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09-09-13 08:00
개신교 예배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563  

개신교 예배

조동호 목사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제사개념
목축과 포도농사가 많았던 유대인 조상들의 제사개념과 논농사와 밭농사가 많았던 우리 조상들의 제사개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제사상에 백설기와 막걸리를 올려놓았다. 백설기는 해원(解寃)과 화목의 상징으로써 관계회복의 뜻을 담고 있고, 막걸리는 연대(連帶)와 결속의 상징으로써 일체의식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제사는 신(神)과 인간의 결속과 일체의식을, 또 제물을 함께 먹고 마시는(飮福飮德) 공동체 구성원의 운명적 결속과 연대의식을 상징하였다.

우리 조상들이 신에게 바친 백설기와 막걸리는 순결의 상징이었다. 제사상의 음식은 보통의 음식이지만, 일단 그것을 신(神)에게 바치고 나면, 그 음식은 더 이상 보통의 음식이 아니라 신의 뜻이 담긴 신성한 음식이 된다. 음식의 마련은 인간이 하지만, 마련된 음식이 일단 신에게 바쳐지게 되면, 그 음식은 더 이상 인간의 음식이 아니라, 신이 예배공동체에게 내리는 신성한 선물(膳物)이 된다. 이 신성한 신의 선물을 예배공동체가 나눠먹고 마시는 것은 신의 뜻을 나눠받는 행위요, 신의 뜻으로 결속된 생사를 함께해야할 공동체임을 자각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죄 사함과 피 흘림 또는 회개와 용서와 회복과 같은 구속(救贖)개념 혹은 대속(代贖)개념은 없다.

유대인 조상들은 제사상이란 개념이 없었다. 제사상에 음식을 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짐승을 잡고 가죽을 벗긴 후 각을 떠서 제단에 올린 후에 제사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서 신체의 일부분 또는 전체를 불에 태워서 그 향기를 하나님이 맡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기보다는 희생물이 흘리는 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엄격히 말하면, 하나님은 고기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피를 받으셨다. 피는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목축과 포도농사가 많았던 유대인 조상들은 피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피는 생명이란 신념 때문에 피를 먹지 않았고, 피를 흘린 자에게는 반드시 피로써 보복하였다. 피를 흘리게 한 자에게 피로써 보복하는 자를 일컬어 ‘고엘 하담’ 또는 ‘피를 보복하는 자’(민 35:19)라 부른다. 하나님께서 피의 보복, 즉 살인의 의무를 공개적으로 허용하셨다는 점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피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유대인 조상들의 제사의 핵심은 피 흘림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훼손시키고, 단절시키는 행위를 죄로 여겼고, 죗값은 죽음, 곧 피 흘림이라고 믿었다. 유대인 조상들이 제물을 바칠 때, 반드시 짐승을 죽여서 피를 흘리게 한 후에 그 피는 양푼에 받아서 제단 밑에 뿌렸다. 그렇게 한 이유는 짐승의 피가 예배자에게 속죄(贖罪)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짐승이 예배자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상징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제물에게 전가시켰다. 손으로 지은 죄를 속죄 받기 위해서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고, 입으로 범한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입술로 죄를 고백하였다. 포도농사가 많았던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피와 죽음의 상징인 동시에 부활의 상징이었다. 때때로 제물에 포도주를 부어 향기로운 화제로 삼기도 하였는데(민 15:10), 제물에 포도주를 붓는 전제(奠祭)의 행위는 백설기와 막걸리를 제사상에 함께 올리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개신교 예배개념
개신교 예배는 제사예배가 아니다. 개신교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림으로써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속죄 제사들을 단 한 번에 끝내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를 흘리는 대속의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피 제사를 끝내시기 위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토록 하셨다. 이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배, 주의 죽으심을 추도하는 기념예배,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친교예배,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는 기원예배,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전도예배가 개신교 예배이다.

