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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0-04 19:33
성만찬 설교[롬3:2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262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를 보면, 모든 인간은 죄악성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우주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연계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도덕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의 계시 즉 양심의 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계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전 인류는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기를,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선언대로라면 인간의 장래는 아주 절망적입니다. 구원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인류가 다 죄 아래 있다는 절망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준엄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이 선언은 역설적입니다.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극대화시킨 표현입니다.
이 선언은 결코 우리 인간이 어떤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든지 혹은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든 혹은 기독교인이 아니든, 다른 모든 종교를 포함해서 종교인이든 혹은 종교인이 아니든 인간에게는 본능적이든 이성적이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정한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나쁜 일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방영되고 있는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고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은, 바울처럼, 어떤 형태의 선행마저도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의 은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며, 자신이 받은 구원이 결코 자신이 행한 선행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사랑의 행위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체험적 고백에 따르면, 인간의 불완전한 선행이나 법의 지킴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100점 만점의 선행점수에 99점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 부족한 나머지 1점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보편적인 신인식에 근거해서 각가지 민속신앙과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등 다양한 형태의 종교를 발전시켜 다양한 이름의 신들을 섬겨온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지은 죄 또는 죄악성 때문에 그들의 노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했고, 공자, 맹자, 장자와 같은 도덕 군자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라도 그들이 지은 죄 또는 죄악성 때문에 그들의 노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했고, 또 하나님의 택한 민족으로써 모세오경과 같은 뛰어난 성경을 갖고 있는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부여된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바울의 철저한 "~로 말미암아"신앙 즉 감사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구조원에게 건짐을 받고서 구조대원에게 말하기를 "내가 산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고 하지, "내가 물 속에서 살아보려고 허우적거린 덕분에 살아났습니다"고 하든지, "수영을 조금할 줄 알았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고 하지 않습니다. 보트를 타고 놀다가 물가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깊은 물 속에서 배가 뒤집혀 물에 빠진 사람이 99미터 수영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나머지 1미터 때문에 제 능력으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 나머지 1미터 때문에 물 속에 빠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내가 살아난 것은 내가 99미터까지 수영을 했기 때문입니다"고 하든지, "내가 살아난 것은 내가 50미터까지 수영을 했기 때문입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살아난 것은 그분이 물 속에 빠진 나를 구해주셨기 때문입니다"고 말합니다.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바로 이런 우리 성도들의 신앙고백이자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감사의 열매를 맺겠습니다"고 다짐하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이 떡을 먹고 마실 자격을 가진 성도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