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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30 13:41
유대교인의 하나님과 이름들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677  

유대교인의 하나님과 이름들

조동호 목사(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1. 유대교인의 영성

고대 유대인들은 타 민족들이 갖지 못한 심오한 영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하나님은 타민족들의 우상 신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타민족의 신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숨 쉬지 못하는 죽은 신들이었다면,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살아서 활동하시는 천지를 지으신 유일신이었다. 따라서 유대교에는 타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신들의 형상도 신화도 여성 사제도 없었고, 신전도 예루살렘에 단 한 개만 있었으며, 성소에는 일반사람들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타민족들은 많은 신들을 갖고 있었고, 그 형상들을 돌에 새겼지만, 유대인들은 단 한분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형상을 어떤 형태로든 만들지 못하도록 제2계명에 명시했다. 사람의 손으로 새길 수 있는 것은 신이 아니다. 참신은 영이시고 신비에 쌓여있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었고, 말씀으로만 인간과 관계하시는 하나님이셨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 점을 인정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확실히 무상(無上)의 정신적 통찰력을 타고난 민족이었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형체를 갖지 못한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갖고 있었다. 유대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의 보좌라 믿었던 법궤 속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건네주신 토라가 있었다. 그들의 종교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귀로 듣고 온몸으로 행동에 옮기는 실천종교였다. 따라서 유대교에는 유대교인이 되기 위해서 알아야할 교리(dogma)도 신앙고백서도 없다. 유대교에 믿음의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교에서는 교리보다는 실천적 행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진리와 유일하신 참신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유일신을 그들 민족의 신으로 독점해버렸다. 하나님이 타민족들의 신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분밖에 없는 신을 독점해 버렸으니, 타민족들에게 참신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 신(神)의 독점의식의 절정이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단 한 개의 성전만 허락하였다. 그나마도 하나님을 지성소에 묶어뒀다.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하루 법궤 앞에서 두어 차례 독대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성전내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의 유일신 하나님이 지성소에서 해방되신 것은 바빌로니아 군대의 침략에 의해서였다. 성전은 능욕되었고, 백성은 모두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에 끌려갔다. 이 치욕적인 사건이 있고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은 성전 지성소에서 해방되셨다. 성전이 붕괴되고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이후로는 더 이상 성전예배가 불가능하였다. 예루살렘에 단 한 개의 성전만을 허용한 도그마 때문에 바빌로니아에 불법성전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비로소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이 더 이상 성전에 갇혀 계시지 않고, 그들이 머문 곳이면 어디에든지 함께 하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을 짓지 못하는 대신에 회당을 짓고 그곳에 모여서 성전에서 드렸던 제사예배의 횟수만큼 하루 세 번 이상 기도회를 가졌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시지 않고, 먼 바빌로니아에도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2. 유대교인의 믿음의 원리들

유대교는 교리의 종교가 아니라, 행동적인 실천종교이기 때문에 신앙고백서가 없다.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는 유대교 신앙은 중세의 유대교 랍비 람밤(Rambam, Maimonides)이 정리한 열 세 개의 믿음의 원리들이다.

1)하나님은 존재하신다. 2)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유일하시다. 3)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다. 4)하나님은 영원하시다. 5)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직통으로 연결되고 다른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않는다. 이 5번은 기독교의 성자 그리스도님과 성령 하나님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여호와증인들의 주장이 바로 이 유대교인들의 주장과 같은 단독신론이다. 기독교가 초대교회 때로부터 지금까지 앓고 있는 병들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유대교적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여기에는 여호와증인들과 안식일교인들, 예수님을 장차 오실 자 메시아로 믿는 유대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성직을 사제직으로 착각하는 권위주의자들, 남성우월주의자들, 신약성서보다는 구약성서에 더 집착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포함된다. 6)예언자들의 말씀은 진실하다. 7)모세의 예언들은 진실하다. 모세는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였다. 8)성문 토라 즉 모세오경과 구전 토라 즉 탈무드와 기타 문서들에 포함된 율법들이 모세에게 주어졌다. 이 8번과 관련해서 개신교가 유대교나 가톨릭교와 다른 점은 구전과 외경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참다운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에 기초한 유대교적 기독교를 버리고, 신약성서에 기초를 둬야 한다. 9)성문 토라와 구전 토라 이외에 다른 토라는 없다. 10)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 11)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을 보상하시고, 악한 사람들을 벌하신다. 12)메시아는 오실 것이다. 이 12번과 관련해서 유대교인들은 2천 년 전에 이미 오신 메시아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13)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13번의 죽은 자의 부활은 12번의 메시아사상과 맞물려 있다. 메시아가 통치하는 때가 오면 신정국가가 예루살렘 시온에 세워질 것이고, 성전과 제사예배가 재건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 13개의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원리들을 모든 유대인들이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에는 정통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이 있어서 주장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또 전 세계에 흩어진 1400만 유대인들 가운데 신앙을 가진 자는 40퍼센트를 밑돈다.

