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목회자는 주도적인 장로요, 동등한 사람들 가운데서 첫째였다. 장로들은 조언을 하거나 주의 만찬 상을 섬기고 목양을 하곤 하였다. 목회자는 장로로서 일차적으로 가르치고 설교하는 책임을 수행하곤 하였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인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과 그리스도인의 교회(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의 입장을 대변한다.Ibid.>

(2) ‘목사’(섬기는 자, Minister) 체제의 확립

목회직들에 대한 캠벨의 이해는, 스톤-캠벨운동에 끼친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곧 바로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대부분의 회중들에서 목사직에 임무들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다수는 고사하고 한 사람도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장로들이 선출되고 장립(안수)되었지만, 그들은 종종 거의 가르치지 않았고, 그들이 행한 노력들에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가르치는 목회(teaching ministry)에 대한 갈망에 응답해서 회중들은 그들 가운데 상주하면서 목회 기능들을 전담할 전도자들을 1840년대에 초빙하기 시작하였고, 때로는 젊은 대학졸업생들이 초빙되기도 하였다.

회중 밖에서 ‘상주 설교가’(resident preacher)를 초빙하는 것은 캠벨의 견해에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캠벨의 견해는 회중의 리더십은 회중의 멤버십 내에서 선출되는 것이었고, 또 그것은 남북전쟁이후 시대에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의 지도자들이 된 그 운동의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물음들을 야기했다. 톨버트 팬닝(Tolbert Fanning)은 이 진전이 그 중요한 사역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의 전도자의 직책을 빼앗을 것이고, 고용 목사가 그 구성원 자신들이 하도록 되어 있는 모든 활동들을 수행할 경향을 갖기 때문에 회중 내의 재능의 발전을 방해할 것이라고 믿었다. 팬닝의 제자, 데비드 립스콤(David Lipscomb)은 급여를 주는 목사들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회중 밖에서 초빙하는 것만은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장로직은 그것이 받아야 마땅한 만큼 영광을 받지도, 존경을 받지도, 지지를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악(惡)은 순회 목사들로 장로들을 밀어내는 것으로는 결단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고 그는 썼다. 1905년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설교자요, 전도자이며, 선교사이다.”는 말도 했다.

새 진전을 받아드렸던 그 운동의 보다 더 큰 부류에게는 (적들의 비판대로) “한 사람 체제”(one man system)가 캠벨 체제에 대한 진전은 아니고, 교회들의 특성에 의해서 필요가 생긴 실천적 한계였다. 아이작 에레트(Isaac Errett)는 다음과 같은 글로써 많은 사람들을 대변한다.

많은 교회들의 불완전한 상태 속에서 설교자와 교사와 치리에 있어서 장로들과의 협력자로 한 사람(man)을 고용하는 것은 필요한 일로 정당화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드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자. 성서가 의도하는 것과 같은, 이를테면, 그들의 업무가 가르치고 설교하고 치리하는 것인 다수 장로들 혹은 감독들, 곧 힘(세력)의 조직을 좀 더 완전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모든 교회들의 목적과 야망이 되어야 한다. - 그들 사이에서 그들의 수고를 쪼개는 것이 교회의 유익을 가장 잘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봉사들에 보답하였다... 세상일들에 빠져 있고, 교회들을 감독할 수 있지만, 이따금씩 할 수 있는 장로들은 신약성서에 기술된 장로들이 아니다.

한 회중이 회중 밖에서 상주할 설교자를 초빙하는 것이 정당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것이 그 새로운 관행이 만든 유일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 새로운 체제를 수용했던 자들에게는 다른 문제들도 불쑥 나타났다. 무엇이 목회이며, 이 보직을 채운 사람의 직책이었는가? 그 같은 사람을 장로로 보아야했는가, 혹은 전도자로 보아야했는가? 그 보직을 가진 사람의 나이가 쟁점의 대상이 되었는가? 제자들은(스톤-캠벨운동의 구성원들) 이 쟁점을 19세기의 삼분의 일 후반기 동안 토론하였다.

