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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13 08:54
목사직과 여성 목사직의 근거들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59  

개신교 목사직과 여성 목사직의 근거들

조동호 목사(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여성 목사가 합당한지, 성서나 역사에서 그 당위성이 확보되는지를 개신교 예배의 성격과 목사직의 성격을 밝힘으로써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제도적 관점

제사 예배를 드렸던 유대교 성전(성막)에 여성 사제는 없었다. 토라의 613개 계명들 속에 여성 성직을 지시한 계명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회로 모이는 유대교 회당에도 여성 성직자는 없다. 유대교 회당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여성과 13세 이하의 아이들은 회원으로 관주되지 않는다. 유대교 정통주의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여성과 13세 이하의 아이들이 본당에 동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여성이 회당예배에 참석하는 것과 기도회에서 베라코트(특히 쉐모네 에스레이)를 암송하는 것과 토라를 낭독하는 것을 계명으로 보지 않고 자발적인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여성은 기도회를 인도할 수 없다. 회당예배는 성전에서 봉헌되었던 제사예배의 횟수만큼 갖는 기도회(베라코트의 암송)로써 기본적으로 유대인 남성들(민얀)의 모임이다.

유대교에서는 여성들이 지켜야할 계명들이 남성들의 것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기도회에서의 여성들의 역할 제한을 차별로 보지 않고, 보상으로 본다.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상반절)는 권면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도록 한 것은 토라에 실린 613개의 계명에 여성 사제직에 관한 계명이 없다는 유대교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한 것이다.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하반절)라고 한 말씀에서 추론할 수 있다.

제물을 바치지 않았던 초대교회도 목사들(장로, 감독)이 모두 남성이었다. 그렇다고 여성 지도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사시대에 드보라가 있었듯이, 아굴라의 부인 브리스길라(롬 13:3)는 에베소 교회의 유력한 일군이었고, 바울의 추천을 받았던 뵈뵈(롬 16:1)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이었으며, 루디아는 바울이 의지했던 빌립보 교회의 큰 일군이었다.

2. 구원론의 관점

성서에는 여성 사제나 여성 목사들(장로, 감독)이 있었다는 구체적인 사례가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목사의 일에 남녀차별이 없음을 구약의 제사예배나 회당예배와는 다른 성격의 기독교 예배를 밝혀 줌으로써 암시하고 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서신서들에서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갈 3:28).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신” 한 몸이다(고전 12:13). 구원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종족의 차별이 없다(롬 3:22, 10:12, 골 3:11). 에베소 3장에서는 이 사실이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9절)이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8절)이라고까지 언급하였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의하면, 남녀노소무론하고 누구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은혜의 보좌’란 성막 지성소의 법궤 뚜껑을 일컫는 시은소를 말한다. 히브리서 6장 19-20절을 보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하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휘장을 찢고 앞서 지성소로 들어가셨고, 성도의 희망도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그리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을 보면, 그 길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이요,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다”고 하였다. 또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을 지상 성막의 법궤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설명한 이유는 지상 성막이 하나님의 지시로 지어진 하늘 성막의 모형과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네 개의 뜰과 두 개의 성소가 다섯 개의 벽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크고 넓은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유대인 여성의 뜰,’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유대인 남성의 뜰,’ 이 벽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인 ‘제사장의 뜰’ 또 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놓인 ‘성소,’ 다시 휘장을 사이에 두고 그 안쪽에 법궤가 놓인 ‘지성소’가 있었다. 이 유대교 성전에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인종의 벽’이 있었고, 유대인 여성들과 남성들 사이에 ‘남녀의 벽’이 있었으며, 유대인 남성들과 제사장들 사이에 ‘신분의 벽’이 있었고, 제사장들과 대제사장 사이에 ‘계급의 벽’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벽은 하나님의 영역인 성막 안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뜰의 장벽들은 다 유대교가 만들어낸 인위적이고 권위적인 벽들이었다. 이 모든 벽, 심지어 신성의 상징인 성막휘장까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 육신을 깨뜨리심으로써 다 허물어졌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 남녀, 신분,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직자들을 통하지 않고) 지성소 법궤 앞 시은소 앞으로 나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 이로써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하루 두어 차례 할 수 있었던 일을 남녀노소, 횟수, 시간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3. 교회사적 관점

역사는 초대교회의 목사직(장로, 감독)이 어떻게 사제직(부제/보제, 사제, 주교)으로 변천되었는지, 또 사제직이 개신교의 목사직으로 변천되었는가를 보여줄 뿐 아니라, 개신교 목사직의 성격까지를 밝혀준다. 개신교 목사직은 세 가지 가능한 역사적 근거를 갖는다.

