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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1-18 17:26
조선을 성서 위에, 성서를 조선 위에(딤후 3:16-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81  
조선을 성서 위에, 성서를 조선 위에(딤후 3:16-17)
김교신(1901-1945)은 1927년 7월 함석헌, 송두용, 유석동 등과 우찌무라 간조의 문하생들과 함께 󰡔성서조선󰡕을 창간하였는데, 창간사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걱정을 같이하고 소망을 한 곳에 붙이는 어리석은 자 5, 6인이 동경 시외 스기나미 촌에서 처음으로 회합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고 매주 때를 기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공부하면서 지내온 지 반년 남짓하여 누가 동의하여 어간의 소원이던 연구의 일단을 세상에 공개하려 하니 그 이름을 󰡔성서조선󰡕이라 하게 되도다. 그 이름의 우열과 시기의 적부는 우리의 불문하는 바이다. 다만 우리의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이란 두 글자이고 애인에게 보낼 최고의 선물은 성서 1권뿐이니 양자의 어느 하나도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소원은 이를 통하여 열애의 순정을 전하려 하고 지성의 선물을 그녀에게 드리려 함이로다.
김교신은 함흥출신으로 보통학교와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듬해 4월에 거리설교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입교를 결심하고 야라이정(失來町) 성결교회에 들어갔고 6월에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1927년 4월에 귀국하여 함흥영생여자고등학교, 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 경기중학교, 개성송도중학교에서 차례로 교편을 잡았습니다. 윤석중, 유달영, 손기정 등이 그의 제자들입니다.
김교신은 성서를 떠나서는 “조선”을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1935년 4월호 권두언 “조선을 성서 위에”라는 글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과학조선의 운동이 시대에 적절하지 않음이 아니요... 덴마크식 농업조선을 중흥하려는 기도가 시의에 불합함도 아니며... 상공조선이나.... 공산조선 등이 다 그 진심 성의로만 나온 것일진대 해로울 것도 없겠지만.... 그러므로 이러한 구형적(具形的) 조선 밑에다 영구한 기반을 넣어야 할 것이니 그 지하의 기초공사가 곧 성서적 진리를 이 백성에게 소유시키는 일이다. 넓게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라. 그러므로 조선을 성서 위에.
성서적 진리를 기반으로 한 예배가 성만찬예배입니다. 주의 만찬을 통해서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