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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22 12:04
변절자의 변명(계 2: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675  
변절자의 변명(계 2:10)
[성만찬 명상문]
2008년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4천776명을 발표하자 사회적인 파장이 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정희, 신현확(국무총리), 김활란(이화여대총장), 안익태(애국가), 서정주(시인), 최남선, 이광수, 최린(이상 독립지사) 등 알 만한 사람들이 대거 실렸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최남선, 이광수, 최린은 특별히 주목해볼 인물들입니다.
이광수는 1919년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가하였고, 1937년 독립운동단체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일제 말인 1939년부터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최린은 메이지대 졸업 후 신민회에 가입하였고,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1933년 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세우며 변절하였습니다.
최남선은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중에 한 사람입니다.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1939년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 교수가 되었고, 1943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장하기 위해서 동경에 건너갔습니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한 때 독립을 위해 투신했다가 일제말엽에 변절자가 된 것입니다. 이 무렵은 교회들조차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해방의 꿈이 산산 조각나던 때였습니다. 이 시기는 일제의 발악이 극에 도달한 때였지만, 다른 한편 일제의 멸망이 코앞에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만일 수년 내에 조국광복이 이뤄질 것을 알았다면, 어느 누구도 변절이란 수치스런 일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 세 천재들은 물론이고 하나님만 바라봐야할 교회지도자들조차도 암담한 현실의 무덤에 갇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계시록뿐 아니라 성서의 상당부분이 이런 정황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특히 계시록은 이런 상황에 처한 신앙인들에게 가까운 장래에 이뤄질 해방(구원)의 기쁨을 환상으로 보여주고, 변절에 대한 엄격한 심판을 경고하면서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최린은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뿐이었다. 첫째는 망명하는 길이요, 둘째는 자살하는 길이며, 셋째는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하는 길이었다. 첫째와 둘째 길을 택하지 못한 것은 늙은 부모에게 불효할 수 없어서였다.“ 그러나 성서는 최린이 택하지 못한 첫째와 둘째의 길을 택할 것을 성도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