그 새로운 보직을 가진 젊은 사람을 전도자로 봐야하며, 장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앞장서서 주창한 사람은 존 W. 맥가비(John W. McGarvey)였다. 맥가비는 스톤-캠벨운동의 초기 신학교인 켄터키 주 렉싱턴 소재 성서대학(The College of the Bible)의 주도적인 인물이었다. 맥가비에게 전도자의 일은 한 가지를 제외하면 감독의 일과 동일한 것이었다. 전도자들과 감독들 모두에게 공통의 일이었던 설교와 가르침에 더해서 감독들은 교회를 치리(교회에서 징계를 관장)하도록 되어 있었다. 전도자들은 교회를 치리하도록 되어 있지 않았고, 교회의 장로들 혹은 감독들의 권위아래 있었다. 맥가비는 성서가 젊은 사람이 전도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만, 장로는 완숙한 사람이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장로와 전도자의 직책들 사이의 구별을 설명하였다.

그 새로운 보직을 가진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례들에서 장로로 간주돼야한다는 견해를 앞장서서 주창한 사람은 <크리스천 스탠더드>(Christian Standard)의 편집자인 아이작 에레트(Isaac Errett)였다. 1867년 그는 “그들 한가운데서 한 교회로부터 설교자와 교사로 선택된 사람은 누구라도 교회의 장로들이나 감독들의 한 사람으로 확실히 안수를 받아야 한다”고 썼다. 젊은 사람은 나이 한 가지 때문에 장로직에 부적합하다는 반대에 대한 응답에서 에레트는 ‘장로’라는 말이 한 때는 ‘나이든 사람’을 의미했지만, 직무에 사용되어왔고, 지금은 단지 가르치고 징계를 관장할 자격을 갖춘 사람을 지적한다고 주장하였다. 에레트는 일부 젊은 설교자들이 당분간 장로들의 지도에 순종해야한다는 것을 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장로직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자마자 장로직에 안수되어져야 했다. 에레트에게 그 같은 사람을 부르는 적절한 호칭은 ‘목사‘(장로, pastor)였다. 비록 에레트가 회중의 설교자를 ’목사‘(장로, pastor)로 종종 언급하였지만, 그는 이 호칭을 장로들과 다른 별개의 직책을 지정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목사‘(장로, pastor)는 목회사역에 전무(專務)하는 장로였다. 다수 장로들이나 감독들의 필요성을 강조한 립스콤과 맥가비에 대조적으로 에레트는 만약 ’목사‘(장로, pastor)가 목회직을 갖기 위한 자격을 갖춘 회중의 유일한 구성원이었다면, 성서는 교회가 그 한 사람 목사(장로, pastor)에 의해서만 치리되고 교육되어야 할 것을 허락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스톤-캠벨운동의 교회들은 회중 내의 목회 책무들을 담당하기 위해서 회중 밖에서 초빙된 사람이 전도자였는지 혹은 장로였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결코 투표에 부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같은 보직을 취한 사람을 ‘설교자’(preacher) 혹은 ‘섬기는 자’(minister)로 언급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맥가비는 ‘섬기는 자’(minister)란 말을 좋아하였다. 그 말의 문자적인 뜻이 종(servant)이었고, 치리자(ruler)가 아니었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맥가비 견해는 그 운동 속에서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았고, 그 영향력이 주의 만찬의 집례를 회중의 회원권 내에서 뽑힌 장로들이 담당하는 20세기에까지 이르렀다. 목사(섬기는 자)는 설교하고 기도할 수 있었지만, 주의 만찬의 집례, 곧 역사적으로 감독이 떠맡아온 목회적 역할에서 배제되었다.

설교자와 목사(섬기는 자)의 등장은 교회 모든 임원들의 장립에서 안수를 경시하는 경향이 뒤따랐다. 이 진전에 대한 신학적 근거는 펜들톤(W. K. Pendleton)에 의해서 이미 1850년에 안수가 장립에 필요치 않다는 견해로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 견해는 또 맥가비(J. W. McGarvey)에 의해서 “안수(장립)하는”(ordain) 것은 단지 “지명하는”(appoint) 것을 의미하였고, 비록 이것이 신약성서에서 기도와 금식 후 이뤄지는 안수에 의해서 시행되어졌지만, 그것은 단순히 임직하는 것이었고, 생략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주창되어졌다.Ibid.>