이들 13개의 신앙의 원리들을 따르는 유대교인들은 메시아 왕국이 재건되면, 토라(모세오경)에 실린 613개의 모든 계명들을 다 지키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늘날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전과 성전제사들과 예배들에 관련된 계명들은 지키지 않는다. 범법 절차들에 관한 계명들도 지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직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고, 그가 오셔서 세울 신정국가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에 건국된 이스라엘 나라는 세속국가이며, 신정국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정국가가 되는 때는 메시아가 오시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제사와 성전예배가 재건되며, 세계가 유대교를 국교로 삼고 이스라엘 국가의 통제아래 놓이는 때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이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고 믿는다. 이런 주장은 이미 메시아가 오셨고, 그 분이 세운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신정국가란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3. 유대교인의 하나님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가르치는 내용은 열 가지 정도가 된다. 1)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것(출 20:2; 신 5:6). 2)하나님이외의 다른 신이 존재한다거나 그 신이 영원하다는 개념을 수용하지 말 것(출 20:3). 3)신성모독하지 말 것(출 22:28). 4)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것(레 22:32). 5)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말 것(레 22:32). 6)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과 완전한 일체이신 것을 알 것(신 6:4). 7)하나님을 사랑할 것(신 6:5). 8)하나님을 경외할 것(신 6:13, 10:20). 9)하나님을 시험하지 말 것(신 6:16). 10)하나님의 선하시고 올곧은 방법들을 본받을 것(신 28:9, 비교 엡 5:1). 유대인들에게는 열거한 몇 가지 개념들 말고는 어떤 공식적이고 결정적인 교리가 없다. 유대교인들은 믿음의 교리보다는 실천적 행동에 더 큰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큰 업적은 하나님을 관계의 신으로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떠돌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고, 이삭과 야곱과 노동의 착취 속에서 고통당하던 조상들에게 찾아오셨다. 조상들을 독수리 날개에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약속의 땅을 안식처로 주셨다. 이처럼 초월적이고 인간의 영역밖에 계신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인간세계에 끌어들여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자기 민족과 깊은 관계, 마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키운 후에 결혼서약을 통해서 부부가 되는 것처럼, 자기 민족을 택하여 선민을 삼으신 하나님으로 이해하였다.

이처럼 유대교인들은 관계들(relationships), 즉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관계, 유대민족과 이스라엘 땅의 관계, 인류와 인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성서는 이들 관계들의 발전, 즉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관계형성을 거쳐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관계형성과 그 이후의 관계들에 대해서 전한다. 또한 성서는 이들 관계들에 의해서 형성된 상호의무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정통주의 유대교인들은 이들 실천적 행동들에는 랍비들에 의해서 제정된 게자이라 율법들 즉 울타리법과 오랜 관행들, 그리고 토라에 하나님께서 주신 613개의 계명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유대교인들에게 있는 심각한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주신 613개의 계명들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그 계명들이 가진 본래의 뜻과 취지에 어긋난 요상한 울타리 법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들어 오랜 관행으로 지키는 데 있다. 신약성서에서 문제를 삼았던 유대교의 율법주의의 문제점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들에 있지 않고 랍비들이 만든 이들 울타리율법들에 있었다. 유대인들의 신관을 한걸음 더 발전시킨 것은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온 인류 가운데 계시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고 가시면서 섭리하시고 경륜하실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아바 아버지 하나님을 선포하였다.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서 성전이 능욕되고, 백성이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에 끌려가는 치욕적인 사건이 있고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서 해방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민족신(神)으로 속박되었던 하나님이 기독교를 통해서 온 인류에게 사랑을 쏟아 부으신 은총의 하나님으로 또 한 번의 해방을 맞으셨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단순히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에서 그치지 않고, 아바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다.

