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랜 외로움과 하나님의 오랜 자비(마태복음 25:40)
인간은 외롭고 고독하다. “천재를 만드는 것은 고독이다”(18c. Edward Gibbon)란 말이 있듯이 인간의 아픔과 외로움을 보듬고자 했던 개혁가들도 고독했다. 예수님도, 마르틴 루터도, 톨스토이도, 본회퍼도,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도, 도로시 데이도, 테레사도 외롭고 고독했다.
그러나 그들의 고독은 조금 달랐다. 그들 각자의 아픔과 외로움 때문만 아니라 보통의 인간이 겪는 깊고 오랜 외로움에 대한 고뇌가 섞인 때문이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였더냐, 아니면 옷 잘 입은 사람들이었더냐?” 목자를 잃은 양과 같고, 희망을 찾아 방황하는 민중을 향해 묻는 예수님의 이 물음 속에 그분의 고독과 고뇌가 묻어있다. “누가 과연 이들의 외로움을 달랠 것인가?”라는.
앞서 열거한 이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 깊고 오랜 인간의 외로움 속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오랜 자비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사랑만이 유일한 치유방법이란 것도 알아냈다. 예수님이 그랬고, 톨스토이, 도로시 데이, 테레사가 그랬다.
70년대 초 청계천변의 빈민들을 돌본 ‘빈민의 성자’ 노무라 모토유키는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배웠다. 그리고 그는 청계천변의 한 움막 속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보았다. 움막 거적을 배경으로 가난한 자와 함께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렷이 보여주셨다고 했다. 청계천은 그에게 고독과 고뇌의 장소였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신학교였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는 사랑이 베풀어지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톨스토이가 그렇게 말했고, 도로시 데이와 테레사가 체험했던 주님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아픔과 슬픔이 깊이 배인 곳에서, 고독과 고뇌로 몸부림치던 곳에서, 주님을 만났고, 그리고 개혁이 일어났다.
주님의 만찬은 인간의 이 오랜 외로움과 하나님의 오랜 자비가 만나질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