참고로 목사안수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은 1964년 “주(州) 또는 지역위원회(state or area Committee) 혹은 목회에 관한 위원회(Commission on Ministry)의 지도아래서 거행되어야하는” 것으로 보았고, 1971년 승인된 총회문서에서는 목사 안수 후보자들이 소속 교회를 포함한 제자파 소속 회중 혹은 회중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하며, 지역(지방회)의 대표들, 가능하다면, 총회의 대표들을 포함한 추천 회중 혹은 추천 회중들이 안수식에 동참해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안수(장립)가 “지역(지방회)의 승인권과 지도권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언급할 필요가 생긴다. 첫째, 한 회중 안에서 임명되는 감독과 장로와는 달리 목사는 회중 밖에서 부름을 받고 목회기능들을 전임하는 새로운 직책, 곧 섬기는 자(minister)의 직책을 가진 자로 보았다. 따라서 목사의 직책은 한 회중의 직책이 아니며, 캠벨이 말한 장로나 전도자가 아니라고 본다. 목사는 처음에는 한 회중을 섬기지만, 그 다음에는 다른 회중을 섬기기 때문에 목사는 한 회중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the whole church, 총회)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안수는 한 회중의 장로권아래 있지 않고, 지역(지방회)의 승인권과 지도권아래 있다고 보는 것이다.<Ibid.> 둘째, 목사의 직책에 대한 제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디모데전서 3장 2절에 언급된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와 5장 17절에 언급된 ”잘 다스리는 장로들“과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한 회중 안에서 임명되는 감독과 장로들에 관한 말씀이 되고, 1840년대 이후 회중 밖에서 회중으로부터 초빙된 전도자 또는 목사(섬기는 자)에 관한 직접적인 말씀은 아닌 게 된다. 따라서 목사가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게 됨으로 제자들에게는 여성안수가 문제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이나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목사가 한 회중의 장로권아래 있지 않고, 지역(지방회)의 승인권과 지도권아래 있다고 보는 견해에 반대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회중 밖에서 초빙되는 목사는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에서의 표준관행은 회중의 회원들이 신임 목사, 신임 장로들과 집사들을 선출하며, 그들을 안수하는 것은 장로들의 권한 아래 있다. 그러나 설교 목사들이 초빙하는 회중에 의해서 항상 안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모 교회에서 안수를 받으면 다른 회중들이 다시 안수하지 않고 이를 인정해준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에서는 공식적인 목회계급(order)을 결코 인정한 일이 없지만, 한 가지 곧 성직자들과 평신도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만큼은 온몸을 던져서 거부하였다.<Ibid.>

이상에서 보듯이 회중 내의 감독과 장로들에게 주어진 회중 내의 리더십의 문제, 곧 감독과 목양과 치리(징계)의 문제들을 제외한 나머지 목회적 섬김들, 곧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침례를 베풀고 주의 만찬을 집례하는 문제들에 있어서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는 만인제사장설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는 것”(행 6:4)이 목회자의 일이라면, 여성이 배제되어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목사가 감독이요 장로라는 입장에서는 회중 내의 리더십의 문제, 곧 감독과 목양과 치리(징계)권이 목사에게도 주어지지만, 감독이나 장로가 더 이상 사제나 성직(clergy)이 아니란 입장에서 보면, 회중 내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목사가 장로들의 감시와 지배아래 있는 고용 전도자이든, 그 자신이 주도적인 장로이든, 19세기 후반이후 목사는 유급 목회자이고, 전담 목회자이며, 전문 목회자이고, 고용된 목회자이다. 게다가 미국의 스톤-캠벨운동권에서는 목사의 호칭이 ‘섬기는 자’(minister)란 말로 자리를 잡았고, 캠벨의 사위로서, 베다니 대학의 학장을 지냈던 펜들톤과 진보신학에 맞서 싸운 보수신학의 보류였던 맥가비와 같은 석학들이 목사장립의 의미를 임직으로 보았으며, 안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점은 여성안수문제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미국의 스톤-캠벨운동권에서 주의 만찬의 집례권과 치리권이 장로들의 권한아래 놓여 있다는 점이다. 목사는 그야말로 기도하고, 말씀 선포하고, 침례 베풀고, 심방하는 일로 성도들을 섬기면 되는 것이다. 이 일에 나이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여성에게만 제한을 둘 뿐이다.