4. 하나님의 이름 발음하기

고대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했는지 애석하게도 정확한 정보가 없다. 자음은 있는데 모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름은 있는데 발음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구약성서에 쓰인 고대 히브리어에 띄어쓰기가 없고, 모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 모음이 생기고 띄어쓰기가 생긴 것은 주후 700년경이다. 참고로 신약성서에 쓰인 고대 헬라어에는 소문자가 없고 띄어쓰기가 없었다. 물론 장과 절의 구별도 없었다. 헬라어에 소문자가 생기고 띄어쓰기가 생긴 것은 주후 800년경이고, 성경에 있는 장구별은 주후 1228년, 절구별은 주후 1551년에 생겼다. 신구약성서가 기록된 때가 각각 2천년, 3천 년 전이지만, 장과 절의 구별이 생긴 것은 각각 5백년, 8백 년 전이다.

둘째,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에 차례로 편입되면서 6백여 년간 제국들의 유다 도(道)로써 그 명맥(命脈)을 유지해왔던 이스라엘은 그마저도 주후 70년에 멸망함으로써 성전도 함께 파괴되었고, 이후에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이름의 정확한 발음이 잊히게 되었다. 학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의 발음이 ‘야훼’(YaHWeH)였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마저도 만장일치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지극히 거룩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불경에 빠뜨리거나 계명에 불순종하게 하는 행동을 일컬어 ‘킬룰 하셈’(chillul Ha-Shem) 즉 ‘그 이름의 모독’이라 부른다. 또 하나님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키두쉬 하셈’(kiddush Ha-Shem) 즉 ‘그 이름의 거룩함’이라 부른다. 행동의 옳고 그름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에 높임이 되기도 하고 모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특별한 경외심으로 대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호칭하는 이름들은 유대교에서 엄격한 존경과 공경으로 다뤄진다.

넷째,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이후 탈무드가 기록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성서(토라)는 이것을 금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는 하나님의 넉자(YHWH) 이름의 일부인 ‘야’(Yah)와 ‘야후’(Yahu)를 자주 쓰고 있고, 성전예배 때 실제로 발음되었다. 구전 토라인 미쉬나(Mishnah)도 발음을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탈무드(Talmud, 2-5세기)가 기록되던 때부터 하나님의 이름들 대신에 다른 이름들을 쓰는 관행이 생겼다. 유대인들은 넉자를 발음하는 대신에 ‘아도나이’(Adonai, 주님)를 대신 쓰거나 그냥 ‘하셈’(Ha-Shem, 그 이름)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넉자 이름에 아도나이의 모음이 붙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이름이 ‘여호와’(YeHoWaH)로써 16세기경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은 다른 이름들도 관행적으로 발음하지 않는다. ‘아도나이’(Adonai)를 ‘아도쉠’(Adoshem), ‘하쉠’(Ha-Shem), 혹은 ‘엘로하이누’(Elohaynu)로 바꿔서 발음하고, ‘엘로힘’(Elohim)을 ‘엘로카이누’(Elokaynu), ‘엘로킴’(Elokim)으로 바꿔서 발음한다.

5. 하나님의 이름들

하나님과 고대 이방신들과 비교해서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은 종종 “이름이 없는 하나님”이란 말을 듣는다. 그러나 정확한 발음을 모를 뿐이지, 유대교는 하나님의 이름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할 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들을 많이 갖고 있다.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의 본명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히브리어 알파벳 넉자(YHWH)로 된 이름이다. 이것을 ‘야훼’로 발음 하는데, 확실한 이름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이 넉자 이름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이름’(Ineffable Name), ‘발음할 수 없는 이름’(Unutterable Name) 혹은 ‘특출한 이름’(Distinctive Name)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넉자 이름은 언어학적으로 볼 때, ‘존재하다’(to be, Hei-Yod-Hei)와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존재가 영원하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또는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 넉자 이름의 히브리어 어근이 갖는 뜻이다.

성서에서 이 이름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논할 때, 하나님의 자애하심과 자비하심의 성품들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이 넉자 이름은 종종 ‘야’(Yah, Yod-Hei), ‘야후’(Yahu) 혹은 ‘예호’(Yeho, Yod-Hei-Vav)로 줄여서 쓰이며, 특히 합성어나 합성 이름들을 만들 때 쓰인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Yehoshua, 주는 나의 구원이시다.), ‘엘리야’(Eliyahu, 나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할렐루야’(Halleluyah, 주님을 찬양하라) 등이 있다.

