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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01 14:19
교파구별이 없는 한국교회를 위해서(요 17:2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418  
교파구별이 없는 한국교회를 위해서(요 17:21)
한석진 목사는 1868년 평북 의주출생으로써 동향인(同鄕人) 백홍준과 서상륜의 전도를 받고 처음 기독교를 알게 됐고, 1891년 마펫에게 세례 받았습니다.
한석진은 자주의식이 강해 마펫의 조사(助事)로 일하면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감격하여 그 진리를 내 동족에게 전하는데 외국인에게 돈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논리로 선교사가 주는 봉급을 거절했고, 평양 장대현교회, 서울 안동교회, 마산 문창교회, 신의주 제일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도 “한국인의 교회는 한국인의 힘으로 건축한다.”는 원칙을 고집했다고 합니다. 또 1910년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신문인 󰡔예수교회보󰡕 사장이 되어서는 신문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여 한국인들의 헌금만으로 신문을 발행하여 선교부 자금의 유입을 차단시켰습니다.
한석진은 200년 전 미국에서 토마스 캠벨과 발톤 스톤이 펼쳤던 운동과 마찬가지로 ‘교파주의’를 극복하려고 한 자생적 환원운동가였습니다.
한석진은 1909년 일본 도쿄에 유학생들의 한인교회를 설립할 때에 초교파적인 연합교회로 세울 것을 주장하였고,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로 세우기를 원하는 학생들과 본국교회를 설득하여 “일본에서만큼은 장로교나 감리교가 아닌 연합교회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만들어냈습니다.
한석진은 기회만 있으면 교파구별이 없는 ‘하나의 교회’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1915년 자신이 속한 경기충청노회에 ‘조선예수교장로회’란 교단명칭을 “조선기독교회로 바꿀 것”을 헌의하였습니다. 교단명칭에서 ’장로‘자를 빼고 보편적인 ’기독교‘ 명칭을 사용하자는 그의 헌의는 물론 부결되었습니다.
한석진은 목회말년에 금강산 기독교 수양관 건립을 위해 헌신하였는데, 1926년부터 모금을 시작하여 1930년에 2층짜리 웅장한 돌집 수양관을 건립하였습니다. 기금은 한석진이 장로교회들을 순방하여 모은 것이었습니다. 수양관 간판을 달 때, 사람들은 당연히 ‘장로교 수양관’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모금은 장로교인들이 했지만 공간은 다른 교파 사람들에게도 공개하자.”며 ‘기독교 수양관’을 고집했고 결국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희생의 뜻은 궁극적으로 ‘하나됨’에 있었습니다. 이를 실현하려한 한석진 목사의 정신이 오늘 우리의 정신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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