첫째, 1-2세기경에 회중 내에서 선출된 붙박이 장로들에 근거한다. 장로들은 목양권과 감독권을 갖는 회중내의 목회자들이었고(행 20:28, 딤전 5:17, 약 5:14), 그들을 장립한 것은 순회목회자들이었다(행 14:23, 딛 1:5). 그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했다(딤전 3:2, 12, 딛 1:6).

둘째, 1-2세기경에 장로회로부터 안수를 받고 파송된 순회 전도자들에 근거한다(딤전 4:14. 행 13:3 참고). 그들은 교회를 개척하고 장로를 뽑아 장립하였으나 한 곳에 정착하지 아니하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던 떠돌이 목회자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이 바울을 포함해서 다수였다(고전 7:8).

셋째, 19세기경에 시작된 전혀 새로운 보직, 즉 ‘만인 사제들’에 속하지만, 전문가로 훈련받고 회중으로부터 초빙되어 풀타임 사역하는 전담 목회자에 근거한다. 이 제도는 1840년대 미국의 변방교회들에서 시행되었다.

이들 세 가지 근거들 가운데 회중 내에서 선출된 붙박이 장로 목회자들의 경우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순회 전도자들의 경우도 2세기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개신교 목사직은 근현대 회중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새로운 보직, 즉 ‘만인 사제들’에 속하면서 전문가로 훈련받고 초빙되어 풀타임 사역하는 유급 전담 목회자라 할 수 있다.

회중 내의 장로 목사직은 4세기경까지 지속되다가 4세기 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후부터는 사제계급으로 발전되었고, 주교좌교회들을 중심으로 한 교권화와 중앙집권화가 이뤄진 다음부터는 사제들이 교권의 지배를 받아 상부지시를 따르는 순회 사제들로 바뀌게 되었다.

장로 사제직의 발달은 기독교예배가 ‘미사’ 곧 제사예배로 발전된 때문이었다. ‘미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말한다. 이것을 ‘피 없는 희생제사’라고 말한다. 초기 기독교에서 제사예배의 발달은, 피의 희생 제사를 바치고 있던 이방인들이 성전도 없고 희생물도 없는 기독교예배를 무신론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정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주교의 권한이 커진 4세기이후 기독교예배는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빠른 속도로 축성에 의한 성체변화신학(화체설)과 제단과 제물과 제사장의 개념화가 이뤄졌다. 이것이 붙박이 목회자였던 장로가 사제가 된 배경이다. 사제(priest)라는 말도 장로(presbyter)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이후 개신 교회들은 대부분 국가종교로써 여전히 장로 사제들의 지도아래 있었고, 종교 개혁가 마르틴 부쳐(Martin Bucer/1491-1551)가 ‘장로 사제’를 ‘목사’로, ‘미사’(제사예배)를 ‘주의 만찬’으로, ‘제단’을 ‘주의 만찬상’으로 바꿔놓긴 했지만, 장로 사제가 아닌 전문직 목사는 역사적으로 훨씬 후대에 등장하였다. 오늘날의 전문직 목사와 평신도 장로제도는 오로지 개신교에서만 볼 수 있는 제도이다.

4. 여성 목사직의 당위성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여성 목사직은 몇 가지 가능한 근거들을 갖게 된다.

첫째, 성서에는 여성 목사가 있었다는 언급이 없지만, 여성이 목사가 되지 말라는 분명한 언급도 없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했던 붙박이 장로 목회자들의 경우 사제계급으로 바뀌면서 역사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순회 전도자들의 경우도 2세기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므로 개신교 목사직 자체가 여성 목사를 포함하여 성서에 없는 별개의 보직이다. 따라서 여성리더십을 거부했던 과거시대의 제도가 본질의 문제일 수 없다.

둘째, 여성이 목사가 되지 말라는 직접적인 지시가 없는 성서의 침묵은 허용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여성 목사직의 허용여부는 비본질의 문제이다.