성서에 쓰인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이름은 ‘엘로힘’(Elohim)이다. 엘로힘은 남성 복수이며, 여성 단수인 경우는 ‘엘로하’(Eloha)라 부른다. 동일한 단어가 왕자, 재판관, 다른 신, 다른 능력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쓰인다. 이 이름은 성서에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창조능력, 정의와 통치권의 속성들을 강조할 때 쓰인다. 엘로힘이 들어간 말들에는 ‘엘’(El), ‘엘로하’(Eloha), ‘엘로하이’(Elohai, 나의 하나님), ‘엘로하이누’(Elohaynu, 우리의 하나님)가 있다.

하나님은 ‘엘 샤다이’(El Shaddai)로 불리기도 한다. 이 이름은 보통 ‘전능의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샤다이’(Shaddai)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혜택을 쌓아올리다’는 뜻을 가진 어근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유대교 주석 미드라쉬(Midrash)에 의하면, ‘샤다이’는 ‘충분한,’ ‘넉넉한’이란 뜻의 ‘다이’(dai)를 선포한 자를 말한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그분이 “다이”라고 선포할 때까지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였을 것이라는 점에 기인된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최초의 우주팽창론이라고 말한다. ‘샤다이’는 유대인들이 집 문설주에 매달아 두고, 출입 때마다 세 번씩 입을 맞추는 작은 칼집모양의 메주자 상자에 담긴 두루마리에도 기록된 이름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름은 ‘야훼 쯔바오트’(YHWH Tzva'ot)이다. 이 이름은 일반적으로 ‘군대들의 주님’으로 번역된다. ‘쯔바오트’(Tzva'ot)는 군대와 같은 단체 혹은 조직적인 배열이란 의미에서 ‘군대들’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지도력과 주권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이름이 모세오경에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고, 시편과 예언서들에서만 쓰였다. 유다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멸망당한 전후시기에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6. 하나님의 이름 쓰기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들을 무심코 쓰지 않는다. 이 관행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제3계명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유대교인들은 제3계명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 혹은 경박한 맹세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망령되게’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거짓말’을 뜻한다고 한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이름 쓰기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키는 것을 금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지키는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무심코 쓰는 것을 피한다. 왜냐하면 쓰인 이름이 나중에 사고로 혹은 잘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손상되고 지워지며 망가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키지 말라는 계명은 신명기 12장 3-4절에 근거한다. 그 구절들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취하게 되었을 때, 그 지역의 우상 신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괴시킬 것과 그 지역의 신들의 새겨진 이름들을 철저히 제거할 것을 명령받는다. 이 구절들에서 랍비들은 어떤 거룩한 것들을 파괴시켜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는다고 유추하였다. 유대교인들의 악명 높은 재능들 가운데 한 가지가 하나님이 뜻하지 아니한 울타리 율법들을 수없이 만들어 지키게 한 것인데, 그 재능이 이 계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키는 것을 금하라는 울타리 율법은 항구적인 형태로 쓰인 이름들에만 국한된다. 따라서 최근 랍비들의 결정들에 의하면, 컴퓨터에 하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은 항구적인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에 하나님의 이름을 타이핑하거나 지우거나 자르거나 붙이거나 혹은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 있는 파일들을 복사하거나 지우는 것은 위법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일단 프린트하게 되면, 그 인쇄물은 항구적인 형태가 된다. 그리고 일단 프린트가 되면,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은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쓰는 흔한 방법은 문자나 음절들을 대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God) 대신에 ‘하-님’(G-d)이라고 쓴다. 심지어 숫자 15는 10과 5를 뜻하는 알파벳이 하나님을 뜻하는 ‘야’(Yah)가 되기 때문에 쓰지 않고, 9와 6(Teit-Vav)을 대신해서 사용한다.

출애굽기 3장 13-22절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모세는 “무엇이라 부를까요?”라고 묻지 않고, “누구십니까?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무슨 일을 해오셨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 물음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곧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조상들의 하나님, 특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하셨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고통을 지켜보셨고, 이제 그들을 억압에서 구원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의 중요성이 호칭에 있지 않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면서 그분과 언약관계를 체결한 자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계시고 안식처로 인도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야훼’(YHWH)는 살아계신 하나님, 조상들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지금도 우리 곁에서 활동하고 계신 하나님이심을 밝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