(3) 19세기 여성 목회자들

이런 제한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목회자 체제의 논의가 활발하던 19세기에 이미 스톤-캠벨운동권에서는 안수 받은 여성목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바버라 켈리슨(Barbara Kellison)는 아이오와 협의체 소속으로써 1862년에 출판된 팸플릿에서 자신이 설교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기술하였다. 마린다 레멀트(Marinda R. Lemert)는 <아포스톨릭 가이드>(Apostolic Guide)지의 기고가로서 잘 알려진 여성목사 안수 주창자였다. 메리 그라프트(Mary T. Graft), 메리 모리슨(Mary Morrison), 메리 오글(Mary Ogle)이 1815-1817년에 펜실베이니아에서 교회를 세웠다. 1828년 토마스 캠벨의 방문을 받고난 다음 교회이름을 ‘그리스도의 제자들’(Disciples of Christ)로 정하였다. 메리 스톡딜(Mary Stogdill)은 침례주례와 목사후보생 모집가로서 활동하였고, 1821년 캐나다 온타리오에 크리스천 협의회가 세워지는데 공헌하였다.

엘렌 그란트 거스틴(Ellen Grant Gustin)는 1873년 마이애미 크리스천 협의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고, 에미 프랭크(Emi B. Frank)는 1870년대에 인디애나에서, 메리사 가렡 터렐(Melissa Garrett Terrell)는 1867년 오하이오에서, 로라 갈스트(Laura D. Garst), 메리 아담스(Mary L. Adams), 조세핀 스미스(Josephine W. Smith)는 1883년 선교사역을 위해서 선교사총회(General Missionary Society)로부터 각각 목사안수를 받았다.

클라라 헤일 밥코크(Clara Hale Babcock)는 1888 혹은 1889년에, 제시 콜만 몬서(Jessie Coleman Monser)는 1891년에, 사디 맥코이 크랭크(Sadie McCoy Crank)는 1892년에, 베르타 메이슨 훌러(Bertha Mason Fuller)는 1896년에, 클라라 에스피 헤이젤리그(Clara Espy Hazelrigg)는 1897년에 각각 목사안수를 받았다.Ibid.)>

2) 20세기

(1)그리스도의 제자들/그리스도인의 교회

‘그리스도의 제자들/그리스도인의 교회’는 진보노선을 걷고 있다. 여성목사 안수에 가장 적극적이며, 미국대통령 바락 오바마의 취임식 뒤에 열린 전통적인 국가 기도회(National Prayer Service) 때에 설교를 맡은 목사가 바로 제자회의 총회장인 샤론 와킨스(Sharon Watkins) 여성 목사였다.

20세기 초반인 1931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에는 365명의 여성목회자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85명이 목사들이었다. 1952년에는 안수 받은 여성목사가 298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39명이 담임목사로 조사에서(United Church Women survey) 드러났다. 1972년에는 목사안수를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1퍼센트 미만이 여성이었으나 1990년까지 15퍼센트로 올라섰고, 9퍼센트(1984년에는 약 4퍼센트)가 담임목사 또는 단독목사로 조사되었으며, 39퍼센트가 부목사(1984년에는 약 33퍼센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목사들 가운데 22퍼센트가 여성으로 채워졌다.Ibid.>

1984년 통계에 따르면, 여성담임목사 또는 단독목사가 112명(전체의 4.2퍼센트)이었고, 부목사가 120명(전체의 32.8퍼센트)이었으며, 안수 받은 여성이 595명(전체의 10퍼센트)이었다. 1980년대 초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여성이 전체 학생의 삼분의 일을 차지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수가 절반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여성목회자의 수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Ibid.> 신학대학원 등록 여성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은 비단 제자회 뿐만 아니라, 타 교단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2)그리스도의 교회들

예배에서 악기 쓰는 것을 금(禁)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근본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이들 교회 소속 여성들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활동을 보였던 인물은 설레나 무어 홀먼(Silena Moore Holman, 1850-1915)으로서 ‘여성 크리스천 절제 연대’(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녀는 종종 <가스플 애드보게이트>(
Gospel Advocate)지에 기사를 실어 여성의 지도자 역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1906년 ‘그리스도인의 교회들’(독립파와 제자회 포함)과 갈라선 이후로 1960년대까지는 점진적으로 여성들의 대중적 지도자 역할이 이들 교회들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데이비드 립스콤(David Lipscomb)과 같은 지도자들이 교회에서의 여성의 활동을 강하게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립스콤은 <가스플 애드보게이트>(Gospel Advocate)지에서 바울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여성을 영멸(永滅)에로 인도할 것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이밖에도 무악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이유들로는 미국 남부지역을 휩쓴 강력한 근본주의 사상, 여성에 관한 성구들에 대한 알렉산더 캠벨의 문자적인 해석학적 접근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무악기 그리스도의 교회들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s)을 겪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이후부터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는 캠퍼스 사역자로 여성들이 고용되었으나 이들을 ‘목회자’로 부르지 않고, ‘여성 카운슬러’로 불렀다. 이후 여성들은 교육목회, 어린이목회, 청소년목회, 상담목회, 구제목회 등에 고용되었고, 종종 ‘목회자’(ministers)로 불렸다. 참고로 유악기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에서는 여성사역자들을 ‘디렉터’(directors)로 부르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최근에는 ‘목회자’(ministers)로 고쳐 부르는 추세이다.

