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1. 분향단과 기도(출
30:1-10)
신에게
향을 태워 제사하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성막이나 성전에서뿐 아니라 이집트와 바벨론, 그리스와 로마 등지에서도 시행되던 일반적인 종교행위였다.
분향단은 향을 사르기 때문에 일명 ‘향단’으로 불리기도 하고, 정금으로 쌌다고 해서 ‘금단’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막에서의 ‘향’의 기능은 고대 근동의 다른 종교들의
제의와는 달랐다. 성막에서의 향은 타종교에서처럼 어떤 신비하고 마술적인 요소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성별을 의미했으며, 이러한 성별 속에서 이뤄지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생명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의미를
두었다.
초대교회이후 그리스도교에서는 향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가
8세기 이후 가톨릭에서 성직자의 축복의 상징으로 향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예배의식이 장엄해지면서 이러한 이교적인 요소들이 가톨릭 예배에
유입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교회들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비사도적이고 이교적인 것으로 여겨서 예배 중에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성막의 분향단은 조각목 상자에다 펼친 금을 입혀
만들었으며, 가로와 세로가 각각 45센티미터, 높이가 90센티미터였다. 운반이 용이하도록 고리와 운반채가 있었고, 운반채를 고리에 끼어놓은 채
성소휘장 앞 중앙에 놓았다(1-6절).
성막 내부, 곧 성소와 지성소에 놓이는 성구들은 모두
펼친 금을 입혔다. 성막 벽인 48개의 널판, 지성소에 놓인 언약궤와 속죄소, 성소에 놓인 분향단과 진설병상은 모두 다 조각목 상자에다 펼친
금을 입힌 것들이고, 아몬드 나무형태의 등잔대만이 34킬로그램의 순금덩어리를 두들겨서 만든 것이다. 조각목은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고, 금과 은은
믿음을 의미한다. 죄로 인해서 버림받고 쓸모없던 죄인들이었지만, 목수이신 주님의 손에 들려져서 다듬어지고, 귀히 쓰일 그릇으로 만들어지고, 정금
같은 믿음의 옷을 입게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신 하나님의 성막의 벽과 기둥도 되고, 성구도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듯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하나님의 성막 곧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 거룩한 도구들이 되는 것이다. 분향단이 바로 그 거룩한
성구들 가운데 한 가지이다.
분향단에는,
첫째, 상단사면 귀퉁이에 뿔(2절)이 있었는데, 이 뿔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한다(신 33:17; 삼상 2:10; 시 18:2). 둘째,
바닥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금으로 싼 것(3절)은 성도의 믿음을 나타내고, 셋째, 성소 휘장 바로 앞 또는 지성소 휘장 뒤편에 놓인
향단(6절)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한다. 넷째, 끊임없이 향을 피운 것(8절)은 중단 없는 기도를 말하며(시 141:2), 다섯째, 1년에 한
차례씩 향단 뿔을 위해서 속죄제의 피를 발랐던 것(10절)은 구원의 능력이 예수님의 속죄피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반복>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영을 새롭게
하네<찬미예수 504>.
본문은 분향단을 만드는 재료와 사용법을 지시하고 있다.
분향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 계시록 5장 8절을 보면, “이 향은 성도의 기도”라고 밝히고 있다(시 141:2, 계 8:3,4).
본문 7-8절 말씀을 보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분향단의 향불이 꺼져서도 안 되고, 중단돼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듯이,
기도의 불이 꺼져서는 안 되고(살전 5:17),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중단해서도 안 된다.
흔히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한다. 호흡하지 못하면
생명이 끊어지듯이 기도하지 못하면 영혼이 죽는다. 반대로 날마다 영혼의 창을 열어놓고 신령한 공기를 마시며 하나님과 격의 없는 대화의 기도를
나눈다면, 우리의 영혼은 활력으로 넘칠 것이다(사 40:31).
분향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휘장 앞에서
드려졌다는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임재의식’ 속에서 할 것을 교훈하는 것이다.
본문 9절은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순종의 기도를 의미한다고
본다. 하나님이 34-38절에서 지정하신 향이외의 것을 사용하지 말며, 분향의식을 다른 목적으로 행하지 말 것을 교훈한다. 이것은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뤄야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하는 순종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기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채 육체의 정욕을 따라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약 4:3).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구한 것 이상의
것으로 풍족하게 채워 주신다(마 6:33).
