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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4-18 07:10
진리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한 것(계 13: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888  
진리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한 것(계 13:10)

1939년 12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산하 평양노회가 평양 남문바깥 교회에서 임시회의를 열고, “주기철을 목사직에서 파면한다.”고 결의했습니다. 주기철 목사가 세 번째로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게 죄었다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이듬해 4월 가석방으로 풀려나서야 자신이 더 이상 ‘목사’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2006년 4월 17일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양노회가 어제 주기철 목사의 목사직을 67년 만에 복권시켰습니다. 경기도 남양주 동화고교에서 열린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결의와 주기철 목사의 순교와 관련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평양노회의 참회예배’에서였습니다. 평양노회는 ‘참회 고백서’를 내고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일제에 항거했던 주기철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했던 죄를 참회한다.”고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의 손자인 주승중 장신대 교수는 주기철 목사의 복권에 67년 세월이 걸린 것이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던 다른 목사님들이 이제는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평양노회가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기를 기다려 왔는데 이제야 이뤄졌다”고 기뻐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경남 창원 웅천이 고향입니다. 웅천은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3년 가까이 ‘웅천영’을 치고 앉아 갖은 약탈과 학살을 자행한 ‘한(恨)의 고장’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웅천에 온 춘원 이광수로부터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서 애국자 교육을 받으라.”는 강연을 듣고 오산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의 오산학교 은사가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1936년 마산까지 찾아온 고당의 권유를 받고 경남 마산 문창교회에서 평양 산정현교회로 옮겼습니다.
1940년 네 번째로 투옥된 주기철 목사는 발톱이 모두 뭉개지는 고문을 당하고도 “육체의 재앙을 피하려고 우상 앞에 엎딜 수는 없다”고 버텼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1944년 47세에 감옥에서 순교했지만, 마침내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주의 만찬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는 마침내 이기고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인내와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