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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12-31 07:04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린 결정(빌 2:5-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361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린 결정(빌 2:5-11).

미륵불교의 본산이자 증산교의 발생지인 모악산 기슭 김제 금산(팟정이) 마을에서 1905년 10월 11일 집주인 조덕삼과 머슴(마부) 이자익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곳에 이 두 사람이 합심하여 1908년에 세운 27평짜리 금산ㄱ자 예배당이 전북 문화재 자료 136호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한 머슴 이자익과 주인 조덕삼이 한날한시에 세례 받고, 같이 성만찬에 참여하고, 같이 교회창립멤버가 되고, 같이 교회를 세워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1907년에는 두 사람이 함께 교회의 영수(집사급 지도자)로 임명되었고, 교회를 건축하고 난 다음 해인 1909년에 장로를 선출하는 투표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인들과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조덕삼 영수가 먼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마을의 지주였던 조덕삼 영수를 제치고 그의 마부 이자익 영수가 장로로 추천된 것입니다. 반상의 신분을 철저히 따지던 시대에 이것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날 것은 뻔했습니다. 이에 조덕삼 영수는 그 자리에서 발언권을 얻고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금산교회 교인들은 조덕삼 영수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조덕삼은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리고, 자기 집의 종인 이자익이 초대 장로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금산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해 내려왔을 때에도 그를 당회장 목사로 정중히 모셨습니다. 조덕삼 영수는 주일대사와 국회부의장을 지낸 조세형 씨의 할아버지이십니다.
조덕삼 영수의 이 겸손한 자세는 하늘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셔서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류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예수님을 그대로 본 받은 것이고, 주의 만찬의 의미를 그대로 실천한 것입니다.