본문 10절, “아론이 일 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는 말씀은 향단 뿔에 죄가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성구는 죽어 있는 물건인데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할 ‘손 씻기법,’ ‘카샤룻
음식법,’ ‘그릇 씻기법’이 있을 뿐 아니라,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과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수행하기 전에 물두멍의 물로 수족을
씻도록 한 정결법(17-21절) 등이 있었다. 제사장들은 그 같은 여러 가지 의식법들을 잘 지켜야했다. 그런데 그것들을 잘 지키지 못한 채
성막에 배치된 성구들을 접촉하게 되면 그 성구들은 부정하게 되고, 쓰기에 부적당한 ‘트레이프’(treyf)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성구로 쓰이기 위해서는 피로써 정결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의식용에 합당한 ‘코숴’(kosher)가 될 수 있었다.
분향단을 위해서 드리는 속죄제는 기도의 효력이 인간이
가진 능력에 있지 않다는 것을 교훈한다. 기도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죄은총에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죄은총의 근거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힘입어서 감사함으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늘 깨어 구하기를
힘써야한다(엡 6:18).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믿고, 확신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추가>
성막과 성전의 성소에는 분향단과 등잔대와 떡상이 있었다.
성소는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또
성소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다.
분향단과 분향은 기도를 상징한다.
계시록
5장
8절을
보면,
“이 향은
성도의 기도”라고
밝히고 있다(시
141:2,
계
8:3,4).
출애굽기
30장
7-8절을
보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분향단의 향불이 꺼져서도 안 되고,
중단돼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듯이,
기도의
불이 꺼져서는 안 되고(살전
5:17),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중단해서도 안 된다.
흔히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한다.
호흡하지
못하면 생명이 끊어지듯이 기도하지 못하면 영혼이 죽는다.
반대로
날마다 영혼의 창을 열어놓고 신령한 공기를 마시며 하나님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의
영혼은 활력으로 넘치게 될 것이다(사
40:31).
등잔대와 등불은 빛을 상징한다.
빛은
어둠을 물리친다.
빛의
권세는 어둠의 권세를 물리친다.
불을
밝히는 등잔의 기름은 거룩한 것이었다.
이는
거룩하신 성령님의 상징이다.
성소를
거룩한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것은 성령님의 권세와 도움으로 어둠과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는 상징적 행위이다.
하나님은
빛의 창조자이시오 빛을 몰아내는 빛의 하나님이시다.
성소인
우리의 마음은 항상 거룩한 기름이 불을 밝히는 밝고 환한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는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행위가 이와 같아야한다.
떡상과 떡(빵)은
생명의 양식인 성경의 말씀을 상징한다.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삶 속에서 실천할 때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창조의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어둠을
몰아내어 빛을 밝히고 혼돈을 몰아내고 질서를 찾고 죽음을 몰아내고 생명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일을 할 수 있다.
충청과 전라지역에 제자들을 키워 수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돌본 한국의 바울 김은석 목사는 평소 등불과 관련된 생각이
많았다.
그에게
등불은 말씀(계시)의
불,
기도의
불,
성령의
불을 상징하였다.
출애굽기
27장
21절에서
“燈天恒常(등천항상)”,
즉
‘하나님
앞에 항상 등불을 밝힘’이라
적고 있고,
열왕기하
8장
19절을
근거하여 “恒常一燈(항상일등)
주심,”
즉
‘항상 한
등불을 주심’이라고
적고 있다.
또
출애굽기 29장
39절에서는
“朝夕(조석)으로
獻燈(헌등),”
즉
‘아침저녁으로
등불을 밝힘’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그가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얼마나 희구(希求)하며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로써
그는,
비록
육신적으로는 가난했고 궁핍했지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발전에 기념비적이고 영웅적인 업적을 남겼다.
필자는
그의 이런 영웅적 삶과 업적을 밝혀내어 <한국의
사도 바울 김은석>이란
제목의 책을 엮어서 한국 교회들에 소개하였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충만한 삶은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능력의 삶이요,
값을
매길 수 없는 기념비적이고 영웅적인 결과를 낳게 하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