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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4-28 10:41
내게는 신앙이 문제(마 4:12-2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210  
내게는 신앙이 문제(마 4:12-20)

초등학교 1-2학년시절이었던 1950년대 말 어느 여름날 신풍 애양원 바닷가 근처에 있던 한 무덤 앞에서 친척 되는 형님과 함께 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곳이 손양원(孫良源) 목사님의 묘소였습니다.
손양원은 장로교 목사로서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아버지 손종일(孫宗一)과 어머니 김은수 사이의 삼형제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주일학교에 다녔고, 1913년 보통학교 3학년 때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조회 때 동방요배(東方遙拜)를 거부하다가 퇴학당한 일이 있었고, 3·1운동에 연루되어 아버지가 마산형무소에 일 년간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강도사 자격으로 목회할 당시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펼쳤는데, 그 일로 경남노회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손양원은 1939년 7월에 신풍 애양원 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일생을 나환자와 함께 보내기로 결심하고 이름을 '양원'으로 고쳤고, 그의 부인도 양순(良順)으로 고쳤습니다. 그는 버림받은 나환자들의 몸을 씻기고 상처 난 손과 발을 싸매주었으며, 때로는 입으로 더러운 피고름을 빨아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손양원은 버림받고 소외된 나환자들의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0년 9월 25일 신사참배 거부로 연행되었고, 1945년 8월 17일 출옥 때까지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1943년 5월 출옥될 예정이었으나 전향해야 나갈 수 있다는 검사의 위협에 “당신은 전향이 문제지만, 내게는 신앙이 문제”라면서 끝내 거부함으로써 석방되지를 못했습니다. 
손양원은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 체포되어 여수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28일 총살되어 순교하셨습니다. 두 손바닥에 총탄이 지나간 흔적이 있어 죽는 순간에도 기도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일평생 신앙의 정절을 지키다가 핍박을 당하시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 있던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했던 손양원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빼닮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만찬에 참여코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살림의 일들을 본받고 실천하자는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