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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9-14 18:08
새벽이 되면 누가 시켜서 닭이 웁디까?(고전 1:2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87  
새벽이 되면 누가 시켜서 닭이 웁디까?(고전 1:24)
[성만찬명상문]
1919년 우리나라 인구는 1천 3백만이었고 기독교인은 10만 정도였습니다. 삼일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정식재판에 회부된 사람이 5천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2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여성 수감자의 8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인구 백 명 당 한 명이 기독교인이었는데,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거리에 뛰쳐나와 만세를 부른 사람은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교인이었고, 여성의 경우 다섯 명 중 네 명이 교인이었습니다. 당시 “교회 다니는 여성들이 아니고는 거리에 나와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여성들 가운데 어윤희(魚允姬, 1880-1961)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16세에 결혼하여 사흘 만에 남편이 동학군에 나가 전사하였고, 12살에 어머니, 18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애기청산과부 어윤희는 30세에 예배당에 나가 예수님을 알기까지는 객지인 개성에서 10여년이 넘게 식모살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영접이후에는 만학도로써 미리흠여학교와 호수돈여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고 전도부인이 되었고, 개성 여자성경학원 사감으로 봉직하던 중 삼일운동 때 호수돈여학교 학생과 교회 여신도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이끌었습니다.
왜놈들은 어윤희에게 인간으로써는 차마할 수 없는 갖가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발가벗겨놓고 심문하고 때리고 불로 지지곤 하였습니다. 취조하던 검사가 어윤희에게 배후를 대라고 윽박질렀고,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새벽이 되면 누가 시켜서 닭이 웁디까? 우리가 독립할 때가 왔으니까 궐기하는 것이지.“ 그 후 그녀는 1년 6개월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후로는 개성에 ‘유린보육원’을 세웠고, 6.25동란 중에는 서울 마포에 유린보육원을 재건하여 30년 세월을 고아들을 돌보며 예수님처럼 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윤희의 삶에서 기구한 운명의 한 여인을 긍정에로 변화시킨 기독교 신앙의 효험을 보았으면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