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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1-25 17:53
기독교는 영생을 가르쳐 주었다(요 6:53-5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97  
기독교는 영생을 가르쳐 주었다(요 6:53-58)
현순(1878-1968)은 목회자이면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했고, 그의 유해는 1975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896년 윤치호의 다음과 같은 연설을 듣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유교의 가르침은 상류층으로부터 비롯되어 아래로 내려왔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류층으로부터 비롯되어 위로 올라갔다. 달리 말해, 유교는 소수 양반에게 근거를 두고 있지만, 기독교는 나라의 근본인 일반 대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던 현순이 교회에 나가 성경공부를 시작한 것은 일본에서였습니다. 유학중이던 1901년 교회에 출석해서 깨달은 것은, “유교는 윤리, 도덕, 정치를 가르쳐주었고, 불교는 전생, 현세, 내세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영생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생을 깨닫고 난 현순은 이때부터 기독교를 깊이 믿기 시작하였고 날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현순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할 노동이민자들의 통역관으로 아내와 함께 하와이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한인노동자 50여명을 모아 1903년에 호놀룰루에 한인감리교회를 세웠습니다. 1906-1907년 사이에는 목사과정을 마쳤으며, 귀국하여 최병헌과 함께 정동교회를, 전덕기를 도와 상동교회를 목회하였으며, 새벽마다 남산에 올라가 기도하여 은혜를 체험한 후부터는 부흥사로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현순은 주일학교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일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그러던 현순은 1919년 3․1운동에 개입하게 되고,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임시사무소의 총무를 맡아 활동하다가 임시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외무차장, 외무위원, 외무부위원, 내무차장 등을 거치며 김규식과 함께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현순은 미국본토와 하와이, 상해 등을 오가며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 분주히 활동하다가 1968년 7월 11일 LA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관의 아들로 태어나 정붙일 곳 없던 현순의 삶을 180도 바꿔놓은 것은 기독교복음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쓸모없던 인간을 소중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바꿔놓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