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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8-03 11:19
아가페의 사랑(요 3: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183  
아가페의 사랑(요 3:16)

하나님의 아가페는 정의와 사랑이 절묘하게 혼합된 사랑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정의로운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본래 정의와 사랑은 두 가닥의 철로처럼 피차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이질적인 것입니다. 사랑이 울면 정의가 웃고, 정의가 울면 사랑이 웃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 수없는 것이 정의와 사랑입니다. 그런데 영영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정의와 사랑이 만나진 곳, 정의와 사랑이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곳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아가페란 바로 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절묘한 실현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 자체로써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요, 또한 무한한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덮어질 때는 죄의 삯인 죽음이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서 실현될 때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연정과 같은 세속적인 사랑은 그 수가 커지면 정의의 수는 작아집니다. 그 반대로 정의의 수가 커지면 사랑의 수는 작아집니다. 그러나 아가페와 같은 참 사랑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랑의 수가 크면 정의의 수도 커집니다. 여기서 정의는 ‘정당함’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르는 ‘응보’를 뜻합니다. 이 응보를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사랑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희생도 커집니다. 그 희생을 사랑을 베푸는 쪽에서 감당하면 그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대가인 응보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데에 따른 응보였던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물질과 반물질, 예를 들면, 빛과 어둠처럼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존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쾌락에는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고, 승리에는 피나는 훈련이 따르게 되어 있듯이, 혹은 그 반대로 피나는 훈련 후에 승리의 기쁨이 따르고, 고통이 있는 후에 쾌락이 있듯이 말입니다. 사랑에는 대가인 응보가 따릅니다.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는 사랑은 허울뿐이요, 정의가 상실된 거짓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참 사랑이 무엇인가를 교훈합니다.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