셋째, 사도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상반절)는 권면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도록 하였는데,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에 무질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라에 실린 613개의 계명에 여성 사제직에 관한 계명이 없다는 유대교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한 것이다.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하반절)에서 바울이 율법을 거론한 것이나 주님의 명령이라고 한 것을 보아 추론할 수 있다. 근현대의 개신교 목사는 사제가 아니므로 여성 사제에 관한 계명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 목사직을 차단할 수 없다.

넷째, 개신교 목사직은 근현대 회중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새로운 보직, 즉 ‘만인 사제들’에 속하지만, 전문가로 훈련받고 회중으로부터 초빙되어 풀타임 사역하는 유급 전담 목회자이다. 남녀노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전담하는 전문직이 목사직이라면 여성이 하지 못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다섯째, 개신교에는 제단도 없고, 제물도 없으며, 예배가 제사도 아니다. 따라서 목사는 더 이상 사제(제사장)가 아니며,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는”(행 6:4) 전문 일군들이다. 목사가 하는 기능에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모든 인위적인 장벽들, 즉 종족의 장벽, 남녀의 장벽, 신분의 장벽, 계급의 장벽을 허무셨으며, 차별 없이 누구나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사제(제사장)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나아갈 새롭고 산길을 열어놓으셨다(히 10:19-20).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하루 두어 차례 들어갈 수 있었던 하나님의 보좌(법궤)앞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4:16).


cho0204 09-08-19 12:56
답변 삭제  
이 글은 크리스천 연합신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본래 이 글은 크리스천 연합신문의 요청에 의해서 쓰여졌습니다.
http://www.cupress.com/news/news_view.asp?idx=211&sec=7
hyunjb 09-11-05 21:25
답변 삭제  
여성목사를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합리화 하려는 것 뿐이다.
목사라고 하는 제도가 어쩌면 성경에 없는 제도일찌도 모른다. 헬라어 "포이맨"이라는 단어 자체가 목사가 아닌 목자로 번역되어야 옳은 것이고, 교회에서 치리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자들은 분명 "장로, 감독"들이다. 그렇다면 여성 목사는 과연 무엇을 하는 직책인지 성경적으로 묻고 싶다. 그리고 성경에서 여성이 "장로나 감독"을 수행한 적이 없음을 볼때 분명 여성에게 주어진 직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에게 주어진 직책이라면 최소한 성경에 그런 여성을 언급했던지 그런 성경구절이 암시되어야 하는 데 눈 앃고 찾아봐도 그런 구절은 없다. 그렇다고 성경에 여성목사가 되지 말라는 말이 없다고 이를 합리화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해석이다.
목자, 장로, 감독 그 어느 직책도 헬라어에서 여성명사로 기록한 적은 없다. 왜 그렇까 되새겨볼 문제이다.
조동호 09-11-15 08:05
답변  
성경에서 여성이 장로직이나 감독직을 수행하지 아니한 것은 사실이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2천년 전 이방 종교에서의 여사제들의 역할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방종교에서 여사제는 성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사제들도 남창인 경우가 있었다.
 
둘째, 초기 기독교가 유대교의 틀과 문화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유대교에서는 여성들이 지켜야할 계명들이 남성들의 것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기도회에서의 여성들의 역할 제한을 차별로 보지 않고, 보상으로 본다.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상반절)는 권면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도록 한 것은 토라에 실린 613개의 계명에 여성 사제직에 관한 계명이 없다는 유대교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한 것이다.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하반절)라고 한 말씀에서 추론할 수 있다.
경천목자 10-02-12 21:19
답변  
복음에 차별이 없다는 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인데,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남녀도 차별이 없으므로 여자도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성도로서의 남녀가 인격적으로는 차별이 없겠지만 남녀의 구별은 있음을 똑바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 하더라도 남자가 어머니가 될 수 없고 여자가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식자나 무식자나 인격적 차별은 없다 하더라도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목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남자가 하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될 줄로 압니다.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성경을 바로 보고 분별력 있게 처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권면합니다.

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이 난잡한 고린도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음의 디모데 전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창조의 원리와 인류 타락의 과정을 들어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디모데가 시무하던 교회는 고린도 교회가 아니라 에베소 교회입니다.
cjk 10-08-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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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잠잠하라"는 말씀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나. 그 시대의 문화의 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마음의 산물일뿐입니다. 성경을 다시 보십시요, 그리고 앞뒤의 문맥을 보세요, 바울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즉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이것은 "율법에 이른 것 같이" 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므로 성경을 함부로 생각하여 다른 이들을 미혹으로 인도하는 것은 큰 죄악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