제사예배를 드리는 가톨릭교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이외에 다른 제물은 없다. 가톨릭교의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예배이다. 이것을 ‘피 흘림 없는 희생제사’라고 말한다. 가톨릭교의 제사예배는 피의 희생 제사를 바치고 있던 이방인들이 성전도 없고 희생물도 없는 기독교예배를 무신론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정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주교의 권한이 커진 4세기이후 기독교예배는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빠른 속도로 축성에 의한 성체변화신학(화체설)과 제단과 제물과 제사장의 개념화가 이뤄졌다. 이것이 회중의 목회자였던 장로들이 사제(神父)가 된 배경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이후 개신교는 가톨릭교의 미신적인 제사예배를 가감하게 버렸다. 그러나 예배에서 주의 만찬을 빼버린 것은 목욕물과 함께 갓난아이를 내다버린 격이 되었다. 종교개혁이 이토록 미완성이었던 이유는 개신교가 초기에는 국가종교였고, 국가권력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주 주의 만찬이 시행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부쳐(Martin Bucer/1491-1551)는 ‘미사’(제사예배)를 ‘주의 만찬’으로, ‘제단(祭臺)’을 ‘주의 만찬상’으로 고쳐 불렀다. 따라서 개신교에는 제단도 없고, 제물도 없으며, 예배가 제사도 아니다. 또 목사는 사제(제사장)가 아니며, 전문가로 훈련받고 회중으로부터 초빙되어 풀타임 사역하는 유급 전담 목회자이다. 남녀노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전담하는 전문직이 목사직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당신의 몸을 깨뜨림으로써 모든 인위적인 장벽들을 허무셨으며, 차별 없이 누구나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사제(제사장)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나아갈 새롭고 산길을 열어놓으셨다(히 10:19-20).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하루 두어 차례 들어갈 수 있었던 하나님의 보좌(법궤)앞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히 4:16). 이로써 모든 종교들이 해결할 수 없었던 완전한 대속(代贖)을 그리스도께서 단번의 죽으심으로 완벽하게 해결하셨다. 우리 조상들의 제사개념에는 연대의식과 일체의식은 있지만, 피 흘림 즉 속죄개념이 없었고, 유대인 조상들의 제사개념에는 피 흘림 즉 속죄개념은 있었지만, 짐승의 피로써 상징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궁극적인 속죄(贖罪)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써 완전 대속(代贖)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들은 누구나 값없이 속죄(贖罪)의 은총을 입게 되었고, 더 이상 짐승의 피로써 제사할 필요 없게 되었다.

주의 만찬예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써 속죄개념의 제사를 단번에 완성시켰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짐승의 피로써 제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제사장도 필요 없게 되었고, 제물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제단도 필요 없게 되었다. 이 점을 히브리서 9장과 10장이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 조상들의 제사예법, 즉 짐승의 피가 속죄를 상징했던 예배는 그것의 온전한 원형,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는 주의 만찬 예배가 나타날 때까지 모형과 그림자로써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궁극적으로 예배자의 양심을 깨끗케 하거나 죄를 없애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짐승의 피로써 하지 않고 오직 자기 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론계열의 대제사장들처럼 매년 지상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분은 멜기세덱계열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지상성전의 원형이요, 참 성전이며, 영원한 성전인 하늘성막의 지성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단번에 모든 속죄를 이루셨다. 갈보리 언덕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는 하늘성막 지성소의 법궤 즉 하나님의 보좌에 뿌려졌다. 이로써 하나님의 대속(代贖)의 은총은, 값없이, 반복되는 피의 제사 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영원토록,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 믿고, 그분의 피의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는 속죄(贖罪)의 은총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 이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은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배, 주의 죽으심을 추도하는 기념예배,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친교예배,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는 기원예배,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전도예배가 개신교 예배이다. 주의 만찬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주의 만찬 예배는 유대인 조상들의 제사예배를 대신하는 참 예배이다.

유대인 조상들은 짐승의 피를 성막과 모든 제기들에 뿌렸다.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된다고 믿었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보상개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 조상들이 매일 하루 세 번 이상 드렸던 제사예배로써는 속죄를 온전히 이룰 수가 없었다. 짐승의 피가 능히 사람의 죄를 씻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옛 언약(구약) 아래서 드려진 제사예배는 새 언약(신약) 아래서 드려지는 주의 만찬예배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짐승의 피로 하나님과 맺은 구약의 선민이라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맺은 신약의 선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 밤에 빵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고, 식후에 또한 포도주를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셨다. 이 말씀에 의하여 주의 만찬예배가 온전하고 새로운 예배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제사도 주의 만찬도 없는 기도회로만 하루 세 번 이상 모이고 있다. 주의 만찬이 없는 개신교 예배도 유대교 예배와 다른 것이 없는 기도회에 불과하다. 비록 제사예배는 없어졌지만, 제사예배를 대신하는 주의 만찬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진정한 예배란 사실을 우리 모두는 진실로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