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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19 13:06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 23-29)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064  
성경 : 고린도전서 11장 23-29절
찬송 : 138장, 183장, 208장
핵심구절 :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
                      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
                      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기독교 예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침례와 성만찬입니다.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된 사람에게는 천국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천국잔치의 규모나 음식의 종류나 참여자들의 즐거움이 어느 정도가 될지를 어림잡아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가 매일 베풀어질 것입니다. 이 즐거운 천국잔치를 미리 맛보고 경험하며, 이 잔치에 초대받은 자로써, 약속 받은 자로써, 성령으로 인침과 보증 받은 자로써 그 신분을 거듭 확인하는 자리가 지상의 교회에서 갖는 성만찬 예식입니다. 이 성만찬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다양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한달 동안은 성만찬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침례와 성만찬과의 관계, 설교와 성만찬과의 관계, 성만찬의 시작과 빈번도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침례와 성만찬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침례와 성만찬과의 관계는 결혼식과 피로연의 관계입니다. 요즈음은 피로연이 변질되고 말았지만 대부분 모든 민족들은 결혼식 후에 나름대로 거창한 피로연을 베풀어 신랑과 신부와 축하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즐거움의 시간을 갖습니다. 마찬가지로 침례식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혼인식에 해당되고 성만찬은 피로연에 해당됩니다. 다만 지상에서의 이러한 예식들은 장차 있을 거대한 혼인식과 피로연에 대한 약속의 확인과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식들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희망이 주의 재림의 때에 있을 거대한 혼인식과 천국잔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예배에서의 설교와 성만찬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예배에서의 설교와 성만찬은 상호 보완의 관계입니다. 설교는 영적이고, 성만찬은 육적입니다. 따라서 설교와 성만찬의 관계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조화, 곧 말씀이 육신이 되는 신비의 조화입니다. 설교와 성만찬의 관계는 예언자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성취되는 관계, 곧 약속과 성취의 관계입니다. 설교가 말로써 이루어진다면, 성만찬은 행동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설교가 청각을 통해서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면, 성만찬은 미각과 시각과 후각과 촉각을 통해서 인간의 심성에 호소합니다. 설교가 세상을 준비시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면, 성만찬은 교회를 준비시켜 세상에 봉사하게 합니다.

기독교 예배는 이스라엘 민중이 가졌던 두 가지 형태의 예배, 곧 회당의 말씀의 예배와 성전의 제사예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 예배는 예수의 전 생애, 즉 가장 위대한 예배의 삶이었던 갈릴리 사역과 예루살렘 사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의 갈릴리에서의 사역이 말씀의 예배로 표현되고,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이 성만찬 예배로 표현됩니다. 예수의 사역은 예루살렘에서 그 절정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은 갈릴리 사역이 선행될 때에 비로소 의미가 살아나며, 갈릴리 사역은 예루살렘 사역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의미가 예수의 생애를 통해서 어떻게 연출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기독교 예배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세 번째로 성만찬의 시작과 빈번도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성만찬 예배는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출발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잡히시기 전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말씀에서 성만찬 예배는 출발됩니다.


주후 30년 예루살렘교회는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렸고, 가정에 모여 성만찬을 행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누가는 초대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전하고 있고, 46절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성만찬 예배는 기독교 예배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떡을 떼기 위해서"(행 20:7) 또는 "먹기 위해서"(고전 11:33) 교회에 갔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의 행각과 각 가정에서 시작된 초대교회는 회당예배와 성전예배에 익숙한 유대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의 말씀 중심의 예배와 성전의 제사 중심의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이 회당에서 추방당한 후 독자적으로 예배 예전을 뿌리내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회당예배에서 말씀의 예전이 뿌리를 내렸고, 성전예배와 최후의 만찬에서 다락방 예전이 발전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예전과 다락방 예전이 통합되기 전까지는 초대 교인들이 주로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렸고, 가정에 모여서 성만찬을 행하였습니다. 물론 이 때의 성만찬은 아직 공동식사와 성만찬 예배가 확실하게 분리되기 이전의 애찬 형태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가 언제나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배를 함께 드렸다는 점입니다.


주후 56년경 고린도교회는 자주 성만찬을 먹기 위해 모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주의 만찬을 질서 있고 성별 되게 행할 것에 대해서 33절에서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의 만찬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 데, 이 모임은 언제나 "안식 후 첫 날"(행 20:7) 혹은 "주의 날"(계 1:10)에 있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주후 57년에 드로아교회는 바울 일행과 함께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는 모임을 가졌습니다(행 20:6-12). 주님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로 믿었던 이방인 교회가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모여 성만찬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입니다.


매주일 성만찬은 교부들의 증언에 의해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디다케} 14장 1절은 "먼저 여러분의 과실을 회개함으로써 여러분의 봉헌물을 정결케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자신의 날에는 함께 모여서 떡을 떼며 감사하십시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매주일 예배 때마다 성만찬을 거행했다는 사실은 순교자 저스틴(Justin)의 글 속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저스틴은 그가 쓴 {첫 번째 변증서} 65-67장에서 2세기 중반의 교회들이 주일날 모여서, 성서를 봉독하고, 집례자로부터 설교를 듣고, 모두 일어서서 기도한 후에, 집례자에 의해서 빵과 물로 희석된 포도주의 봉헌과 성별의 기도와 분병례와 헌금과 구제를 행하였다고 확실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처음 4세기까지 신자들이 참여하는 매주일 성만찬을 엄숙하게 거행하였습니다. 3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했던 터툴리안(Tertullian)은 그의 논문 "기도에 관해서"(On Prayer) 19장에서 말하기를, 금식 중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만찬을 금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동방교회의 교회법(Canon) 28조에 의하면, 성만찬을 "삼 주간을 거른 자는 파문 당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341년에 열린 안디옥 공의회에서는 "교회에 출석해서 봉독된 성경말씀을 듣고, 기도와 성만찬에 참여치 않는 자들은 그들의 회개가 공개적으로 입증될 때까지 교회로부터 파문되어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400년에 열린 제 1차 토로우제 공의회(Council of Tholouse)에서도 "설교를 들은 후에 성만찬에 참여하지 않는 자가 발견되면 경고해 줄 것이요, 만일 경고를 받고도 그래도 받지 않으면 그들은 출교되어질 것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침례와 성만찬과의 관계, 설교와 성만찬과의 관계, 성만찬의 시작과 빈번도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나타난 중요성이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신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부탁을 소홀히 한다면, 과연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에는 모든 교파교단에서 세운 신학대학들에서 매주 성만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미 200년 전부터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시행하고 있으니 얼마나 앞서가는 교회입니까? 성경대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시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나눔과 기도
나눔/1. 성만찬을 매주 행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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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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