1989년 '브루클린 그리스도의 교회'(Brookline, Massachusetts)는 교회사역의 모든 측면에서 여성의 대중적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진술을 주보뒷면에 부착하였다. 이 교회는 1987년에 두 명의 강단 목회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서 여성을 고용한 바 있다. 최근 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모든 측면의 사역을 담당할 목회자로 남편과 부인을 한 팀으로 고용하였고, ‘베링 드라이브 그리스도의 교회’(Bering Drive Church of Christ in Houston)와 ‘스탬포드 그리스도의 교회’(the Stamford Church of Christ in Connecticut)와 같은 다른 교회들도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확대시켰다.

여성을 고용하고 있는 교회들에 대한 통계자료가 무악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는 나와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공개토론과 세미나, 설교와 강의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여성들의 고용도 점증하고 있는 추세이다.Ibid.>

(3)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유악기 독립파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의 신학적인 입장은 복음주의이다. 몇 개의 통계자료들이 존재함으로 자료들을 중심으로 추이를 살펴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먼저, 1988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독립파 그리스도인의 교회들 가운데 약 10퍼센트가 여성 집사들을 두고 있었고, 그 수는 약 8천 명 가량이며, 약 1퍼센트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100여명의 여성 장로들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약 38퍼센트의 교회들이 960여명의 여성 목회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이들 여성 목회자들은 대부분 교육, 음악, 초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부목이나 원목으로 사역하는 여성 목회자들은 거의 없었다<Glenn M. Zuber, "Results of a 1988 Survey: Women as Deacons, Elders, and Ministers," The Christian Standard(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August 6, 1989), pp. 8-9.>

1997년에 발행된 <목회 주소록>(1997 Directory of the Ministry)에 의하면, 담임목사 또는 협력목사가 2명, 부목사가 17명, 교육목사(디렉터)가 29명, 청소년부목사(디렉터)가 30명, 유년부목사(디렉터)가 123명, 상담목사 7명, 캠퍼스목사 2명, 음악목사(디렉터)가 71명, 행정목사 12명, 여성전담목사 8명, 노인전담목사 5명, 대학의 교수목사 또는 행정목사 79명, 기타 18명 도합 403명으로 나타났다.

2001년에 발행된 <목회 주소록>(2001 Directory of the Ministry)에 의하면, 담임목사 또는 협력목사가 1명, 부목사가 56명, 교육목사(디렉터)가 31명, 청소년부목사(디렉터)가 87명, 유년부목사(디렉터)가 258명, 상담목사 14명, 캠퍼스목사 17명, 음악목사(디렉터)가 147명, 행정목사 1명, 여성전담목사 34명, 노인전담목사 8명, 대학의 교수목사 및 행정목사 154명, 기타 71명 도합 879명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36개주에서 11퍼센트의 교회들이 적어도 한 명이상의 여성목회자를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자료들이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는 여성목사안수에 대한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입장이 변하고 있는 추세란 점이다.Ibid.>

맺는 말

이상으로 여성 목사의 당위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현대사회에서 모든 분야에 걸쳐 여성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고, 또 그 추세를 빗겨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근본주의 노선을 걷는 몇몇 교단들을 제외한 복음주의 노선을 걷는 거의 모든 교단들에서는 이미 여성목사안수를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목사는 더 이상 사제(제사장)가 아니며, 제단도 없고, 기독교 예배가 제사예배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매주 주의 만찬을 성서적인 사도전통으로 알고 시행하고는 있지만, 가톨릭교회처럼 ‘제사예배’로 하지 않고, 기념과 회상 또는 기원과 감사와 친교로 하고 있다. 그 점에서 가톨릭이나 정교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신교회의 목사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는”(행 6:4) 일군들이다. 여기에 남녀노소의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장벽을 허무셨으며, 차별 없이 누구나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사제(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나아갈 새롭고 산길을 열어놓으셨다. 구원에도 차별이 없다. 하물며 주님의 일군이 되는 일에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