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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18 13:29
이제라도 천주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있을 것(히 11:33-4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81  
이제라도 천주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있을 것(히 11:33-40)
이경언(1792-1827)은 음력 5월 4일 전주 감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경도와 이순이의 막내 동생인 이경언이 쓴 심문기(審問記)입니다. 그는, 지봉(芝峰) 이수광(李晬光)의 8대 후손으로서 이익의 외손자였으며 조선천주교 초기신자들이었던 권철신과 권일신 형제의 영향을 받았던, 이윤하(1757-93)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늘 생각하기를 주님을 위해 목숨 바치기라도 하면 지은 죄악을 기워 갚을 수 있을까 하며 지내왔습니다. 4월 21일 너무도 갑작스럽게 날이 저문 후에 김성집(배교자)을 앞세워 서울과 지방 포교 10여 명이 저를 붙잡아, 무침다리에 있는 사관청(士官廳)에 앉혀 놓고 심문했습니다.
“성화(聖畵)는 그렸는가?” 묻기에, 일이 하릴없이 된 줄을 알아채고 제가 그렸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대강 심문하고, 이튿날 포장(捕將)이 저를 불러내었습니다. “네가 천주학을 한다는데 맞느냐?” “그렇습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형(이경도)이 신유옥사 때 이 일로 죽었고, 어릴 때 조금 듣긴 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이미 처형당한 조숙을 알게 되어 그에게 1년 남짓 배워서 마음속 깊이 익혔습니다.” “이제라도 천주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관장(官長)이 물었습니다. “어제 진술한 것이 다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심문을 마치고는 옥에 가두라 했습니다.
잡혀온 지 사흘 되던 날 포장이 영장(營長)에게 보고를 올려 지시를 받고, 그날 해질 녘에 압송되어 동작리를 건넜습니다. 저는 사흘 동안 먹은 것도 없고 밤낮으로 애를 쓴 탓에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성방에서 자고, 이튿날 김성집과 포졸 일행들 모두 6명이 일찍 떠났습니다. 앞길을 바라보니 가족에 대한 정이 남아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굳게 다졌지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가셨는데 내 어찌 이 길을 마다할까보냐. 걸음걸음 예수님을 따르리라.” 이렇게 스스로 다짐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우리도 이경언처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가셨는데 내 어찌 이 길을 마다할까보냐. 걸음걸음 예수님을 따르리라”는 결심과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영광을 받아 누리는 참된 복락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