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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26 09:37
너 자신을 알라(히 9:2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859  

너 자신을 알라(히 9:27)

인간에 대한 모든 물음과 해답은 죽음에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교훈도 죽음에 있다.

인간은 피조물이다. 피조물은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한하다. 불완전하다. 부족하다. 오류와 실수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죄인이 된다. 피조물은 병든다. 늙는다. 죽는다. 그것이 피조물의 운명이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모든 물음들, 즉 철학과 신학과 윤리와 도덕과 미래에 대한 물음과 해답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강조한 것도 이 점이다. 그리스의 파르나소스 산 중턱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배꼽(옴팔로스)으로 믿었던 델포이가 있었고, 그곳에 아폴론 신이 인간들의 운명을 맡긴 신전이 있었다. 그 신전 상인방에 “너 자신을 알라”(γνωθι σεαυτον)는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너 자신을 알라”는 “너 자신의 운명을 알라”이고, 운명은 죽음을 뜻하였다. 신(神)은 죽지 않지만,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음은 인간의 운명이다. 이것을 알고 신 앞에서 겸손 하라는 뜻이다. 이것을 망각하고 신에게 도전하면 반드시 응보(nemesis)가 따른다는 것이 그리스 신화의 교훈이다. 신의 영광에 도전했던 벨레로폰은 천마 페가수스에서 떨어져 절름발이와 장님이 되었고, 여신으로 착각한 니오베는 남편과 열네 명의 자녀를 모두 잃고, 분노와 슬픔에 찬 모습으로 돌이 되고 말았다.

고대로부터 유럽인들은 지상낙원 아르카디아(Arcadia)를 동경하였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은 17세기에 <아르카디아의 목동들>을 남겼는데, 그림의 내용은 이렇다. 지상낙원 아르카디아에서 세 명의 목동들이 무덤 한 개를 발견하였다. 묘비에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Et in Arcadia Ego). 이 말은 지상낙원 아르카디아에도 죽음이 있다는 뜻이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한 목동은 묘비에 기대 선채 사색에 잠겼고, 다른 목동은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손가락으로 묘비명을 되짚어본다. 또 다른 목동은 우수에 잠긴 눈으로 뒤에 선 여인(역사)을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묘비를 가리킨다. “이게 사실인가?” 목동의 어깨에 손을 얹은 엄숙한 여인(역사)이 주는 답은 간단명료하다. 부와 명예와 권세가 아무리 많고, 일평생 누린 쾌락이 아무리 클지라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히 9:27)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일 것이다.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이 시간이 우리 자신을 진실로 알게 하는 축복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